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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혀I현 Mar 05. 2024

버추얼 아이돌이 초동 50만장? 대체 플레이브가 누군데

무엇이 플레이브(PLAVE)를 궤도 위로 올렸을까 | 학술적으로 말하기


  플레이브(PLAVE)를 처음 알게 된 건 순전히 동네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아는 타인들로부터 “핫플 많은 곳 사는 애”라고 이해되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 사람에게 합의된 서울의 힙하다는 그 동네에 살고 있다.


  이 동네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부턴가 지하철역의 옥외광고판이 아이돌 혹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생일 광고 외에 다른 광고로는 채워진 적이 없는 동네다. 나는 들어 보기도 했고 들어 보지 못하기도 했던 아이돌의 이름을 지나가다 보이는 생일 카페 때문에 알게 되기도 했고, 네컷 사진 기기에서 우연히 본 생일 기념 콜라보 포토 프레임으로 그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플레이브도 그러한 아이돌 중의 하나였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까지는 말이다.



아, 그러니까 완전히 AI는 아니란 말이네?


  최근 플레이브는 데뷔 1주년을 기념해 더 현대 서울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 SNS에서 플레이브 팝업 스토어 방문 후기를 보았다. 글에 직접적으로 설명되진 않았지만, 그 게시물에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본체가 따로 있다.”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하길래 무지한 범부인 나는 녹음된 노래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음성인 줄 알았고, 노래 자체도 인공지능으로 만든 건 줄 알았고, 영상에 나오는 움직임도 그저 애니메이션처럼 만들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AR 기술로 존재하는 K/DA의 존재-감만을 상상했다. 나는 플레이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들을 안다고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브는 진짜 사람이었다. 2023년에 데뷔한 5인조 남성 보이 그룹.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디지털 펭수'다. “버추얼 아이돌이고 실연자가 있”다.



진짜여야 하는 것은 진짜, 가짜여야 좋은 것은 가짜

1 |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1) 한결같이 존잘


  플레이브가 현실적인 인간의 외양이 아니라 2D 캐릭터의 외양을 지녔다는 점은 불쾌한 골짜기를 절묘하게 벗어난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서는 로봇이 인간과 유사해질수록 호감도가 올라가지만, 유사성이 특정한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이질적인 부분이 두드러져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호감도가 급속도로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래프로 유사성과 호감도의 관계를 그렸을 때 분포 면적이 ‘불쾌한’ 부분에서 ‘골짜기’의 모양이 만들어져 이름 붙여진 이론이다.


: VLAST 홈페이지


  플레이브의 외모는 인간과 닮았지만 사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이질적인 감각을 숨게 하고 적정한 수준의 호감도 수준으로 존재한다. 더군다나 이 사실적이지 않은 외모는 인류가 그간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정성껏 빚고 쌓아 올린 데이터에 기반한, 인기몰이상의 호감형 외모를 집약한 이상적인 결과의 총체다. 그러니 이들은 사실적이지 않은 것들 가운데 가장 호감형이다.


  웹툰/만화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 외모를 지닌 이들에게 ‘관리 안 된 외모’라는 것은 이미 그들의 외모 관념에서 사라지게 된다. 적나라하게, 한결같이 잘생겼다, 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활용해 실연자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현실화한다. 이질성을 느끼기 쉬운 신체 움직임만큼은 사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심지어 현실성을 부여하는 이 기술은 멤버들이 짓는 표정을 보고 어떤 감정인지 느낄 수 있고 춤을 출 때 춤선이나 강약 조절을 인지할 수 있는 정도로 정교한 수준이다.



1 |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2) 본업 존잘


  또 한 가지, 사실이어야만 하는 게 있다. 바로 목소리와 노래 실력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가수고, 노래가 좋아야 한다. 노래가 좋아야 하고, 그 좋은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


  AI로 얼마든지 누군가의 음색과 기교를 표현할 순 있지만, 노래는 신체 움직임처럼 이질성을 감지하기 매우 쉽다. 즉, 가짜일 때 쉽게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노래에서 인간의 소리와 인공지능으로 낸 소리 사이에 유사성과 이질성의 미묘한 간극은 지나가는 음정만큼 가뿐하고 정밀하게 느껴지게 된다. 너무 ‘잘’하면 듣는 의미가 사라지고 너무 어색하면 듣고 싶지 않다.


  플레이브는 본체라 불리는 실연자가 실제로 노래를 할 뿐만 아니라 춤도 추고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한다. 이들은 직접 작곡하고 작사하고 프로듀싱에 참여해 작업한 앨범을 선보인다. 연차가 쌓인 실력파 아이돌들의 행보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특히 이 점은 팬들의 자랑거리이자 결속력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플레이브의 소속사 블래스트 엔터테인먼트의 이성구 대표는 미니 2집 쇼케이스에서 소속사가 중소 기업인 것과 버추얼 아이돌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명 작곡가의 곡을 받거나 안무가에게 제대로 된 안무를 받는 것이 어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멤버들이 직접 곡과 안무를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하게 된 것인데, 이는 열세에 놓인 쪽을 응원하게 되는 마음과 더불어 누구의 개입 없이 온전하게 우리만이 공유하고 우리가 함께 키워나간 결과물로 상승세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내집단(팬덤)이 더 끈끈해지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2 | 팬덤 문화에 정곡 찌르기 (1) 내 가수 천상 아이돌임


  이들이 사람과 혼연일치되지 않아서 좋은 점은 간단하다. 첫째는 그 자체로 천상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사람이다. 하지만 팬들이 덕질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다. 플레이브라는 아이돌이다.


  플레이브의 멤버들은 사람이라면 응당 있는 ‘인간 1’로서의 정체성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우리가 플레이브를 플레이브로 보는 순간, 그 정체성은 분리된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본체를 파헤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아예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며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실한 캐릭터 디자인 위에 세워져 가장 아이돌다운 이상적인 아이돌로서의 정체성-본업으로서의 아이돌에 아이돌로서 가장 이상적인 농도와 깊이로 팬들과 소통함으로써 얻는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을 포함한 모습-만 보여준다. 무대 위의 모습과 일상적인 모습의 갭을 보여준다는 라이브 방송에서조차 그들은 아이돌로서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갭이 구현된 채로 존재하는 버추얼 아이돌 1, 2, 3, 4, 5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그 외의 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 유튜브 공식 채널 라이브 2024.03.04.


  이는 인간 아이돌이 그러한 갭을 보여줌에도 어쩌면 사적인 자리에서 더 온전해질 본연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과 대치되는 지점으로, 독자가 웹툰 주인공에게 다른 사생활과 다른 인격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팬들은 플레이브에게 있을 플레이브 외의 삶을 상상하지 않는다. 어떤 서사물 속 특정한 인물은 그 서사 위에서만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와 그들은 ‘플레이브’라는 아이돌 서사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그 몰입의 상황을 벗어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캐릭터’만큼은 서사를 유지한 채로 현실에 삽입되었으므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로 인한 이질감을 감각하지도 못하게 된다.



2 | 팬덤 문화에 정곡 찌르기 (2) 내 가수의 논란과 멀어지기


  둘째는 이 천상 아이돌은 논란이란 게 생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팬들이 인지했든 하지 못했든 대단한 장점이 된다. 앞서 말했듯, 인간 1의 정체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됨으로써 인간 1이 휘말릴 수 있는 각종 논란으로부터 차단되기 때문이다.


: 영화 <성덕> 스틸컷, 2022, 오세연


  영화 <성덕>은 논란의 중심도 모자라 범죄자가 되어 버린 연예인을 덕질하던 감독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영화에 따르면 감독이 잃은 것은 단순히 ‘오빠’인 것이 아니라 지나온 인생이다. 빼기로도 빼지지 않고 컨트롤과 제트를 눌러도 돌아가지 않아 이미 자신의 시간 속에 절절히 남아버린 마음이고 추억이다.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심경을 팬들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돌 세계에서 인성 논란이나 과거 논란과 같은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는 요소’가 밝혀지는 것은 팬덤과 덕질에 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본체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여 버추얼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한, 버추얼로서는 사건·사고와 논란 그 여지 자체에서 멀어지므로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소리 아님…)



꿈이 담긴 영리한 살 궁리에 울컥해 버린 나, 결국 감긴 것인가?


  그렇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유우리의 베텔기우스 커버한 영상도 보고, 형들에게 카톡 답장 받기 콘텐츠도 보고, 오류 났을 때 대처하는 영상도 보고, 멤버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말해주는 영상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마침내 도달한 그 영상에서 노아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초반에 처음 방송할 때 뭐… 가수에 대한 꿈이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한 게 있는데 꿈이 없었던 건 아니고 사실 가수에 대한 꿈이 사라졌었죠. 왜냐면 워낙 음악도 좋아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전 다 좋아했는데… 뭔가를 낼 수 있는 기회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꿈이 사라졌었어요. 그러다가 예준이의 전화를 받고 그때 이제 다시 사라졌던 꿈이 올라오면서 멤버들을 모으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요.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거죠. 전 꿈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ing입니다, 여러분.”


  본체들은 실체에 의한 실질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또 한편 그들의 가장 실질적인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 이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잘 되고 있으니 벅차고 앨범 작업 열심히 하고 팬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겠다만.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차이 때문에 현타를 느끼기도 할까? 적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가장 동시대적 방식으로 찾아낸 영리한 살 궁리였다고 생각한다. 모쪼록 행복하기를. 나 진짜 눈물 찔끔 날뻔했다니깐요.




추신/

이 노래 젤 좋아합니다.

https://youtu.be/c_yCRwh97M8?si=klR7YfS_VunvNG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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