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주저리 주저리 뭐라 뭐라 설명이 되어있었지만, 가난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하는 유리멘탈에 대한 일격을 하기위한 소리였다. 스스로를 점점 가난의 굴레로 빨려들어가게하는 나약한 정신을 개조해야한다고 써있었다.
그런데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타인에게 비난받을만큼 잘못된 일 일까?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것인것 마냥 누군가의 한심한 눈초리를 받아도 되는 일인건가? 요즘 수많은 콘텐츠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현실에 안주해 살아서 좋으냐고,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한심한 삶이라며 화면 밖의 누군가를 조롱하고있다.
위에 언급한 예시는 ‘부’에대한 이야기지만 그 대상을 좀 더 확장시켜 생각해볼 필요가있다. 대학이나 공부, 직업이나 인간관계같은 것들로 말이다.
대학을 가야하는 고3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학생은 외부모 가정에서 자라났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집안의 자녀이다. 그 학생의 엄마(혹은 아빠)는 이 학생을 대학에 보내줄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학생은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 학교의 운동장을 밟았던 입학식때부터 해온 고민일수도 있겠다. 예술을 하고싶은 학생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로 취직을 할지, 꿈을 위해 무리해서라도(빚을 져서라도) 대학을 가야할지 고민이 될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이 학생에게 뭐라고 아야기 해주겠는가?
도전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딱히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를 못느껴서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도전하지 않는 그의 인생을 비난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 없다. 용기가 부족한것도 도전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말은 용기있고 도전적인 사람이 무조건 잘 살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짓눌려 있는 현실을 탈피하려면 도박과 같은 도전을 해야한다. 잘못된 도박의 결과는 3대가 멸하고도 남을 빚더미라는 종착지가 될수도 일다. 두려움 가운데 확신 없는 도전은 회생 불가능한 마음의 잿더미로 남을수도 있다.
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욕먹을 일이 아니다. 욕할 일도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에 훈수를 두려면 그 인생을 살아보고 책임질수 있을때 해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도전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줘야한다. 그저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용기있게 살아가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