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실격 Apr 14. 2024

회사 점심시간에 총선 얘기가 나오자 생긴 일

회사에서 불필요한 패를 까는 일

점심 먹던 중 한 팀원이 총선 결과 봤어요? 라며 화두를 던졌다.

그러자 마피아 밤이 된 듯이 테이블에 싸늘한 적막이 감싼다.  


어느 자리 나 정치 얘기는 조심스럽다. 피아식별이 안 돼 있다면 더더욱이다. 같은 당을 지지하면 괜찮다. 하지만 이념이 다르면 느닷없는 10분 토론이 시작될 수도 있다. 반은 진보 반은 보수 한 명은 손석희를 맡으면 될까.

 모든 정치 얘기가 그렇듯 토론 결과로 "너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내가 틀린 거 같아, 좋은 의견 고마워"라며 건설적인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이념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다면 역사책 속 많은 사람이 목숨까지 바쳐왔을 리 없다. 그저 서로 뜨겁기만 하고 재만 남을 논쟁이다. 안 그래도 바쁜 회사에서 피로도만 커진다.


회사에선 정치 색을 밝히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불필요하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건 많은 상징성이 함축된다. 거기엔 취향, 도덕관, 우선순위, 트렌드, 정의감, 역사의식, 세금, 최근 시사 등 다양한 아젠다가 녹아있다. 그러니 어느 당에 투표하겠다고 말하는 건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나"를 밝히는 일이다.

 회사는 일하러 가는 곳이다. 그러니 너무 많은 "나"를 알릴 필요가 없다.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장사다.


3가지 정도의 실을 정리해 봤다.


첫 번째는 내가 특정 정당의 "작은 대변인"이 돼야 한다. 내가 A정당을 지지한다는 걸 알게 된 동료는 A당 이슈가 생길 때마다 내게 의견을 물어올 수 있다. 혹은 A당이 잘못을 저지른다면 이런데도 A당을 지지하다니, 아무래도 이대리님은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A당의 작은 대변인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정치적인 안테나를 곤두 세우고 있어야 한다.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나 = 진보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로 결정되면서 내 행동이 그 이념 안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가령 보수 정당 지지자라고 알려져 있는 박 차장님이 업무 중에 보수의 주요 가치인 "공정"을 위배하는 선택을 부득이하게 된다면 "어쩜 보수주의자인데도 그런 결정을 하느냐"는 일갈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괜히 동료에게 "나"를 재단할 수 있는 렌즈를 쥐어주는 셈이다.    

 세 번째는 일 번과 이 번의 합으로 안 그래도 피곤한 회사생활이 더욱 피로해지는 이유다. 그냥 출근하고 퇴근만 해도 힘든 회사 생활이다. 그런 가십거리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


다시 싸악 조용해진 식탁으로 돌아와서,


우리 팀원들은 똑똑하다. 그래서 서로 패를 까지 않을 속셈이다. 한두 사람이 "민주당이 크게 이겼던데요"라는 식으로 건조하고 담담하게 AI처럼 팩트만 기술했다. 개인적인 의견을 담지도 않았다.

 그러자 얘기를 꺼냈던 사람도 무안하다는 듯이 멋쩍게 웃으며 "그러게요, 그렇게 됐더라고"라며 끝 말을 흐렸다.

 눈치가 빠른 옆팀 박 주임님이 곧바로, "아 제육 너무 짜게 됐네, 저번에는 너무 싱거워서 문제였건만"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화두를 돌렸다.


다들 여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