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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May 09. 2024

같은 회사에 5번 떨어진 날의 회고

촛불이 일렁인다.


불쾌하게 젖은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며칠 전 비 맞은 축구화가 출처다. 아무리 말려도 가시질 않는다. 6평 남짓한 좁은 원룸은 냄새가 숨을 공간도 없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들고 나는 바람이 없어 효과가 미미하다. 얼마 전 다이소에서 산 향초가 떠오른다. 어색하게 라이터로 불을 낸다. 작은 불기둥이 솟는다. 야단 법석하는 게 신장개업 가게 앞 풍선 인형 같다.


두 시간 전 서류에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일 년간 인턴을 했던 회사다. 학생 때부터 소망하던 회사라 인턴 중에도 여러 번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끝끝내 실패했다. 계약이 마친 뒤엔 같은 산업에 중견 회사로 첫 취업했다. 언젠가 복귀를 염두한 결정이었다.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던 중 그 회사의 채용 공고가 떴다. 어찌저찌해서 최종 면접까지 갔고, 또 한 번 마지막 1인에 속하지 못했다.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이번 기회에 모시지 못하"다는 구구절절한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두 시간 전 같은 번호 같은 내용의 문자가 왔다. 이번엔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에서.


회사는 그래봤자 일하는 곳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과몰입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 회사를 단지 잘 나가고, 급여 잘 주는 일터 정도로 생각하진 않았다. 좋은 학벌을 동경하는 수험생처럼, 나는 그 회사 일원이 되기를 꿈꿔왔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그 줄다리기가 나를 더 애태웠다.

 인정 욕구도 있다. 1년 인턴 생활을 잘했다고 믿었지만 그것의 결과가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계속해서 부정했다. 나의 부족함이라기 보단 회사의 여건이 녹록지 않아서 비롯된 피치 못할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되찾고 싶었다. 내가 잘했다는 그 자리를.  


그러나 숱한 낙방의 끝에 이제야 조금씩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거기엔 내 자리가 없는 게 맞겠다고. 인턴 생활을 잘했다는 건 단지 몇 동료의 응원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한 걸 수도 있겠다고. 5번 정도 낙방하니 비로소 미련이 없어진다. 이전에는 섭섭했다는 게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후련하다. 타의적이지만, 아무튼 지독했던 인연에서 해방된 기분이다.


퇴근 후 여느 때와 같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뭐 할지 길을 잃는다. 지난 한 달간은 퇴근 후 영어를 공부했다. 1차 면접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꼭 그만큼의 시간이 뜬다.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다 "이렇게만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세를 고쳐 잡는다. 이제는 또 다른 챕터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이제는 맘 편히 다른 회사를 지원할 수도 있고, 혹은 진급을 염두하면서 지금 회사에 충실할 수도 있다. 아예 회사원이란 굴레를 벗어던질 수도 있고, 퇴근 후에 더 창작에 부지런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고, 그 결정은 온전히 나만 할 수 있다는 것에 부담감, 안도감, 기대감이 뒤엉킨다.


고민하던 중, 옆을 보니 아직도 초는 열심히 제 일을 하는 중이다. 이다음이 뭐가 됐든 복잡한 실타래를 풀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글쓰기가 어느덧 3시간이 넘었다. 그 시간만큼 심지도 짧아졌다. 가까이 다가가니 촛농이 한 우물이 돼 고여있다. 뚜껑을 덮어 초를 끈다. 이제는 잘 시간이다.


꺼진 불과 함께 지난했던 미련도 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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