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써야겠어. 목적도 방향성도 모호한 태스크포스에 끌려와 하는 일이라곤 취합과 정리밖에 없었던 막내의 작은 탈출구, 아니 일종의 화풀이였다.
부서에 갈 사람이 없어서 너를 보낼 수밖에 없었어, 거기서 육 개월만 버텨, 미안해.
이런 건설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답답함 속에 시작했던 나의 글쓰기
팀장님의 말에 나는 결심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딴짓을 해드리죠!'. 어차피 하루에 서너 시간이면 끝나는 단순 업무였다. 남은 다섯 시간 동안 커피 마시고, 담배나 피우며 떠드는 데 쓰느니 차라리 글을 쓰기로 했다. 분노와 화를 삭이는 글쓰기를.
회사에서 나는 '뮤지컬배우'로 불렸다. 자네, 뮤지컬 배우라며? 입사 후 첫 회의에서 내 소개가 끝나자 팀장님은 뮤지컬 노래를 하나 불러보라고 했다. 나의 손사래와 어색한 웃음은 팀원들의 박수와 환호에 묻혔고, 결국 나는 출근 첫날부터 회의실이 떠나가도록 '지금 이 순간'을 불렀다. 하지만 뭐, 면접장에서도 제 취미는 뮤지컬입니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아 미디어 회사에 오고 싶었습니다, 하는 감언이설로 입사했으니 반쯤은 내가 자초한 일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들어간 아마추어 뮤지컬 극단에서 나는 칠 년째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주말에 모여 연습하고,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올리는 동호회 성격에 가깝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이 자현씨, 뮤지컬배우라면서요, 하고 물으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프로 뮤지컬배우들과 내 차이를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동네 조기축구로 설명하곤 했다.저는 아마추어라니까요. 그냥 취미예요, 취미.
작고 소중한 나의 취미, 뮤지컬과 연극
그런 내가 글의 주제를 공연으로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은 답답하더라도, 글만큼은 즐겁게 써야지. 그렇다면 나는 역시 뮤지컬이랑 연극이지. 그렇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최초 콘셉트는 '공연문화계의 이동진'이었는데, 그분만큼의 전문성도 열정도 없다는 것을 첫 글을 쓰다가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무작정 써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온 글 중 하나가 '뮤지컬은 고오-급 예술이 아니다'였다. 자정 무렵까지 글을 써서 작가의 서랍에 저장하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글을 고친 뒤 '발행'을 누르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위-잉, 위-잉', 회사 선배들과 밥을 먹는 동안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심상치 않은 진동을 애써 무시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확인한 브런치에는 수십 명의 구독과 이천 명이 넘는 조회수가 찍혀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회사 최종 합격 메일을 확인한 순간 같았다. 수십 번 브런치 통계를 확인하고, 글이 걸려있는 곳마다 찾아가서 클릭하며 오후를 보냈다. 첫 글에 취해, 그렇게 두 달 동안 열다섯 개의 글을 발행했다. 실망할 때도 있고, 화색이 돌 때도 있었지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꾸준함의 힘이란 정말로 놀라워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 육 개월 만에 내 글을 주기적으로 읽어주는 분들이 천오백 명에 가까워졌고, 발행한 글은 서른 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모 주요 티켓 예매사이트 담당자분에게 뮤지컬을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객원 에디터'라는 이름의 작은 자리이지만, 이름을 걸고 공식적으로 글을 쓰게 된 기쁨에 계약서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 잔 했다.
브런치 메인에 내 글이 썼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브런치 앱과 웹사이트를 통틀어 내 글이 메인에 소개되었던 모든 순간을 캡처해 간직하고 있다. AI 알고리즘에 의해 걸렸을 내 글이 모니터에 나올 때까지 새로고침을 연타하는 나의 모습이란.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럽지만, 이것들은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작은 훈장들이다.
이제 서른이 된 나의 목표는 삼십 대가 가기 전에 공연의 메카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에 머물면서 매일 공연을 보고 그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이 여행을 어떤 출판사나 플랫폼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조금 긴 휴가를 내고 혼자라도 다녀와볼 생각이다. 글쓰기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인 셈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날을 위해 월급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붓고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닌다.
홧김에 쓰기 시작한 글은 나에게 '브런치 작가'라는 낯간지러운 호칭을 만들어 주었고, 이제 나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나를 글쓰기로 이끌어 준 회사, 목적이 불분명했던 TF, 그곳에 나를 파견해 준 당시 팀장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