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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노래 Jan 04. 2022

심월상조(心月相照) : 마음달이 비춘다는 뜻

[먼 곳의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3]


아름다운 것을 보아라


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작은 눈이 내렸어요. 싸래기눈이라고 하기에도 아주 작고 살며시, 조심스럽게 내리는 눈이었요. 함께 걷는 첫눈을 기다렸는데, 매번 실패했던, 그래서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던 날들이 떠올랐어요. 그래도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한’ 어제의 마지막은 아주 잠깐 거리에서 멈춰 전기줄 사이로 한두방울 내리는 눈을 바라본 시간이었어요. 정말 너무 드문드문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면 다시 한 두 방울씩.. 잠이 안 올때 좋다던 ‘양떼세기’처럼 조금 서서 100개 정도 세어보고 갈까 하다가 혼자 피식 웃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래도 도시의 가로등 밑으로 보이는 눈빛이 오늘 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덕분에 잠시 웃었어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건 아니지만 딴 생각을 없애기엔 소설책만한게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을 읽은 것이 얼마인가 싶을 정도로 필요한 서류와 산더미같은 자료들을 읽느라 혹은 필요한 내용들을 흡수하듯 글을 보다가 간만에 요즘 잘 나간다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불편한 편의점]. 읽다가 다시 몇번이고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확인을 했더랬어요. 왜 불편한 편의점일까? 이 편의점에 나타난 한 사내 ‘독고’가 궁금해져서, 지하철 정거장을 놓칠 뻔했어요.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읽느라 안그래도 안좋아진 시력이 걱정은 되지만 사내의 하루하루가 궁금해서, 그런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들르는 일상을 살던 이들에게 나타난 ‘독고’의 행동과 말들이 궁금해서요. 아니, 그보다 어쩐지 불편하던 첫 인상의 사내가 주는 느리고 더듬거리는 따뜻한 마음이 궁금했어요.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는 지독한 잔소리에 집을 나간 아저씨와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삼십대 백수 아들이 있더랬어요. 복장이 터져서 할 수 있는 일이 매일같이 소리지르고 윽박지르기 일수였는데, 어느날 깊은 하소연과 울음섞인 사연을 그 사내가 함께 들어주었어요. 삼감김밥두개를 사주며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편지와 함께 게임하는 아들녀셕에가 가져다 주라고.. 실은 한번도 묻지 않았던 아들의 삶과 아들의 선택을 꼭 한번은 들어보라고.. 아들이니까, 어머니니까.  


집에 오는 길에 이 불편한 편의점이 우리동네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나도 잠시 들러 ‘참참참’을 한번은 꼭 먹어보고 싶다고도, 그 가게의 ‘옥수수수염차’를 마셔보고 싶노라. 아니 그보다 조용히 그와 대화해보면 좋겠다. 외향적이지만 실은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못했던 내 지난 시간의 이야기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어요. 늘 죽음을 생각한다고 말하면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해졌어요. 물어볼 말, 듣고 싶은 말들을 떠올리다가, 아차, 아침 출근을 생각하니 어쨋든 잠이 들어야겠다며 책도 일기장도 덮고 잠을 청했더랬지요. 아침에 사무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바로 그 ‘옥수수수염차’가 있어서 한바탕 놀라며 웃었어요. 밤새 독고가 다녀간것 같기도 하고.^^

오늘의 아름다움


심월상조(心月相照) : 마음달이 비춘다는 뜻
구름 없는 하늘에 밝고 둥근 달이 허궁에 두둥실 떠서 삼라만상을 밝게 비추듯이 무명 없장의 구름을 벗은 허공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반야의 지혜 광명이 서로 밝게 비춤을 비유한 것이다. 허공 같은 마음을 지닌 높은 경지의 수도인들 사이에나, 믿고 존경하는 스승과제자, 뜻을 함께하여 간격을 벗어난 도반들 사이에는 아무리 시간과 공간을 멀리하고 있어도 마음달이 항상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의 나의 목표는 ‘익숙한 것들을 떠나보내기’와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 친해지기’였어요. 가장 손쉽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중에 하나인 오래된 긴 생머리를 잘라내버렸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다 그만둔 덕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느라 하루종일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의 사투를 벌였고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주문한 ‘아라리오’를 따라온 ‘몬테라스’ 등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하는 스무여개의 화분을 가꾸는 뜻하지 않은 식물지기까지, 익숙하지 않은 일들 투성이네요. 최대한 이 새로운 일들에 마음을 쏟아보고 있고요.


심월상조처럼, 멀리 있지만 마음달이 항상 서로를 비추고 있겠지요.

당신은 그곳에서 안녕하시진지요. 오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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