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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쥬스 Aug 06. 2019

[소설] 프로바이오틱스

그 남자는 토요일 아침마다 창가에서 춤을 췄다

오늘도 그 사람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토요일 아침 일곱 시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보면 저 멀리 맞은편 백 미터 쯤, 창문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그는 나와 같은 높이의 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 방 창문 앞은 남자의 춤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격한 춤은 아니었다. 어깨를 좌우로 으쓱거리며 골반을 살랑살랑... 말하자면 영화 <아비정전>의 맘보댄스와 닮은 춤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장국영을 닮은 건 아니었다. 세상 귀찮은 얼굴에 아랫배가 완만한, 지하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칠 법한 중년 남자였다.


그는 특별한 기교 없이 그 동작만 삼십 분을 반복한 뒤 창가를 떠났다. 그러고 나면 눈앞에는 토요일 이른 아침의 텅 빈 아파트 단지만 덩그러니 남겨졌고, 나도 머쓱한 마음으로 창가를 떠났다. 나의 토요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거나 은밀한 팬이 됐다거나... 그런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손톱을 물어뜯거나 괜히 손가락을 꺾어 소리를 내는 일에 가까운, 어쩌다보니 몸에 밴 의미 없는 습관 같은 거였다. 가끔은 내가 관음증이 있나 싶어 한심하기도 했다. 그럴 땐 내 방에 BGM을 깔아보기도 했다. 트랜스 뮤직을 깔면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것처럼 보였고 힙합을 깔면 그루브를 타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무슨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언젠가부터 그 사람도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먼 거리지만 그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춤은 멈추지 않았다. 나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는 듯이. 그래서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너가 안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갔다.


유난히 하늘이 맑던 출근길에 나는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쥐색 양복에 감싸져 있었지만 그 뒷모습을 내가 모를리 없었다. 춤을 마치고 돌아설 때의 그 엉거주춤이었다.


- 저기요.


나도 모르게 그를 불러세웠다. 그는 굼뜨게 고개를 돌렸다. 무표정하던 남자의 얼굴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갔다. 우리는 마침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 예... 무슨 일로...


- 저 아시죠?


- 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 그 춤 왜 추시는 겁니까?


얼음이 담긴 유리잔처럼 남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남자는 두꺼운 손으로 이마 위의 땀을 훔쳤다.


- 예에...?


- 토요일 아침마다, 그거요.


- 무슨 말이신지...


- 선생님,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요. 그냥 너무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왜 추시는 건가요?


- 아니... 그게 참. 글쎄요, 왜일까요.


- 선생님.


- 그게 참... 아니 참내...


남자는 가늘게 한숨을 쉬면서 한쪽 다리를 떨었다. 나는 말없이 계속 지켜봤고, 남자는 무언가 마음 먹은듯 굵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유산균을 먹습니다 내가. 아침마다.


- 아, 네.


- 소화가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 이게 좋거든요. 좋은 건데, 그게 장까지 살아서 가야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대부분 장까지 못가고 죽습니다. 위산이 너무 독해서 녹아버린다고 합니다.


- 아, 네.


- 그래서 장운동 하는 거에요. 멀리 멀리 살아서 가라고. 그거 춤 아닙니다. 난 춤 같은 거 몰라요. 내가 왜 춤을 추겠어요. 미친 것도 아니고... 그죠?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점점 울상이 되었다.


- 난 말이죠, 혼자 춤 같은 거 추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럼 난 출근해야 해서 이만...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가는데, 멀어질수록 걸음이 서툴어졌다.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들썩거렸고 이따금 몸의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렸다. 학예회 무대를 망치고 무대 뒤편의 어둠으로 돌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보였다.


그 뒤로 나는 그의 춤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토요일 아침에 창가에 서서 춤을 추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가만히 창문 앞에 서있었다. 거기 서서 내가 추는 춤을 지켜봤다.


나는 춤을 추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얼마나 많은 유산균이 장까지 가지 못하고 죽는 걸까. 유산균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유산균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저 남자는 왜 이제 춤을 추지 않는 걸까. 더 이상 유산균을 걱정하지 않는 걸까. 그런데 저 남자는 시력이 좋은 편일까. 내가 우는 게 저 사람에게도 보일까. 저 남자도 춤을 출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꾸루룩 하고, 수십 억 마리의 유산균들이 보내는 신호음이 뱃속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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