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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한 여름 밤, 귀신

우리 같이 노올자 #4.

우리 동네 골목길은 작기 때문에 누가 지나가는지 다 보인다. 특히 평상에 앉으면 통일전망대 저리가라다. 누런 장판으로 못을 박은 나무 평상은 아빠가 손수 만들었다. 전봇대 아래 있었고 누구나 올 수 있다. 길 가던 우편배달부 아저씨, 리어카 목마 아저씨도 쉬어 간다. 해가 져도 습하고 무더운 7월이다. 

“아이고, 경이 아빠 덕분에 여기서 이렇게 쉬네.”

“그러게 말이에요. 경이 아빠가 아주 재주꾼이야! 딸이 셋이나 있고!”

복희 엄마는 맘모스빵을 큼직하게 썰어 쟁반에 담아왔고, 주인집 할머니는 부채질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엄마는 얼마 전에 딸을 낳았고, 외할머니 집에서 산후조리 중이다. 그 후 우리는 남자아이 옷을 입지 않고 있다. 마음대로 입어서 좋지만, 할머니가 또 독풀씹은 것 같은 입술로 잔소리를 할까봐 걱정일 뿐. 드디어 다음 주면 엄마가 집에 오니 설레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다. 혁구는 순식간에 빵과 수박을 2개씩이나 먹었다. 삽시간에 수박은 없어졌다. 나는 빵을 입에 가득 넣은 채 혁구를 째려보았다. 혁구는 혀를 내밀고 약 올렸다. ‘모기나 잔뜩 물려라.’ 나는 저주를 퍼붓고 다시 빵에 집중했다. 펄럭펄럭 부채질 소리와 전봇대 위 변압기의 윙윙 소리만 들려왔다. 진이는 또 심심심한가보다. 몸을 배배 꼰다.

“언니 우리 뭐 할 거 없을까?”

“흠 나도 심심하긴 한데. 우리 귀연언니한테 갈까? 언니한테 무서운 얘기 해달라고 하자!”

“좋아, 좋아! 당장 가자!”

 백향세탁소 막내딸인 귀연 언니는 나보다 두 살많은 이야기꾼이었다. 실제 귀신을 보기도 했다는 언니의 광대뼈는 툭 튀어나오고, 눈은 커다랗고, 몸은 비쩍 말라 어딘가 좀 으스스했다. 그래도 우리는 언니를 좋아했다. 

 미용실 옆 제과점과 도장가게를 지나 세탁소로 향하는 길도 오늘따라 무서웠다. 백향세탁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옷들이 많아서 재봉틀 기계 빼고는 어둑해서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귀연 언니, 언니 안에 있어?”

우리는 어쩐지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개미처럼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냥 집에 갈까?”

“그래, 언니 그냥 집에 가자.”

그때였다.

“누구니?”

귀연 언니 아빠가 어느 틈에 벌써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저씨는 다리가 좀 불편했지만 몸이 비쩍 말라서 발걸음도 종이처럼 가볍나보다. 우리는 아저씨의 발소리를 못들어서 괜히 오싹했다. 

“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귀연 언니 있어요?”

“귀연아!”

아저씨는 하고 싶은 말만 짧게 하시고 계속 일을 하셨다. 이 무더운 날씨에 계속 다리미질을 하시느라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안쪽에서 아줌마는 재봉틀 노루발을 내렸다 올리며 드르륵드르륵 수선을 하고 있었다. 어둑해진 가게가 눈에 익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 깜짝이야!”

진이는 소리를 질렀다. 귀연 언니도 소리 없이 다가와 진이의 어깨를 툭 쳤기 때문이다. 백향세탁소 사람들은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경이, 진이 왔니? 무슨 일이야?”

“응 언니, 너무 덥고 심심해서 왔어.”

“그래, 나도 텔레비전 보고 있었어. 심심하던 차야.”

“언니, 우리 무서운 얘기 해줘, 응?”

“그럴 줄 알았지. 무서운 얘기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하지만 진이가 저번에 밤에 오줌을 쌌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괜찮겠어?”

“뭐? 누가 그래?”

진이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귀연 언니가 해준 변소 귀신 이야기 덕에 화장실도 못간 진이는 참다가 그냥 자버린 것이다. 바자기를 뒤집어쓰고 소금 얻으러 이집 저집 다녀서 소문이 다 나버렸다.

“아, 언니 그때는 우리가 좀 어렸고, 이제는 괜찮아. 그리고 엄마가 요강도 샀어. 빨리 무서운 이야기 해줘.”

“해줘...”

진이도 어울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러지 뭐. 그럼 나갈까?”

귀연언니는 우리 둘의 손을 잡고 세탁소 밖으로 나왔다. 평상을 지나 골목길 끝 버려진 낡은 소파로 갔다. 귀신 이야기 하기 딱 좋은 장소다. 모기향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평상에서는 어른들이 막거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아빠가 제일 시끄러웠다. 기분이 좋아보이기도 조금은 슬퍼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귀연 언니의 입에 집중했다. 흡혈귀처럼 창백하고 눈이 퀭한 겉모습과 달리 수다쟁이 언니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전설의 고향에서 ‘내 다리 내놔’는 봐서 다 알고 있지?”

“응, 얼마나 무서웠다고. 아 한쪽 다리로 막 달려오면.”

진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해줄게. 홍콩할매 귀신이라고.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는 할머니…”

귀연 언니는 이야기 주머니라도 있는 듯 주저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알아 알긴 아는데 자세히는 몰라.”

“언니! 방방 할머니 맞지? 홍콩할매가?”

“글쎄. 그건 확실하지 않아. 그런데 말이야. 요즘 이상하지 않아?”

“뭐가....?”

“우리 동네 애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요즘에 상민이도 안 보이고, 완기도 안 보이고...”

“뭐야. 걔네들은 전학 갔잖아.”

“아 그런가?”

나는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언니가 말했다.

“전학을 갔는지 안 갔는지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지.”

“그런가? 근데 왜 자꾸 애들은 없어지는 거지? 홍콩할매는 대체 누군데?”

진이는 언니에게 물었다. 

“홍콩할매는 반은 고양이고 반은 사람인 귀신이야. 얼마나 잘 뛰는지. 너네 같은 어린 아이들이 아무리 빨라도 말이야. 금방 잡힐 수 있지.”

우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달리기에 자신 있는 진이도 막상 홍콩할매가 다가오면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벌써부터 걱정을 했다. 우리는 잘 시간을 훌쩍 넘어 밤 9시가 되도록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홍콩할매에게 안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아니. 몰라. 빨리 얘기해줘.”

“잘 들어.”

“응”

“대답할 때마다 홍콩을 붙여야 해. 그리고 학교에서도 네 번째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말고. 그리고 창문에서 어떤 할머니가 불러도 대답하면 안 돼. 나는 진짜 그 할머니를 본 적 있어. 귀연아, 귀연아 얼마나 부르던지.” 

진이와 나는 하도 손을 꼭 쥐어서 땀이나 미끄러졌다. 옷에 손을 닦고 다시 잡았다.

“그래서? 그래서 언니가 어떻게 했는데?” 

“그래서 내가 뒤돌아보려는 순간.”

“펑!!!”

“꺅!!!!!”

 우리는 갑자기 들리는 폭발음에 혼비백산하여 땅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에서는 커다란 불꽃이 일며 불이 났고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특히 평상에 앉아있던 동네 사람들은 달아나며 넘어졌다. 전봇대의 변압기가 터져버린 것이다. 1분도 되지 않아 불이 붙은 변압기가 쿵하고 떨어졌다. 

“빨리 신고해요! 누가 좀 신고했나요?”

“아니 이게 왜 터져?”

“한여름이라 전기를 많이 써서 그런가!”

“시끄러워요. 얼른 들어가 소방서 전화부터 해요.”

나는 아빠가 걱정이 되었다. 간신히 귀연 언니와 진이 손을 붙들고 집 앞까지 왔다.

“아빠! 아빠!”

“경이, 진이 거기있니?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너희는 괜찮니? 안 다쳤어?”

“네, 저희는 괜찮아요. 흐엉.”

 아빠를 보자마자 진이는 안겨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변압기가 떨어지면서 불은 크게 나지 않았다. 소방차가 오고 동네는 더욱 깜깜해졌다. 모든 집과 가게의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변압기가 터진 것보다 홍콩할매가 지금 나타날까봐 더 무서워.’

눈을 열 번 깜박깜박 거리자 칠흑 같던 동네가 조금씩 밝아졌다. 아빠는 나를 불렀다.

“경이야, 너 따라 들어오고 있지? 잘 안 뵈니 문턱 조심하고. 경이야! 경이야 왜 대답이 없어?”

“알았어요, 홍콩!”

그때 아빠에게 안긴 진이가 울음을 그치고 웃음을 와하하 하고 터뜨렸다. 다들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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