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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학급 회의는 어려워

우리 같이 노올자 #6.

 드디어 기다리던 개학이고, 1학기보다 더 바빠졌다. 학급회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장 때 하던 일들뿐 아니라 학급회의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2학기 반장은 혁구가 되었지만, 별로 일을 하려들지 않았고 좀 어설퍼서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분명 선생님도 나처럼 생각하시는 게 분명했다. 혁구는 풍금을 칠 줄도 몰랐고, 틈나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공을 찼다. 선생님을 돕거나 순금이를 챙기는 일은 여전히 내 일이었다.

“저런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방혁구같으니라고.”

나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안 하는 혁구에게 그냥 짜증이 나는 것. 그리고 학급회의 때문에 힘든 2학기가 되었다. 교탁 앞에 나가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학급회의는 생각만 해도 다리가 흔들흔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토요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

“왜 난 토요일이 제일 좋은데?”

진이는 내 속도 모르고 학교로 뛰어갔다. 드디어 2학기 첫 번째 HR시간이 찾아왔다. 앞으로 있을 큰 전쟁의 서막이라고나 할까. 

“여러분 학생회장이 된 경이를 잘 도와주길 바랍니다. 모두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여 학급을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죠?”

“네!”

아이들은 경쾌하게 대답했다.

“자, 경이는 앞으로 나와 회의를 이끌어 보세요.”

“네에…”

의도치 않게 나는 염소목소리를 냈다. 교탁 앞에 서니 친구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눈을 몇 번이고 깜박거렸다.  

 서기를 맡은 미선이가 나와 칠판에 “학급회의, 오늘의 안건”이라고 또박또박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글자 그대로 따라 읽어나갔다.

“학급회의, 오늘의 안건. 흠흠. 오늘의 안건은...”

“선생님 회장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 들려요! 회장 맞아요?”

혁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놀려댔다.

“와하하하하.”

혁구의 말에 아이들도 다 같이 웃고 책상을 두드렸다. 덩달아 긴장했다가 혁구 덕에 풀린 아이들은 점점 크게 웃어재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러지?’

 조용히 선생님을 돕거나,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은 좋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큰소리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싫어졌다. 

“선생님. 경이 얼굴이 딸기보다 더 빨간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홍당무같아요.”

“아닌데, 불자동차인데?”

짓궂은 남자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결국 선생님이 나섰다. 

“자 조용조용. 혁구, 민재, 수영이는 무조건 안건 2개씩 발표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 학생회장이라는 역할은 참 어려운 자리에요. 그럼에도 경이가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나왔죠? 선생님이 아까 뭐라고 했죠? 학교는 우리가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했죠?”

“네!”

“혁구가 안 들린다고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회장이 맞냐며 친구를 깎아내리고, 놀리는 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사과는 경이한테 해야지?”

“네… 미안하다!”

“혁구는 이따 회의 끝나고 제대로 정식으로 사과하도록 해요.”

“네 선생님.”

머쓱해진 혁구는 웃으며 경이에게 두 손을 모아 샤샤샤삭 빌며 파리흉내를 냈다. 나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혁구를 노려보았다. 혁구는 혀만 낼름 내밀었다.

‘똥파리 같은 놈.’

 회의는 다시 시작되었지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모두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오직 순금이만 존경과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학급회장님. 잘 하고 있습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이제 마무리를 좀 해 볼까?”

 선생님은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카메라로 아이들의 얼굴, 나의 모습, 창밖 풍경을 사진 찍으며 교실을 천천히 걸어 다니셨다.

‘선생님은 뭐가 그리 즐거우신 거야.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처음으로 선생님이 미웠다. 내 손과 발은 땀 때문에 미끌미끌했다. 마지막으로 건의사항을 받았다. 실내에서 실내화신기, 서로 별명 부르지 않기, 딸기우유와 초코우유 수를 더 늘리기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미선이는 전봇대처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모든 사항을 다 적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 이 이것으로… 학급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토네이도가 도로시의 집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집에 가서 잊지 말고 바로 실내화를 빨아오세요. 따뜻한 물에 담궜다가 세탁비누를 솔에 묻혀 열심히 빨아야 합니다. 엄마한테 부탁하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해야 해요. 알았죠?”

아이들은 크게 잘도 대답했다. 이미 혁구는 친구들과 저 멀리 운동장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혁구는 실내화주머니를 또 놓고 갔다.

‘방혁구. 아니 방구 똥파리 영구 땡칠이 같은 놈. 두고 보자.’

나는 혁구에 대한 복수심으로 다시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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