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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서울 적응기

우리 같이 노올자 #10

 까치는 오늘도 울지 않았다. 한동안 오던 친구들의 편지도 뜸해졌다. 나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대영국민학교 5학년 2반 반장은 유나가 되었다. 유나는 텔레비전 속 가수들처럼 예쁘장하다. 아이들의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유나 말 잘 들어라. 유나 말이 곧 내 말이다.”

 김석 선생님은 담배를 피며 말씀하셨다. 늘 손에 들고 다니는 막대기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유나는 늘 선생님 옆에 있었다. 무서운 언니들이랑도 어울려 다니는 아이였다. 뭐랄까, 조숙해 보이는?

 반장을 놓친 나는 음악 시간을 기다렸다. 혹시 반주할 수 있는 사람을 물으면 용감히 손을 들려고 했다. 

‘제가 잘 할 수 있어요! 전 학교에서 풍금 반주를 했거든요.’

 라고 말하려고 마음속으로 연습까지 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음악책 펴라. 오늘 배울 노래를 먼저 들어 보자.”

하지만 교실에는 풍금이나 피아노가 없었다.

‘어 그럼 반주는 어떻게 하지?’

 선생님은 테이프를 하나 꺼내더니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으셨다. 우리는 그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부르고 또 부르고 목이 쉬어라 계속 노래만 불렀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가만히 듣기만 하셨다. 

‘주무시는 건가?’

잠들기 딱 좋은 교실 온도긴 했다. 선생님은 진짜로 코를 골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자 노래는 여기까지 하고. 뭐 우리가 합창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나 해 주시겠다며 군대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우리는 눈살이 점점 찌푸려졌다. 선생님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 너무 맞아서 피를 철철 흘렸다는 경악스러운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대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의 미움을 샀다고 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우리 모두는 선생님 덕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모두 괴로운 얼굴로 그만 듣고 싶다고 표현했다. 그 표정을 보면서도 선생님은 종이 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너희는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거야. 이제 대학 다닌다고 매 맞는 시대는 아니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

 나는 처음으로 학교 가기 싫었다. 방학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속도 모르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만 갔다. 엄마는 내가 공부 때문에 적응을 못하는 걸로 생각하고 학원을 알아보았다. 

명품종합학원은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다. 

“학원비는 부담스럽지만. 경이 네가 열심히 해서 서울 애들 따라가야지. 근처에 여중 여고도 참 좋다더라.”  엄마는 수학, 영어, 국어 과목을 추가하고야 말았다. 학원 원장님들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이리라. 

 서울살이에 오만정이 떨어지는 사건은 매일 한 두 개씩 생겨났다. 공부는 금방 따라갈 수 있었다. 학원에서 마지막 단원 평가 문제를 풀었는데 1개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랑 수업을 같이 듣고 있던 원장님 아들 재하는 2개를 틀리고야 말았다. 재하의 아련한 눈빛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재하는 언제나처럼 원장실로 끌려갔다. 원장실에서는 서울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찍질 소리도 났다. 교실의 분위기는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수학 선생님도 조용히 채점만 할 뿐이었다. 재하는 호빵처럼 부풀어 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재하야 괜찮아?”

“응 괜찮아. 한두 번도 아닌데.”

“......”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너도 힘들지, 나도 힘들었는데. 우리 도망도 못 갔는데 떡볶이라도 같이 먹으러 갈래?’ 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까지 차올랐다. 그때 달걀귀신처럼 얼굴만 허연 원장님이 들어오셨다. 

 “어머 우리 경이는 평가 시험 다 맞았구나! 금방 서울 애들 따라잡겠어! 엄마한테 과학수업도 시켜달라고 해. 국영수만 해서는 또 조금 부족해요. 알겠지?”

“…네, 말씀드릴게요.”

원장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한 향수냄새, 금귀걸이, 금목걸이가 거대한 마녀같았다. 실제 원장님 키는 나보다 작은데 말이다. 내 뒤에 앉은 재하는 개구리처럼 꾸륵 꾸륵 가만히 앉아 가쁜 숨만 쉬고 있었다. 

‘아, 언제 나는 서울 살이에 적응할까. 재하처럼은 못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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