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Jan 18. 2022

외로워서 왔어요

내가 너무 외로워서 시간이라도 빨리 보내려고 왔어.

내가 너무 외로워서 시간이라도 빨리 보내려고 왔어

내가 일하는 곳엔 어르신이 비교적 많이 오는 편이다. 이곳 역시 키오스크를 들여오면서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일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청년인 나 역시도 가끔 버벅거리게 되는 키오스크를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찾아오는 어르신이 꽤 있다. 예매를 도와드리며 가끔 말벗을 해드리곤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라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짧게 대화를 끝마치곤 한다. 비슷한 듯 다른 질문을 듣고 답할 때면 문득 떠오르게 되는 이름 모를 어르신 한 분이 있다.


일 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의 일이다. 아침 근무를 하고 있던 그날은 유난히 고객이 없어 같이 일하는 동료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객이 오기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맞은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어르신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자그마한 어르신은 영화 시간표가 있는 배너를 한동안 들여다보더니 쭈뼛거리며 우리에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내 자그마한 어르신에게 시선을 쏟고 있던 터라 가까워지는 그를 보며 대화하는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게 되었다. 우리 앞에 선 자그마한 어르신을 보며 의례 습관처럼 하게 되는 말을 건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물음에 그는 덜컥 마음을 쏟아내듯 빠르게 대답했다.


'외로워서 왔어요.'


내가 너무 외로워서 시간이라도 빨리 보내려고 왔어.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서 듣는 말치고는 너무 내밀해서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동료 역시 꽤나 놀란 눈치로 자그마한 어르신을 잠시 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했다. 당황해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쉽사리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가장 빨리 보실 수 있는 영화 순으로 영화 제목을 천천히 읊어드렸다.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지 않아 보였지만 최대한 또박또박 외로움을 걷어내고 들을 수 있게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그는 십분 뒤면 시작하는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였다. 영화 티켓을 뽑아 그에게 전해드리는데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티켓을 잡는 그 손이 너무도 작고 주름져서 그보다 너무 차갑고 외로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는 가방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우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우리는 그 외로움에 대해 아무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러닝타임이 다섯 시간을 훌쩍 넘은 영화 <해피아워>를 보러 갔다. 이렇게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극장에서 붙잡히듯 봐야 한다는 약간의 허세와 도전의식이 불러온 선택이었다. 물론 감독의 전작을 좋아한 이유도 크지만. 영화는 삽 십 대 후반에 접어든 네 사람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영화 속 네 사람은 친구이기에 나눌 수 있는 사사로운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흘러간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거나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다음 만남을 잡는 모습과 한 친구가 주최하는 워크숍에 함께 참여해 균형을 잡는 모습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서 이해가 되는 마음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서 곧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는 마음이 수없이 반복되다 영화가 끝이 났다.


영화 속 인물들은 긴 러닝타임만큼이나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꽤 많은 일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요리를 잘하고 내일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남편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과 악몽 같은 결혼생활을 했다는 사실과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알아 채지 못한다.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툭하고 털어놓고 만다. 불쑥 외로움을 꺼내 놓았던 자그마한 어르신처럼. 일하며 만나게 된 소설가에게 삶의 무료함을 고백하고 버스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고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종업원에게 외로움의 틈을 보이거나 워크숍에서 만난 낯선 이를 따라 충동적으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외로움은 어디서 자꾸 자라나게 되는 걸까. 어떻게 해야지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거지. 텅 비어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면 그 자그마한 어르신을 가만히 떠올리곤 한다. 덜컥 꺼내놓았던 외로움의 목소리와 난처하게 들키고 만 고독한 손과 외로움에 자꾸 어긋나는 영화 속 인물을 함께 떠올리면서. 마음의 틈으로 자꾸자꾸 새어 나오는 난처한 감정과 나를 문득 짓누르는 외로움의 무게와 또다시 외로움을 잔뜩 떨어뜨리며 길을 나섰을 그의 뒷모습을 가늠해보면서.




사월 인스타그램 

사월 유튜브 <사월상영작>






단편 시나리오집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안내

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 판형 : 120mm X 165mm

페이지수 : 120p

양식 : 시나리오

제본 : 무선제본

가격 : 9500원

줄거리 : 연희는 혜선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판매처 안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스토리지북앤필름 강남점 - 스토어 바로가기

에이커북스토어(전북) - 스토어 바로가기

올오어낫싱(독산동) - 스토어 바로가기

관객의 취향 (관악구) - 스토어 바로가기


<오프라인>

스토리지북앤필름 해방촌

하우스 북스 (잠실)  

후란서가 (홍대)

북티크 (홍대)



<사월 배송>

제가 직접 포장하여 배송해드리는 구매 신청 링크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구매 신청 


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