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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an 25. 2022

일하는 직원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카페를 찾지 않았다.

한동안 그 카페를 찾지 않았다

즐겨 찾는 카페가 한 곳 있다. 역 근처에 있는 그 카페는 테이크 아웃으로만 운영하는 아주 작은 규모의 프랜차이즈 카페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 근처에 있는 카페이고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홍보하는 카페이다 보니 매번 커피를 사러 갈 때면 기다리는 사람과 주문하려는 사람을 잘 구분하여 줄을 서야 할 정도다. 빠른 회선율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니 그 빠름에 누가 되지 않게 줄을 서면서 미리 메뉴도 정해놓고 결제할 카드도 꺼내놓고 적립할 바코드까지 휴대폰 화면에 띄워둔 채 주문을 기다리곤 한다.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두 번도 들린 적이 있다 보니 일하는 직원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었다. 업무가 바쁜 편인데도 직원들이 자주 바뀌지 않아 평소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 직원이 일하는 날이구나, 오늘은 저번에 봤던 직원이 쉬는 날인가 보군, 정도의 오지랖을 속으로 부리곤 한다.


주문하는 메뉴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크게 개성 있게 주문하는 편도 아니기에 그저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 1 정도를 맡고 있는 사람일 텐데 언제부턴가 일하는 직원 중 한 분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텀블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지키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텀블러와 다회용 빨대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우연히 코에 일회용 빨대가 박힌 채 죽어가는 동물의 모습을 인터넷 기사로 접한 뒤부터 가지게 된 습관이 이제는 깜박하고 놓고 오면 죄책감이 스멀스멀 퍼지게 되는 마음으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날은 깜박하고 텀블러를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밖에서 커피를 마셔야 하나 참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카페를 찾게 되었을 때였다.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를 리더기에 꽂으려는데 직원이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오늘은 텀블러 안 가지고 오셨나 봐요. 싱크대 거치대에 누워 있는 텀블러를 잠시 떠올리다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네, 오늘은 깜박해서. 괜히 작아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나에게 직원은 적립하시죠?라는 말과 함께 바코드 리더기를 오른손에 들고 휴대폰을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결제를 모두 끝낸 후 카페를 벗어나며 생각했다. 저 직원에게 나는 매번 텀블러를 챙겨 다니고 적립을 하는 고객으로 기억되었구나.



평소보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어느 날이었다. 지칠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몸도 마음도 모두 소진될 때로 소진되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잔뜩 휩싸여 있었다. 집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먹을 힘조차 없었기에 집에 가는 길에 자주 가는 그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늦은 시간의 방문이어서 그런지 가게에는 줄 서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계산대에 가까이 가니 나를 기억하고 있는 직원이 계산대 뒤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괜히 시선을 피하면서 멋쩍게 서 있었을 텐데 그날은 그 직원도 지쳤는지 벽에 몸을 살짝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올 때까지 그들을 가만히 구경했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던 활기 돋는 다른 직원도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무척 고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느릿하지만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직원의 모습을 보며 충동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방금 전 편의점에서 산 2+1 초콜릿을 나눠 주고 싶다. 평소 낯선 타인에서 오지랖을 부리는 편은 아닌데 그날 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콜릿을 손에 쥔 채 어떤 말을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피곤해 보이셔서 이거 나눠 드세요. 초콜릿을 건네자 직원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커피를 들고 무슨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그곳을 벗어났다.


그날 이후 한동안 그 카페를 찾지 않았다. 그 근처에 갈 일이 현저히 줄어들어서이기도 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잠시 내가 잊히기를 기다리고 있어서 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나는 다시 그 카페를 찾았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직원이 그날도 그곳에 있었다. 사람이 꽤나 붐비는 점심시간이었던 터라 주문을 하고 멀찍이 서서 커피를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텀블러를 들고 오는 직원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픽업대 앞으로 걸어갔다. 텀블러를 받아 뚜껑을 닫으려는데 직원이 대뜸 나에게 물었다. 달력 필요하세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는데 직원이 브랜드 로고가 찍힌 달력을 들어 보였다. 생각해보니 새해 달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시면 감사하죠.


일월을 가리키며 달력은 내 책상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벌써 절반이나 지나버린 일월 달 달력에는 유일하게 매달 까먹지 않고 챙겨야 하는 강아지 심장 사상충 약 날짜가 보라색 색연필로 동그라미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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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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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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