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Feb 01. 2023

언니, 라도 될 줄 알았어

시시한 시작.

침대에 누워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릴 적부터 내가 즐겨하던 취미였다. 주로 그 상상의 대상은 당연하게도 나였다. 일주일 혹은 몇 달 뒤의 내가 겪게 될, 겪었으면 좋겠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간혹 아주 먼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상상의 모습은 사실 지금 떠올려보면 조금 전형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멀쑥한 옷을 차려입고 조금은 초조한 표정을 지은 채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런 모습. 거기에 누군가와 진지하게 통화까지 하고 있다면 어린 날의 내가 상상하던 지나가는 누가 봐도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을 것 같은 어른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성인 여성의 모습이 완성된다.


가끔 상상을 넘어 공상에 빠질 때에는 보다 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가 나타나 우산을 씌어주며 수줍게 사랑이 싹트거나 난감한 삼각관계에 빠져 매일매일 시름에 잠겨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거나 뭐든 돈으로 사겠다며 떵떵거리는 안하무인을 단숨에 굴복시키는 결코 참지 않는 잔다르크 같은 여성이 주요한 인물 구성이었다. 아마도 다년간 친구들과 돌려 읽은 순정 만화와 인터넷 소설, 로맨스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설정들이 다분했다. 아니면 어쩌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어린 나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까지 내 삶의 장르는 순정 만화나 로맨스 드라마보다는 하루에 관객이 많아봐야 열명 안쪽인 소규모 극장에 하루에 한 번 상영될까 말까 하는 세 시간까지 극 사실주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 비 오는 날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나타나기보단 처량하게 비를 피하고 있는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배달기사 아저씨가 생활감 잔뜩 묻어 있는 우산을 건네주거나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뇌를 하기보단 내가 사고 쳤으면 너만 한 아들이 있겠다 싶은 꼬마 아이와 쭈쭈바 하나를 놓고 눈치 싸움을 하는 것이 더 현실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뭐든 돈으로 사겠다며 떵떵거리는 안하무인은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조금 시시한 어른으로 자라 버리고 말았다.



결코 참지 않는 정의로운 잔다르크 같은 어른이 되진 못하더라도 지금쯤이면 나를 보살필 수 있는 아늑한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벽면을 가득 채운 삶을 살아갈 줄 알았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대접하거나 매번 갈 수는 없더라도 가끔은 잔잔한 음악이 깔린 분위기 좋은 와인 바에서 몇 년 산 와인이 좋더라는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 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단지 나이가 많아서 불리게 되는 그 '언니'라는 타이틀 말고 정말로 누군가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말 어른 같은 '언니'가 되고 싶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장님에게 대신 쓴소리를 해주고 한 번도 손질해 본 적 없는 눈썹을 손수 다듬어주고 맛있고 좋은 건 먼저 내 손과 입에 쥐어주려고 했던 내 기억 속 어른스러워 보였던 언니들처럼.


기억을 더듬어가며 언니의 모습을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사실상 언니력 미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자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불쑥불쑥 유치한 마음이 떠오르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뭐든 먼저 양보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하면서도 문득 서운한 감정이 차오르는 걸 분명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그저 시시한 언니로 밖에 남지 못하는 걸까. 내 기억 속 언니를 따라잡기엔 역시 나는 역부족인 걸까. 그런데 시시한 거.. 나쁜 건가?


사실 난 시시한 농담도 좋아하고 어설프게 만든 시시한 음식도 좋아하고 한없이 하찮은 시시한 물건도 좋아하고 시시하게 보내는 시간도 좋아한다. 상상처럼 이상형이 나타나 우산을 씌어주는 것도 좋지만 곳곳에 흙이 묻은 우산을 건네주는 비에 젖는 낡은 손도 좋다. 삼각관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지만 동네마트에서 냉동고만한 키를 가진 꼬마가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좋다. 나와 아이스크림 취향이 겹치지 않아 내심 안도하게 되는 그 순간도 재미있다. 어쩌면 내가 시시한 어른이자 시시한 언니가 된 건 조금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시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닿을 수 있는 곳은 역시나 시시한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까. (어쩌면 나로선 이미 완벽한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도..) 그래서 그저 시시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했다. 시시하게 누군가의 실수를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넘어가고 시시한 솜씨답게 눈이 짝짝이로 그려진 쿠키를 괜스레 뿌듯해하며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유치하고 시시한 농담도 던지며 웃고 떠드는 문턱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이는 시시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 가끔은 시시한 언니처럼 보이기를 노력하면서.








사월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일하는 직원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