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아, 준아, 준아.
...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항상 '준이'라고 부른 건 아니었다. 가끔씩 불렀다. 기분 좋을 때 부르는 것만도 아니었으며 규칙은 불규칙적이었다. 물어볼 걸 그랬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 꼭 물어볼 걸 그랬다. 캘린더에 빼곡이 적혀있는 '투 두 리스트' 중에 '엄마에게 왜 준이라고 불렀는지 물어보기'라고 적어놓을 걸 그랬다. 사실 엄마가 갑자기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물어볼 기회는 충분했을 텐데.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오래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으면 아마도 물어봤을 것 같다. 이제 물어볼 사람도 없고 대답할 사람도 없다. 아버지한테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다. 아마 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그렇게 불렀는지 조차 모를 거다.
엄마는 며칠 전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할 겨를도 없이 바로 사망했다. 지금도 그 사망이라는 공식적인 단어를 엄마에게 쓰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다.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사망하셨고, 자식의 용어를 쓰자면 돌아가셨다. 돌아가다니, 어디 이딴 표현이 있나싶다. 어디로 돌아갔단 말인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내 옆에 있었고, 엄마 역시 외할머니에게서 태어났을 텐데 어딜 돌아간다는 말인가.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나.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나. '했던'이든 '하였든'이든 과거형 표현이 여전히 낯설다. 엄마에게 현재형 동사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더이상 없다.
엄마의 장례식은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장례식이 끝난 뒤 아버지와 형과 나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엄마의 부재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매달 말 용돈을 50만원씩 형과 나에게 부치는 건 아버지의 몫이었다. 원주에 사는 형과 서울에 사는 나의 자취방에 월세를 꼬박꼬박 입금하는 것도 아버지의 몫이다. 엄마가 있었을 때, 가끔씩 받아먹던 받찬은 이제 글렀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무슨 반찬을. 됐다. 페인트를 판매하시고 페인트칠 작업까지 하시는 아버지는 하루를 일 년처럼 산다. 빼곡하고 알차고 성실하게. 그런 아버지가 용돈을 하루 이틀 늦게 보내준다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는 형과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몫까지 아버지가 할 순 없다. 난 어머니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알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알리고 싶지 않음은 당연했다. 좋은 일도 아닌데. 학교에서 스터디를 같이 하는 한 친구만 이를 알고 있다. 며칠 동안의 결석에 대한 이유를 거짓으로 지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현석, 한 학년 후배이고 한 살 어리다.
-형, 잘 갔다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