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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30. 2021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신중한 사람


1."혼자 노는 거 외롭지 않아?" <나 혼자 산다>가 방영된 지 8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질문을 받는다. 질문에는 악의도, 못된 의도도 없다. 단순한 궁금증, 조금의 걱정, 이런 것들이 조금씩 섞여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질문이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다(혹시나 이런 질문을 했던 친구가 미안해할지 모르니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 정말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다). 기분 나쁜 감정은 대부분 태도 때문에 발생하고, 내가 교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항상 젠틀하고 나이스하니까. 그리고 그런 질문은 혼자 놀기에도 바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나에 대한 친구의 깊은 이해로 끝이 나니 문제가 없다.



2.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를 봤다. 노홍철과 정지훈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갖 도시를 여행하며 미식 여행을 하는 내용이다. 프로그램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노홍철은 노홍철이었고, 정지훈은 정지훈이었으며, 대단한 맛집을 찾는 과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놀거리를 발굴해내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켜놓고 보기에 좋은 편한 예능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제주도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만나는 씬이었다. 네 사람은 첫 회와 마지막 회, 두 번에 걸쳐 만남을 갖는데 그 장면에서 느낀 것들이 몇가지 있다.



3. 노홍철은 네 사람 중 유일한 미혼자다. 이효리, 이상순, 정지훈 세 사람이 노홍철에게 말해준다. "부부는 그냥 제일 친한 친구 같은 거야. 별거 없어." 살면서 그런 말을 처음 들은 게 아닌데, 투닥거리며 친구 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효리-이상순이 그런 말을 하니 이전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 말을 들은 노홍철도 크게 공감하는 것 같았다. 그 역시 오랫동안 그런 짝을 기다리는 듯했다.



4. 정지훈은 노홍철에게 "눈이 너무 높다"라고 놀렸고, 이효리는 "사실 나도 옛날엔 눈 높았어. 근데 다르게 말하면 신중한 거지."라고 말해줬다. 그럴까. 정말 눈이 높은 건 신중하다의 다른 말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냥 신중한 사람이고 싶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 생각한다.



5.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사람을 잘만 사귄다. 나는 그렇지 않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잘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조차 어렵고, 그러니 소개팅으로 잘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가끔은 이게 나의 문제인가 싶다가도,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 걸 어쩌겠나 싶다. 소개팅에서 만난 '괜찮은 사람'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게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모르는데 어떻게 사귀어요?'라는 말과 '사귀면서 알아가면 된다'는 말 사이에서 나는 한쪽으로만 심하게 기울어 있는 사람이다. '괜찮은' 정도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어쩌겠나. 그냥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 걸. 호감이 없는 사람에게 밥을 먹자고 말하고, 커피를 마시자고 말하는 행위,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노력이 힘든 일인 걸. 물론 내가 애프터를 했어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을 확률도 높았겠지.



6. 별다른 대꾸없이 세 사람의 말을 듣던 노홍철의 머릿속에 무엇이 그려졌을지 나도 예상할 수 없다. 연말이라 그런지 그런 대화를 들으니 사랑과 연애, 결혼 같은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먹보와 털보>를 보다가 이런 생각은 하게 될줄 몰랐는데. 밤은 길고, 잠은 오지 않는다. #b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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