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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핫초코 Apr 25. 2022

사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이 말을 참 싫어했다.


  근사한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인상적인 순간이 있을 때 그 감상을 충분히 느끼고 싶은데, 카메라와 핸드폰부터 들이미는 것에 반감을 가져서 였다. 그 기분을 즐기면서 사진도 남기면 되었을텐데 비뚤어진 반골 기질로 '나는 사진을 안찍고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될거야'하고 정해버렸다. 여행을 가도 인증샷 남기라고 하면 손사래 치면서 거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하면 찍어주겠다고 했다. 이런 고집으로 학교에서는 인기 전공과목인 '사진 기법'도 등한시하고 건너뛰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실생활에 가장 도움되는 수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몇몇 소중한 시간의 기억들이 옅어지고 추억할 수 있는 매체도 없다는 걸 후회하게 될 즈음부터 의식적으로 좀 더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뒤늦게 알게된 매력이지만, 사진은 시각적인 기록이면서 그 순간의 분위기를 통째로 담아두는 상자 같은 느낌이 있다. '해리포터'에서 펜시브를 쓰고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억 구슬을 들여다보듯이 생생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서는 굳이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사진을 보면 그 안에 담긴 기억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때로는 존재했는지도 잊은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오래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우연히 지폐라도 발견한 듯한 그런 즐거움을 준다. 오래된 지인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도 옛 사진이나 기억을 떠올리면서 회상하고 서로 다른 기억을 반박하고 떠드는 일이다.


  그 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내 기억이 없는 다른 사람의 사진이라도 좋은 사진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 지난 주말에는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최근 들어 가장 감정적인 경험을 많이 했다. 섹션별로 분위기나 배경음악을 달리하여 순수함, 쓸쓸함, 해방감, 설렘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었다. 구도니 색감이니 하는 것들은 잘 모르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들이 주로 마음에 들었다. 덤불로 기어들어가는 아이들은 발바닥만 보여도 장난꾸러기 모습이 상상되고, 신혼여행을 담은 1인칭 사진은 상대방만 보이는데 화면 밖 배우자의 들뜬 애정이 느껴졌다. 어떤 사진은 흔들려서 더 마음에 들었고 어떤 사진은 너무 잘 찍혀서 매력이 없었다. 평소에는 멋 없는 담배 피는 모습이나 나체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도 사진 속에선 제법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예술은 금기시 되거나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전달하곤 한다.


  최근 내 모습이 나온 사진을 찾다 2년간 마스크 없이 제대로 남긴 사진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그 전이라고 해서 딱히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엇에 빠져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을테니 괜스레 그랬나보다. 지나가는 시간들에 집착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사진을 남겨두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 22.04.23. 디뮤지엄을 다녀온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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