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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핫초코 Apr 08. 2018

말이 통하지 않는 즐거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에는 반사적으로 이어폰 꽂고 뭐가 됐든 음악을 튼다. 악 자체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주변의 소리를 차단해서 나의 개인공간을 만드려는 목적이 더 크다. 

   도시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입력된다.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걷거나 식사를 하면서 주변의 모든 말이 귀로 흘러들어온다. 심지어는 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순간에도 귀로는 끊임없이 말들이 흘러 들어온다. 다른 사람의 통화, 연인들의 속삭임, 소주병을 기울이며 언성을 높이는 아저씨들, 누구의 목소리선택할 수 없이 내 귀를 통과하는 동시에 꾸역꾸역 정보를 집어 넣는다.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와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한 추측 등 부차적인 정보들까지도 모두. 평소에는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원치 않을 때에는 과잉 정보일 뿐어서 쉽게 지친다.


   올해 초에는 스위스 출장을 다녀왔다. 남들은 부럽다고 하는 해외 출장이지만, 나는 무기력했던 시기여서 귀찮았지만 억지로 다녀왔다. 자유일정이 많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준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였다. 나홀로 외지에서 일주일 가량 지낸 것은 처음이었는데, 기대도 하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스위스에 도착하여 독일어로 대화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고립되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건 나자신뿐이어서 내 생각을 주의깊게 들어줄 수 있었다. 공항이나 터미널에 사람이 아무리 많고 북적거려도 그 사람들의 말은 근본적으로는 기차 소리나 바람 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남들의 말을 듣느라 기운을 빼앗기지 않아도 되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은 모두 해결되어 사람에게 말을 걸 일도 별로 없지만, 대화가 필요할 땐 어설픈 발음으로 "구텐탁"하고 인사하면 친절히 영어로 대화해주었다. 즐거운 대화를 하고 "당케"하고 싱긋 웃어주면 기분좋게 떠날 수 있다. 하고싶은 말만 하고 듣고싶은 말만 듣는 건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굳이 비유하자면 쓸데없는 파일들로 지저분하고 느려진 컴퓨터를 포맷하고 느끼는 상쾌함과 비슷했다.


   말이 안통하는 것도 길어지면 무척 외로웠을 거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은 매우 적절해서 지겨운 줄 모르고 나자신과 즐겁게 대화했다. 여행은 가기전까지는 번거롭지만 그 뒤부터는 대체로 즐겁다. 도시에서 지쳤을 쯔음 다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면 좋겠다.


30도. 열을 식히고 상쾌했던 순간을 기록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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