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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2화] 흑백 필름으로 세상을 담는 사진가, 진형준

인력거꾼 동료


2018년,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이 시대. 고화질 칼라 사진, 다양한 효과를 넣은 사진이 넘쳐나는 지금. 여전히 흑백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주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 흑백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진을 컴퓨터로 뽑지 않고, 어두컴컴한 암실에서 뽑는다.
이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옛날 사람일까? 아니다. 올해 이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풋풋한 남자 청년이다. 이 청년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빠이'(인력거꾼 일터에서 쓰는 닉네임, 본명은 진형준)다. 빠이는 나와 함께 인력거꾼(부업)을 하고 있는 친구다. 이 친구가 반년간 유럽여행을 떠나서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특이한 사람을 인터뷰를 하는 나에게, 빠이는 매력적인 인터뷰감이었다.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뽑는 '젊은이'였다. 빠이는 왜 시대에 뒤처진 방식으로 작업을 할까? 여행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을 텐데, 고맙게도 빠이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가장 심플한 색으로 세상을 담는 사진가, 빠이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빠이는 누구인가?>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 빠이(진형준)


빠이는 어떤 사람이야?
나는 설명충(설명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 이지. 굉장히 수집하는 거 좋아하고, 설명하는 것도 좋아해. 난 뭔가 집요한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순댓국을 먹고 너무 맛있으면 그 순댓국집의 모든 걸 알아야 되는 거야. 레시피가 어떻고 그 집이 언제 지어졌고, 순댓국의 역사는 어떻고. 뭔가를 좋아하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어. 실제로 순댓국을 한 달 동안 매 저녁마다 먹었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한 달 동안은 물회를 먹었고.
  
안 질려?
맛있는데? 먹을 때마다 음식에 대해 조금씩 배우는 거야. 물회를 먹을 때도, 처음엔 초장 맛만 나는데 그다음엔 광어랑 섞으면 무슨 맛이 나고 그다음엔 무슨 맛이 나고, 이런 걸 서서히 터득하는 거지. 순댓국을 먹으면서도 똑같았어. 매일 순댓국을 먹으면서 순댓국 역사까지 알게 되고. 순댓국 역사에 대해 알려줄까?
  
아니 그건 됐어.
  
더 이상 빠이가 설명하게 허락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인터뷰 시간이 서너 시간은 족히 넘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전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빠이에게 이미 한 시간 동안 음료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꽂힌 게 음료라면서, 빠이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관한 설명(역사, 성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을 줄줄이 읊었었다.

<사진가의 시작: 집요함이 이끈 길>


사진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어?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주워온 카메라로 처음 시작했어. '야, 이 카메라 선물 받았는데 네가 써라.' 그전엔 카메라에 1도 관심 없었어. 사진을 하기 전엔 취미가 좀 많이 바뀐 편이었어. 음악도 했었고, 글도 썼었고. 나 나름 글쓰기로 중2부터 고1까지, 3년 동안 입상했었어.(뿌듯) 한때는 교사를 꿈꿔서 그쪽을 준비하기도 했었고.
  
아빠가 카메라 주워온 때부터 사진에 꽂히기 시작한 거네?
사실 그때 꽂힌 건 카메라였다? 사진으로 넘어온 건 22살 때고. 그 당시엔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를 좋아했어. 카메라로 포커스 잡는 법, 잘 찍는 법, 예쁘게 찍는 법에 관심 있었는데, 22살 때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만나면서 카메라 말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선생님은 누구였어?
대학교수였어. 사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제 강사였지.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서 교양수업을 청강했는데, 수업이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그분을 검색하다 보니, 그분이 블로그를 하더라고?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사진 클래스를 하는 거야. 거기서 사람을 모집하길래 신청해서 들어가 봤다? 근데 다 전문가들만 있는 거!
  
역시 빠이 성격대로 되게 집요하다.
그때 그분들 다 어리둥절했어. 그 클래스는 외부 공지도 안 하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신청하는 고인물(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 모임이야. 다들 사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사진에 대해 1도 모르는 새파랗게 젊은 애 하나가 온 거야. 원래 1주일 차에 그만 나가려 했는데, 그분들이 계속 나와 보래. 그때부터 거기 있는 고인물들이 나를 보듬어줬지.
처음 1년 동안은 거리 계산만 했어. 단순 암기식이었어. 거리랑 빛의 세기를 만날 외우고, 하루에 많으면 5000장씩 수동으로 사진을 찍었어. 그리고 기술이 익숙해지니 스스로 찍으러 다녀보고, 사진의 역사, 철학도 함께 배웠지.

근데 기술적인 부분을 하다 보면 질리지 않아?
질리지. 하루에 5000장씩 찍다 보면 얼마나 질리는데. 그런데 연마하다가 슬슬 내 칼을 갈아봤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한 번에 갈리는 거야! 그때 쾌감이 있지. 근데 난 뭘 하든 그런 습관이 있어. 연마를 되게 좋아한다? 예를 들어 롤(게임)을 연습하잖아. 만약 내가 롤을 파고들었다면 스킬의 거리를 외웠을 거야. 스킬 거리에 익숙해지려고, 몇 천 번을 클릭해보는 거지.



'롤의 스킬 거리'. 필자도 롤이란 게임을 자주 하긴 하지만, 거리를 외울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역시 빠이 다운 생각이다. -출처: 롤 공식 사이트


순댓국과 물회에 집착하던 빠이. 먹었던 음식은 하루 동안 입에도 못 대는 나로선, 빠이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빠이의 인생 얘기를 듣다 보면, 오히려 그 성격이 빠이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빠이가 집요하지 않았더라면, 클래스에 들어가 사진을 배울 기회도 없었을 테고, 사진을 하루에 5000장씩 찍으며 기술을 연마하지도 않았을 테다. 결국 지금의 빠이를 만든 건 빠이 자신이었다.


<빠이가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


빠이는 본인의 사진이 다른 사람들 사진과 어떤 점에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해?
다른 건 없는 것 같아. 왜냐면 사람들이 보는 풍경은 다 비슷하기 때문이야.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건, 단지 내가 살았던 삶이 다르다는 거지. 모든 사람의 삶이 다른 것처럼. 그 누구도 완벽하게 같은 삶을 살 수 없듯이. 그래서 난 유명한 데는 굳이 안가. 왜냐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거든. 나보다 훨씬 잘 찍는 사람들도 많고, 사진도 고화질이야.
대신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사진에 담는 편이야.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걸 찍고 그것들을 보여주지. 사진은 눈이 찍는 거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눈으로 보는 세상을 카메라가 담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카메라로 찍는 거지. 카메라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야.

출처: 빠이의 하드디스크


특별히 흑백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가 있어?
흑백필름이 싸고 현상하기도 쉬워서!(웃음) 거창한 의미라면 흑백은 동등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각자 보는 색이 다르다? 같은 색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 대신 흑백은 모두에게 동등하지. 그리고 색이 다르면 집중하는 정도가 다르잖아. 빨간색처럼 자극적인 색이 있으면 그쪽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근데 흑백은 동일하거든. 그리고 흑백은 칼라 사진보다 오래 봐. 깊고 오래 보게 되어있어.

빠이가 바라본 인력거와 인력거꾼


흑백 사진 찍을 때, 칼라 사진을 찍을 때보다 특별히 신경 쓰는 게 있어?

모든 사진가가 그렇겠지만, 빛이 굉장히 중요하거든. 흑백사진으로 찍을 때,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밸런스가 있어야 돼. 흰색이 너무 밝으면 형태가 뭉개지고, 검은색이 너무 어두우면 형체가 보이지 않아. 그런 걸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지.
하지만 그것보단 사진 해석에 더 신경 쓰는 편이야. 물론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도 있는데, 사실 나는 사진엔 본인의 해석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일단 흑백이란 거 자체가 왜곡이거든. 장애(흑백만 볼 수 있는)가 있지 않는 이상 흑백 자체가 왜곡이야. 그리고 사진 자체가 왜곡이기도 해. 인간의 눈은 동그랗잖아 근데 사진은 네모나잖아. 이미 왜곡된 프레임으로 왜곡이 일어나는 거지. 원래 최초의 사진은 동그랬어. 카메라가 발명될 당시에는 사진이 동그랬거든. 그중에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잘라서 네모로 만들었지. 사진 자체가 왜곡이라 사실을 그대로 담아낼 수가 없어. 그래서 의미에 집중하는 거고.

필름 카메라를 특별히 많이 쓰는 이유는?  
디지털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보다 더 빨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편리하긴 해. 물론 필름도 그때그때 바로 현상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난 게을러서 급한 일이 아니면 느긋하게 현상하는 편이거든. 보통 한 달은 지나야 나오지. 늦으면 계절이 바뀔 때도 있고.
그런데 오히려 그 불편함이 즐길 거리가 되기도 해. 나는 찍고 싶은 장면을 충분히 눈으로 즐기고 한 번 집중해서 찍고 또 눈으로 즐기거든.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잡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찍게 돼서 장면을 즐길 여유가 사라지더라.  
이렇게 대충 찍어서 어떻게 프로냐고 한다면... 뭐 어때! 난 지금은 돈 받고 찍어주지 않는걸! 그럼 어떻게 찍든 내 맘이지!


빠이의 카메라


사진 찍을 땐, 어떤 걸 자주 찍는 편이야?
딱히 주제에 구애받진 않지만, 보통 동물을 많이 찍어. 귀여워서 찍는 건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대부분 동물인 것 같아. 초원에 묶여있는 말이라든지, 백골이 된 백곰이라든지. 이상행동을 보이는 원숭이라든지. 그게 내 마음을 움직이면 찍어. 동물들이 어떻게 보면 날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을 거 같아. 초상권을 침해하니까.(웃음)

빠이는 동물 사진도 근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란 영화 본 적 있어? 거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진가가 사진을 찍지 않는 장면이 있거든. 빠이도 그런 적이 있었어?

있었지. 라오스의 남쏭강(NamXong river)에 리버 튜빙이라는 게 있어. 엉덩이에 튜브를 끼고 내려가는 건데, 그때 봤던 하늘빛이 너무 예쁜 거야. 천연색이라는 걸 처음 봤어. 세상 모든 빛깔을 하늘이 담고 있는 거지. 그때 사진을 찍으려면 찍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보면서 떠내려갔어.
  
왜 사진을 찍지 않았어?
내 감동을 해치니깐. ‘저 풍경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순간 감동이 사라지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대게 그 순간을 소유하고 싶어 해. 그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니까, 사진을 찍어서 소유하고 싶은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게, 그 순간을 찍으면 결국 내 머릿속에선 잊혀져. 제일 멍청한 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뭘 하고 있는데 막 사진에 담아. 그 순간을 눈으로 담을 생각은 안 하고! 근데 그렇게 찍어도 나중에 어차피 안 봐! 그래봤자 인간의 눈과 귀에 비해서 음질도 떨어지고 화질도 떨어져.

빠이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순간을 담으려다 현재를 놓치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을 담는 사진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하기엔 놀라웠다. 사진가조차 아름다운 상황을 담지 않고 오히려 즐기려 한다니.

"가끔은 사진을 찍지 않는 순간이 있네. 그냥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야."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中


사진 작업 과정 중에 가장 좋은 게 뭐라고 생각해?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좋은데, 현상하고 인화할 때도 좋아. 필름으로 찍다 보면 사진을 확인 못하잖아. 현상하는 시간은 자기를 확인하는 시간이거든. 아무것도 없는 필름을 액체에 담가 놓고 형체가 또렷이 나오면, 내 마음이 언제 움직여서 찍었는지 보이거든. 일기를 썼는데 한 달 뒤에 볼 수 있는 일기인 셈이지.
  
인화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려? 
오래 안 걸려.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인화하니깐 한 달 정도 기간이 있는 거지. 그런데 한 달 뒤에 뽑은 사진을 보면 느낌상 1년은 지난 느낌이야. 흑백사진이다 보니까. (웃음)
  
굳이 현상과 인화를 아날로그로 하는 이유가 있어?
컴퓨터로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 아날로그는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거든. 그런데도 여전히 고집하는 이유가, 이젠 그걸 안 하면 어색해서. 사람마다 버릇이 하나씩 있잖아? 정신수양을 위해 한다든지, 습관이 돼서 한다든지. 어쨌든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어.
  
빠이는 아날로그형 인간이었다. 디지털카메라보단 필름 카메라, 컴퓨터 포토샵을 사용하기보단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를 했다. 마치 학교 과제를 컴퓨터로 작업하지 않고, A4 용지 위에 손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넌 왜 이리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냐?"
내가 칼로 연필을 깎는 걸 보면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난 연필을 깎는 소리, 종이 위에 사각거리는 글 쓰는 소리, 인터넷 글보다 종이 위에 쓴 활자가 더 좋다. 나도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사진가로서의 삶: 현실적 이야기>


사진을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건 뭐야?
첫 번째는 내 기술이 늘지 않는 것 같아서. 두 번째는 내 눈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눈이 작았다니 무슨 의미야?
사진을 시작하고 일 년 반 후에 슬럼프가 왔었거든. 슬럼프가 있기 전까진 실력에 맞지 않게 부유한 생활을 했었어. 날 가르쳤던 삼촌들이(위에 언급된, 빠이를 가르친 전문 사진가들) 일감을 소개해줘서 자잘 자잘하게 작업을 했어. 솔직히 연습했던 거에 비해 일이 어렵지도 않았거든. 잘 해내기도 했고. 사람들한테 ‘사진으로 계속 먹고살아도 되겠다.’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어깨가 이만큼(양쪽 어깨를 치켜올리며) 올라가는 거야. 내가 여태까지 했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사람들이 날 전문가 취급하는 거야! 그런데 그걸 겸손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초보자였어.
  
그 초보자는 어디서 만났어?
클래스에 가끔 나 같은 사람이 등장해. 사진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그분은 주부였어. 평생 카메라를 손 대본 적이 없는데, 삶이 각박하고 취미생활이 필요해서 카메라를 만져보기로 마음먹은 거야. 그래서 지인 소개를 통해 들어온 곳이 그 클래스였어.
어느 정도 그 과정을 잘 따라오긴 했어. 그런데 1년도 채우지 못했지. 왜냐면 그분은 전문가가 아니라 취미로 한 거였으니까. 솔직히 난 그분이 사진 찍는 게 귀여웠어. 우리 엄마 같기도 했고.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분이 아니라 그냥 취미로 하시는 분이었으니깐.(웃음) 근데 그분이 사진 한 장을 들고 왔는데, 내가 그걸 보고 엄청 쇼크를 먹은 거야.
  
어떤 사진이었는데?
아침 밥상에 다 먹은 가족들의 식기들이 널브러져 있고 우울한 아침햇살이 드리워져있는 사진이었어. 한 식탁에 자기 밥그릇, 남편 밥그릇, 아이들 밥그릇이 널브러져 있고, 아침에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데 툭 찍었어. 자기 직업이라는 거야. 그걸 보면서 함축돼있는 걸 읽은 거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직업이란걸. 그 무거운, 그 고독한, 혹은 그 세월을 견뎌낸? 그것들이 함축돼서 보이는 거야. 그 순간 내가 그동안 했던 게 너무 부끄러운 거지. 뭔가 주제의식 담고 찍으려고 했었는데, 갓 배운 초보자 보다 못 한 거야. 내가 했던 연륜과 경륜이 그분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나 그냥 세상 좀 더 봐야겠다.’ 하고 동남아로 떠났어. 반년 동안 카메라를 내려놓고 여행만 했어. 그것도 벌써 3년 전 일이네.

슬럼프 기간 동안 떠난 여행. 태국 칸차나부리에서.


혹시 슬럼프를 겪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어?

그때 이후로 내가 폭력적인 사진은 안 찍어. 내가 말한 폭력적인 사진은 찍혔을 때 안 좋아할 만한 사진들. 노인 안 찍고 장애인 안 찍고, 이슈가 될 만한 사람들을 찍지 않아. 노숙자, 장애인, 노인 사진을 찍으면 뭔가 있어 보여. 근데 그게 그 사람들한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해.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노숙자, 장애인, 노인)이랑 지내봤는데, 자기는 별로 슬프지 않대. 근데 사진가들이 와서 툭 찍고 간다는 거야.
‘세바스티안 살가도’라고 내가 되게 좋아하는 사진가가 있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 사람 사진도 좋지만 가치관이 되게 좋아서야. 살가도가 말하길, 광부의 사진을 찍고 싶다면 3등석 객칸을 타고 광산에 가서, 광부의 옷을 입고, 광부의 일을 하면서, 광부들과 친구가 된 후, 이렇게 물으란 거야. ‘친구, 내가 자네의 사진을 찍어도 되겠나?’ 실제로 살가도는 광부들과 수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사진을 찍었어. 근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찍지 않아. 1등석을 타고 와서 큰 카메라로 툭 찍고 가잖아.
그리고 노인의 뒷모습을 찍는 느낌이, 몰래 여자 뒷모습을 찍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굉장히 무례하다 생각해. 해변에서 몰래카메라 찍는 건 법으로 잡는데, 폐지 줍는 노인들을 찍는 건 뭐라 하지 않잖아. 그것도 되게 좋지 않은 건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실제론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것. 실제로 난 인력거를 끌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뒤에 손님을 싣고 페달을 밟고 있으면. 사람들은 '힘드시겠어요.', '이런 거 왜 하세요.'라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몸은 조금 힘들어도 오히려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일하는데.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며 쉽게 판단한다. 누군가 날 불쌍하게 여긴다면,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것 같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요즘 사진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 비주류인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해?
남들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지 않아서? 난 돈 되는 사진은 잘 안 찍어. 나만 좋아하는 사진이지. 내 사진 자체가 돈이 안 돼.
  
돈 되는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는?
그런 사진들은 쉽게 소모되는 사진이잖아. 쉽게 소모되는 걸 하고 싶지 않아. 그런 사진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닌데 굳이 하고 싶지 않아. 나중에 내 삶이 궁핍하면 그런 걸 찍게 되겠지. 그런 걸 무시하는 건 아니야. 왜냐면 나쁜 사진은 없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이, 좋아서 그 사진을 찍었다면 그 사진은 좋은 사진이야.

사진 일하면서 다른 힘든 점은 없었어? 
돈벌이를 위해서 찍고 싶지 않은 사진을 찍었을 때? 그럴 땐 정말 재미없어.
  
대표적인 예로 어떤 것이 있을까?
웨딩 사진 찍을 때. 개노잼 더하기 감정노동. 웨딩 사진 촬영은 신랑 신부의 전쟁이야. 신랑은 그만 찍고 싶어 하고 신부는 계속 찍고 싶어 하고. 난 두 고래 가운데 낀 새우야. 언제든 등 터질 준비가 돼있어. 아침부터 사진을 찍다가 점심시간 지나서 사진을 선택해. 신랑은 이만하면 됐고, 신부는 더 찍고 싶어 해. 약속된 시간은 오후 2시까지야. 신부는 2시까지 채우고 싶어 하고 신랑은 그만 찍고 싶어 하는 거야. 어떻게 해, 맞춰줘야지. 대부분 그렇게 스튜디오 작업 자체가 지루해. 신랑, 신부랑 소통하는 건 재밌어. 그런데 그거 빼면 지루해.

'좋아하는 것만 하며 돈을 벌 순 없을까?' 빠이가 돈을 벌려고 웨딩사진을 찍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빠이는 생활을 하기 위해, 그리고 본인의 사진전을 열기 위해 지루한 일을 해야 했다.
 
개인 작업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경험은 언제야?
전시회가 되게 많이 무산됐었어. 준비를 많이 했는데 후원이 중간에 끊겨서, 아예 프로젝트가 무산된 적도 있었지. 그때 오는 좌절감이 굉장히 커. 하지만 좌절감에서 한순간에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순간에 벗어난다면, 그건 그 과정에 대한 열심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 어느 누가, 10년 동안 준비한 일이 하루아침에 무산됐는데 ‘그냥 다른 거 하지 뭐!’ 이러겠어. 그건 진짜 제대로 준비 안한 거 같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좌절감이 올 수밖에 없어. 진짜 열심히 하다 실패하면, 멍 때리게 되잖아.
하지만 그런 환경에 대한 건 사실 금방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야.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라며 금방 일어설 수 있지. 만약 내 능력 부족으로 못한 거면 좌절감 굉장히 크고, 자기혐오 단계까지 이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정도까지 가진 않았던 것 같아.
  
좌절감을 줄여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 있어?
먹는 거나, 좋아하는 걸 나에게 선물하면서 풀지. 나 같은 경우는 자기 위로를 잘하는 편이야. 물론 그 절망감을 충분히 겪은 후에 가능해. 절망감을 피하려고 ‘이건 없는 감정이다.’ ‘이겨내야 하는 감정이다.’라는 건 건강한 게 아니다? 절망감도 인생에서 굉장히 필요한 감정 중 하나야. 절망감이란 벽을 넘어섰을 때 내가 굉장히 업그레이드되거든. 절망감은 충분히 경험해봐야 하는 감정이야.   
 

<미래: 빠이가 꿈꾸는 세상>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어?
불안? 불안 요소가 여러 가지잖아. 사실, 불안의 요소가 깊게 파고 들어가면 생존에 관한 거지. '내가 30년 후에 제대로 생존해있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 그 문제에 대해선 남들에 비해 좀 자유로운 편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있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야?
이른 사회생활하면서? 나 스스로도 ‘뭘 하든 먹고살겠구나.’라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빠이는 20대가 되자마자 독립을 했었다. 빠이는 그때 인력거꾼, 웨딩촬영, 호떡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월세와 생활비를 벌었다.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해서 코피까지 터졌던 친구라, 그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3년~5년 내에 빠이는 뭘 하며 살고 있을 거 같아?
굉장히 가까운 미래네? 아프리카에 있을 거야.
  
왜? 
내가 아직 유일하게 가보지 않은 대륙이니까. 유일하게 가보지 않은 대륙이 아프리카니까.
  
모든 대륙을 다 가보고 싶어?
기왕 여행 시작했으면 오대양 육대주는 다 가봐야지.
  
먼 훗날 빠이의 꿈? 그려보는 미래가 있을까?
꿈이란 게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그럼 빠이의 정점이라 생각할 수 있는 위치가 어디라 생각해?
이 페이스대로 살면 은퇴하기 전이 그렇겠지? 난 삶에 꼭짓점이 없다고 생각해. 정상이 정해지면 딱 거기까지만 올라가고 말거든? 근데 정상을 정하지 않으면 나태해서 아무 데도 안 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 위에 올라갈 수도 있어. 내 꿈이 9층이면 딱 거기까지만 가거든.
사실 내가 비교의식이 크게 없다 보니까, 세계 제일의 뭔가가 되겠다는 게 없어. 왜냐면 유명한 사람, 거장은 많지만 일인자, 이인자를 구분할 수 없거든. 물론 최초가 될 순 있겠지. 하지만 최고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해. 최고란 기준이 모호하거든. 그 분야의 개척자가 될 순 있어도 그 분야의 최고가 되긴 힘들지. 최고를 가리려면 결국엔 어떤 잣대, 기준점이 형성돼야 하니까. 난 거기서 자유롭고 싶어.
하지만 나태하게 살겠단 얘긴 아니야. 나태하게 산다는 건 나한테는 어느 정도 죄악이야. 나태, 방만하게 사는 것, 아무런 목적 없이 이유 없이,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히피 같은 삶을 원하진 않아. 그래서 내가 욜로(YOLO) 족을 별로 안 좋아해. '오늘 여한 없이 실컷 놀자!' 이런 식의 생각은 나랑 안 맞아.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실 내가 바라는 꿈은, 이뤄지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 정도가 꿈이라고 생각해.
  
그럼 빠이한테 여한이 없는 게 어떤 걸까?
옛날부터 생각하던 건데, 나는 장애인이 활동적 제약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굉장히 행복한 세상이라 생각해. 난 그걸 위해서 살려는 사람 중 하나야. 이번에 준비하는 사진전도 그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우리나라는 보행 장애인들이 길거리를 걷기 진짜 힘들다? 유럽여행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장애인들이 어딜 가든 편하게 다닐 수 있던 것이거든. 한국이 그렇게 된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 그게 내 꿈이야.

그런 세상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

내가 13살 때 발목에 종양이 생겨서, 10대의 대부분을 목발을 짚고 생활했어. 그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많더라고. 그게 계기라고 볼 수 있겠네. 물론 지금은 인력거를 끌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꿈을 꾼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돈을 더 벌고 싶다든지, 명예를 얻고 싶다든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빠이의 꿈은 약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이타적인 세상을 꿈꿨다.
나는 빠이가 준비하는 사진이 궁금했지만, 빠이는 나중에 사진전이 열리면 와서 보라고 했다. 사진전이 열리기까진 어느 정도 비밀에 부치고 싶다면서.

<마치며>


빠이와 인터뷰를 준비할 당시,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빠이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헛수고였다. 빠이는 인스타그램도 없고, SNS도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진가가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니! 인터뷰를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빠이는 예전에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다가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빠이의 사진을 도용해 공모전에 입상을 한 것. 그래서 상처를 받은 빠이는 인터넷을 접고 오프라인 사진전에서 자기 작품을 보여주길 선택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나도 함께 분개하긴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모습이 빠이랑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아날로그식으로 사진 작업하는 모습과 인터넷은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진전에서 빠이의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더 어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빠이의 사진전을 찾고, 빠이의 사진을 눈에 오래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용당한 사진


흑백 사진은 칼라 사진보다 오래 봐.
깊고 오래 보게 되어있어.


                                                                                           빠이의 사진도, 그리고 삶도 그러하다.

                                                                                                                           201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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