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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3화] 평창올림픽 흔적을 수집하는 남자, 편현장

학교 후배


오늘 인터뷰 주인공, '현장'이는 나와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학교를 다닐 때는 형 동생처럼 자주 만났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연락이 안 된지도 만으로 4년. 가끔씩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번호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내가 인터뷰를 시작하고, 인터뷰이를 구하러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기 시작할 때 현장이가 생각났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에 현장이가 나에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저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서 일을 구하고 싶은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절 보며 조급해하는 것 같아요.


그때 현장이의 말을 듣고선, 이 친구가 왠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을 때, 현장이는 이렇게 말했다. 
"형, 저 지금 춘천이에요! 올림픽 !@#!&* 하고 있어요." 
"뭐라고?"
"올림픽 기록#!&*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요상한 이름의 '직업'이었다. 사실 무슨 일을 하는진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건 만나서 들으면 되니깐. 
현장이는 무려 4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형을 위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아래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편현장'의 이야기다.  
 

<평창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곰돌이를 협박하는 오늘의 주인공


현장아, 오랜만이야! 요새 어떻게 지냈어? 
2월부터 10월 말까지 춘천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고 있어?
올림픽 기록 유산 수집 사업이오. 평창올림픽 관련해서 그 기간 동안 생산된 기록물을 수집하는 거예요.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 실행, 결과에 포함되는 모든 기록물을 수집하죠.
  
기록물이 뭐야?
지금 제 인터뷰를 녹음하는 것도 기록물이라고 볼 수 있죠. 이런 음성자료 외에도, 영상, 물건 같은 모든 게 기록물이에요. 행정 박물, 텍스트 문서 단행본, 연구 자료 등등 모든 수량과 형태를 망라한 것들을 기록물이라 해요. 
기록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공공 기록물, 민간기록물 이렇게 나눠져요. 공공 기록물은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거예요. 예를 들면 구청에서 생산한 기안 문서나 기획안, 평창올림픽 과정에서 생산한 지출 계산서와 같은, 모든 공공 기관에서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서 생산한 모든 기록물이요. 
민간기록물은 공공 기록물을 제외한 나머지를 뜻하고요. 신문기사나 뉴스 같은, 공공기관에서 생산하지 않은 모든 것이 민간기록물이에요. 저희는 평창올림픽에 관한 공공 기록물과 민간기록물에 해당하는 모든 걸 수집하고 있어요.
  
기록물 정의만 얘기하면 좀 알아듣기 어려운 것 같아기록물 중에 제일 대중적으로 알려진 걸 꼽자면 뭐가 있을까?
기록물 중에 그나마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이라 해서 팔만대장경이라든지, 이번에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물, 그 외에도 새마을 운동 관련 재단에서 보존하는 관련 기록물까지. 이 모든 걸 기록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자주 듣던 유네스코, 팔만대장경 같은 이야길 들으니 막연했던 기록물이 조금 친숙해졌다. 그전까진 올림픽 경기 기록, 신기록과 관련된 기록 따위인 줄 알았다.

그 외의 세계 기록유산(왼쪽부터 훈민정음, 난중일기, 동의보감) -출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서평창올림픽 관련 기록물을 모아서 뭐 하려고?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에, 지금 올림픽 기념관을 새로 짓고 있어요. 2020년쯤 완공된다고 하는데, 그때 들어가는 기록물들을 넣으려고 하는 거죠. 
  
기념관에 들어가는 자료를 너희가 직접 만드는 거야
아니오. 저희는 수집만 해요. 저희가 수집을 마치고 나서, 설계를 맡을 회사를 정부에서 따로 선정해요. 인테리어라든지, 건축이라든지. 그때 그 회사에서 우리가 모아놓은 수집품을 참고하는 거죠. 이건 기본 베이스라고 보시면 돼요. 
  
이 일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제가 대학원을 졸업할 당시, 지도 교수님이 소개해주셨어요. ‘올림픽 기록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참여할 사람은 참여해라.’ 그때부터 같이 일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껴서 이 일을 시작했어?
일단은 살아생전에 평창올림픽 같은 동계 올림픽이 한국에서 다시 열릴지도 모르고 (웃음), 이렇게 큰 행사의 기록을 정리하는 경험을 다시 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매력을 느꼈죠. 
  
기록 수집은 어떤 식으로 진행돼?
먼저 2월부터 3월까지,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에는 사람들을 보내서 인터뷰 녹취를 하게 했어요. 제가 직접 인터뷰 녹취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내기도 했고. 주로 관람객들에게 해달라고 했죠. 
  
선수들은?
선수들은 못해요. 경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선수를 만나러 아예 못 들어가요. 그래서 관람객이나 자원봉사자들을 했죠.
  
주로 뭘 물어봐?
먼저 동의서를 받아요. ‘인터뷰 내용을 수집해도 되겠냐.’는 허가서를 받고, 이름, 나이, 출생 지역 같은 신상정보를 물어봐요. 그다음엔 기본적인 근황을 물어봐요. 관람객이라면 어떤 경기를 관람했는지, 자원봉사자라면 어떤 업무를 했는지. 그러고 나서 주로 평창 올림픽에 대한 경험을 물어봐요. ‘올림픽 운영과 진행에 대해서 만족하십니까.’, ‘올림픽 남북 단일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걸 물어봤어요. 주로 경험이나 소감을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주로 관람객 위주로 물어본 거야?
아니오. 굉장히 다양해요. 관람객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청소부, 보안요원을 하기도 했어요.
  
인터뷰를 수집할 때 어려운 건 없었어?
있죠. 요새 하도 사이비가 많으니깐 사람들이 이런 걸 잘 안 하려 해요. 사이비나 다단계가 ‘잠깐 인터뷰 좀 해주세요.’ 이러면서 돌아다니니깐, 사람들이 잘 안 하죠. 간혹 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나중에 저희가 전화로 물어보겠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받기도 했어요.
  
갑자기 물어보고 싶은 건데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어떻게 해삭제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나온 거예요. 그것도 한 사람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대로 둬야 돼요. 올림픽이 모두에게 다 좋다고 할 수 없고, 다 긍정적일 순 없어요. 저희가 평창올림픽 교통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교통이 불편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교통이 편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 의견이 다 똑같거나 긍정적이라면 오히려 이상하잖아요. 누군가 역사를 연구할 때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이 없으면 반영할 수 없어요. 역사라는 게, 참고해서 온고지신(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앎) 해야 하는 지식인데. 그건 절대 바꾸면 안 돼요.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만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나쁜 평판을 숨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 주변엔 아직도 현장이처럼 가감 없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며, 고쳐나가야 할 숙제를 알려 주는.
   
기록 관련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을까?
기록물 수집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공공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록물을 수집하기가 어려워요. 공공기관 문서 같은 경우 열람 기준이 까다롭기도 하고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선배들 얘길 들어보면, 기록을 남기기 꺼리는 사람이나 부서들이 많다고 해요. 왜냐면 공공기관은 괜히 기록으로 남겼다가 자기한테 해가 될 수 있으니까. 앞선 대통령(박근혜)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인에게 불리할까 봐 기록을 다 없애려고 했잖아요? 다 똑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그래서 기록물을 수집하기가 어렵죠.

누구나 쫄리면 기록물을 지우고 싶어 한다


또 다른 힘든 점이 있다면?
제가 경력 없이 팀장이 된 경우라서. 팀장이 되려면 기록물 관리 전문 요원 자격증이 있어야 되는데,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 중에 저만 그 자격증이 있거든요. 일이 조금 꼬이는 바람에 그렇게 됐는데. 
아무튼, 경력이 없는 팀장이다 보니까 업무를 어떻게 해나가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업무에 대한 이해도 없고, 업무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맨땅에 헤딩을 하며 일을 배웠죠.
  
그래도 많이 배우긴 했겠네
네 많이 배웠죠. 일단 전화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전화를 잘하고 그런 성향이 아닌데. 아쉬운 소리 하는 법도 배우고.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인터뷰해주실 수 없냐고 하거나, 생전 해본 적 없는 일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물어서 하는 법을 배운다든지. 회사가 도전정신을 많이 일깨워줬죠, ‘안되면 되게 하라!’ 같은 추진력과 도전정신이요. 
그리고 팀장으로서 사람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것과, 원칙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예를 들어서 출근, 퇴근시간부터 시작해서 업무량 배정, 업무 태도라든지. 이 사람은 이렇게 하고 싶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개개인마다 차이점이 있는데, 모두가 준수할 수 있는 그런 원칙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출근 퇴근시간부터 해서 점심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고, '얼마 일하면 얼마만큼 쉴 것인가?', '여름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것인가?'까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 다 조율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더라고요. 


<이 길의 시작>


현장이는 역사학과 졸업생이다. 요즘 시대에 자기 전공을 살리는 사람이 드물다지만, 역사학과와 기록대학원은 전혀 연관이 없었다. 현장이는 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현장이는 왜 기록대학원에 가게 된 거야
대학 졸업할 때쯤에 '뭘 해야 하나?'고민을 많이 했어요. 특히 키프로스로 교환학생 갔다 와서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죠. 부모님께선 일반적인 직장의 정규직이 되길 원하셨고, 저도 그냥 총무팀에 속한 무난한 사무직을 할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당시에 노동부 홈페이지 같은 데서, 청년들 직업상담해주는 게 있었어요. 제가 거기에다가 ‘기록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혹시 직업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글을 남겼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기록물 관리 쪽을 한번 해봐라.’ 이렇게 답변이 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록물 관리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키프로스 교환학생 때 갔던 터키여행. 해외에서 현장이는 많은 고민을 안고 왔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1년 동안 국회도서관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옆에서 일하던 누나 한 명이 이화여대 기록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 누나 덕분에 기록대학원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도움이 많이 됐어요.

국회도서관 일할 때 사진. 피곤해 보이는데 본인은 재밌었다고 한다...


그래서 취직 안 하고 대학원에 가게 된 거야?

원래 국회도서관 일이 끝난 다음에, 일반 회사 정규직으로 취직하려 했어요. 그게 부모님의 바람이기도 했고, 저의 바람이기도 했고. 남들처럼 무난하게 경력을 쌓으면서, 야간에 기록 대학원을 다니는 게 저의 바람이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기록대학원 수업이 5시 50분이나 6시에 수업도 있더라고요. 일반 회사에 취직하면 수업에 늦거나 못 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작은 스타트업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게 됐어요. 
  
대학원을 선택할 때 부모님이 별말씀 안 하셨어? 
하셨죠. 대학원보다는 취업하는 걸 바라셨어요. 근데 기록 쪽 관련해서도 나중에 공공기관에 있는 기록연구사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있거든요. 공기업도 적긴 하지만 뽑긴 해요. 그래서 부모님께 다양한 길이 있다고 설득해서 큰 진통은 없었어요. 제가 크게 이상한 쪽으로 가지도 않았고. 사실 대학원이란 게 어떻게 보면 커리어를 쌓는 길이잖아요? 그래서 반대가 심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원래 인생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편이야?
아뇨. 원래는 수동적인 편이에요. 대학교 수시 원서도 제가 학원을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넣으셨어요. 제가 원래 역사를 좋아했으니까 아버지가 대신 넣어주신 거죠. 
  
아버지가 대신 넣어주셨다고?! 아버지가 혹시 가부장적이거나 엄하시니?
그렇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엄하신 것도 아니고. 제가 그걸(원서를 대신 쓴 것)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크게 욕심내는 일도 없이 주어진 상황에 좀 만족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딱히 문제는 없었어요.

그러면 대학원을 선택한 건 굉장히 주도적인 선택이었겠네.
그렇죠. 
  
다시 대학원 얘기로 돌아가서대학원 공부는 어땠어한번 총평해보자면?
어우, 힘들었죠.(웃음) 
  
왜 힘들었어?
요즘은 기록도, 전자기록이 대세이기 때문에 전자결제를 많이 해요. 그래서 데이터랑 시스템을 잘 알아야 돼요. 옛날엔 일일이 종이문서로 작업했다면, 지금은 전부 전자적으로 처리가 되기 때문에 컴퓨터를 잘 해야 돼요. 전 컴퓨터를 못하는데... (쓴웃음)
대학원에 가자마자 PHP(웹 개발 및 HTML에 사용되는 언어)도 배우고, 액세스 프로그램 짜는 법도 배우고, 직접 액세스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구동시켜보기도 하고. 근데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다루는 데 문제없어? 
아뇨. 지금도 못해요. 대학원 다닐 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죠. 다행히도 지금 회사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요. 그냥 일반 하드디스크에 저장해요. 

'이 정도는 해야 기록 관리대학원 다닌다고 할 수 있지.' 현장이의 공공 기록물 관리법 정리


그리고 대학원에서 다른 힘든 점은 없었어
논문 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처음에 주제를 잡는 것부터. 왜냐면 논문 주제를 선정할 때 다른 사람이 쓰지 않은 걸 선정해야 하는데, 할 만한 주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선점했고요. 
  
그럼 어떤 걸 썼어
저는 캐릭터 아카이브(기록보관소) 구축전략에 대해 썼어요. 우리나라에 캐릭터가 많잖아요. 뽀로로부터 시작해서 호돌이, 홍길동 같은 캐릭터들도 있는데, 캐릭터 기록보관소 같은 게 딱히 없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캐릭터들을 다 수집을 해서, 예를 들면 펭귄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뽀로로까지 다 나오게 아카이브를 만드는 전략을 세워보고 싶었어요. 주변에 캐릭터 디자인 친구가 있는데, 친구한테 그 전략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되게 좋다고 찬성을 해주는 거예요. 
캐릭터 디자이너들은 라이선싱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물건을 만드는 곳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쪽에서, 디자이너와 접촉해서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사는 거죠. 그러면 만화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찻잔을 만들 수도 있고 칫솔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돼야 디자이너가 돈을 벌 수 있는 거잖아요. 
디자이너는 자기 캐릭터가 널리 퍼지도록 홍보해야 하는데 그게 되게 어렵대요. 요즘 SNS 시대라고 하지만, 포화상태에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는데요. 그래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캐릭터 페어(전시회)에 가서, 많은 디자이너들한테 설문지를 했어요. 캐릭터 아카이브를 구축한다고 한다면 제일 필요한 게 어떤 점이냐? ‘라이선싱, 캐릭터 기록 보관하는 데 제일 필요한 건 어떤 거냐? 설문지에서 나온 통계를 분석해서 논문에 실었죠. 디자이너들이 바라는 점을 반영한 아카이브 구축 전략이었죠. 

현장이 프로필 사진은 캐릭터들이 참 많다.


아이디어 되게 괜찮다. 그런데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디자이너들한테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거야? 
디자이너가 자기 캐릭터를 아카이브에 기증하면, 일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캐릭터를 볼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으면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될 것이고. 제 디자이너 친구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문구회사에서 일했었는데, 회사들이 어떤 새로운 상품을 만들 때 그에 맞는 캐릭터를 찾으려고 많이 돌아다닌다고 해요. 라이선싱을 하는 회사들도 쓸만한 캐릭터가 있는지 볼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어떤 식으로 계약을 맺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하니깐. 아카이브를 통해 회사와 디자이너를 연결해주는 거죠. 
  
상당히 쓸만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논문 쓰는 게 힘들었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훌륭했다. 왜 그 사업을 직접 안 하냐고 물어보니 현장이는 웃으면서 저는 사업하는 성격은 아니에요.’라 대답했다. 
  

<정리 좋아하는 남자. 단, 집 정리는 빼고.>


성격이라 하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 현장이는 원래 정리하는 걸 좋아해?
저는 좋아해요.
  
집에 물건은 잘 정리돼있는 편이야
그렇진 않아요.(웃음) 어릴 땐 옷을 깔끔하고 정리해두고 이런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스물한 살 때부터 친형이랑 같은 방을 쓰면서 변했죠. 형은 물건을 아무렇게나 둬도 별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성격이에요. 처음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까 그게 되게 편안한 삶인 거예요. 그때부터 저도 같이 마음을 놓아버렸죠.(웃음) 

의외였다. 현장이처럼 기록물을 관리하고 정리를 잘하는 친구는, 왠지 집도 깔끔하게 정리가 돼있을 것 같았다.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너저분하게 산다니.
'괜찮아. 더 너저분하게 살아도 돼.'
나는 이런 위로를 받았다.

그럼 정리를 좋아해서 도움이 된 적이 있어
있어요. 국회도서관에서 일할 때, 수십 종의 다양한 잡지를 같은 종류끼리 정리하라고 시킨 거예요. 저는 무턱대고 하기보단, 가나다순으로 무슨 잡지가 있는지 하나하나 적으면서 정리를 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눈에 띄게 정리 속도가 빨라졌어요. 제가 적으면서 하니까 사람들도 정리된 걸 보면서 잡지를 정리하더라고요. 확실히 업무를 할 때 기록을 남겨두고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느꼈어요. 
  
그럼 반면에 불편했던 점은 있어?
기록 대학원을 가니까, 교회에서 자꾸 '서기'를 시켜요.
  

<현장이의 미래 이야기>


향후에도 이런 일을 해나갈 생각이 있어
네, 저는 생각이 있어요. 
  
그럼 10월 말에 일이 끝난다고 했잖아다음엔 어떤 걸 해볼 생각이야
그건 어디서 티오가 나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공공기관에서 나오느냐 일반 사기업에서 나오느냐. 공공기관에서 나온다 하면 시험 준비를 할 것 같고, 사기업이라 하면 취업을 위한 스펙을 준비를 할 것 같고요. 
  
사기업에서도 기록 관리하는 사람을 뽑아? 공공기관은 왠지 뽑을 것 같은데 사기업은 안 뽑을 것 같아.
수요가 많진 않지만 뽑아요. 미국엔 코카콜라라든지, 많은 회사에 기록 관련 일하는 사람이 있어요. 원래 우리나라 대기업에선 전혀 안 뽑았는데, 최근에 현대 자동차도 뽑았고 대한항공도 뽑았어요. 
왜냐면 예를 들어 코카콜라에서 신상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기록 보존팀에서 옛날 기록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기획한데요.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커요. 법적 분쟁이 벌어졌을 때, 기록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잘 대응할 수 있어요. 왜냐면 회사 간의 법적 분쟁이 굉장히 치열한데, 기록이 잘 남아있어야 법적 분쟁에서 이길 수 있고요. 
미국에는 관련 법이 있어요. 회사끼리 분쟁이 벌어졌을 때, A사가 법원에 요청해서 B사에 관련된 기록을 달라 하면, 법원 명령에 따라 B사가 관련 기록을 법원에 전부 제공해야 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기록이 잘 돼있지 않으면 법적 분쟁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지는 걸로 알고 있어요. 
  
기록이 생각보다 진짜 많이 쓰인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일하거나 공부할 때 기록이 잘만 축적돼있으면 금방 금방 활용할 수 있잖아요. 하다못해 자소서를 쓸 때도, 일기장이 잘 기록되어있으면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기록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일기가 기록이었다. 자소서를 쓰기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의 일기를 꺼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일기를 써보면 될 일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어?
있어요. 일단 정규직 직장을 얻지 못할 거에 대한 불안감? 기록 쪽은 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있는데, 뽑는 사람은 적어서 취직하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말한 건 정규직 얘기예요. 정규직 말고도 생각보다 일할 데는 많은데, 근로계약이 안 좋거나, 단기계약이거나 돈을 적게 주거나 일이 많거나. 
그런데 그게(미래에 대한 불안감) 엄청 크진 않아요. 일단은 하나님이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번 올림픽 사업이 끝날 때쯤이면, 새롭고 재밌는 어딘가로 인도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죠. 
  
3년에서 5년 사이엔 뭘 하고 있을 것 같아
기록물 관리에 대한 역량이 좀 많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경험이 축적되고, 과거의 저보다 좀 더 전문적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현장이가 바라는 미래는 어떤 거야
기록물 관리 쪽에 대해서 사람들 인식이 더 넓어져서, 기록이 좀 더 잘 공개되고 활용되는 사회?
  
지금은 그게 잘 안 되고 있다는 말인가
네네. 기록 자체가 열람하기 쉽지 않아요. 공공기관도 그렇고. 정보공개 같은 게 있어서 옛날보단 확실히 잘 공개가 된 거 같긴 한데, 여전히 고급 정보를 얻긴 쉽지 않으니까. 
  
고급 정보라 함은 뭐가 있을까
예전에 기록물 관련 프로그램을 봤는데, 덴마크인가 스웨덴에선 전날 간담회에서 먹었던 음식을 알려 달라 하면 일주일 뒤에 답변이 온대요. 무엇을 얼마나 먹었고 가격은 얼마였고. 
근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런 기록들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것도 비공개로 돼있는 게 많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자기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 같은 게 있으니깐. 그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해요. 
 
놀랐다. 사소한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런 기록까지 철저하게 남기는 사람들이 있단 사실이. 만약 현장이가 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투명한 나라가 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간담회 음식 이외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넘쳐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현장이는 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관련 기록물에 대한 지식을 실제 업무나 현장에서 잘 적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치며>


내 기억에 현장이는, 천진난만하고 웃음이 많은 동생이었다. 고민이 많은 친구도 아니었고, 동아리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토 달지 않고 따르던 무난한 친구.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현장이는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해맑게 웃는 친구지만 그 뒤엔 진지함이 묻어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고찰, 직업을 대하는 전문가적인 자세가 현장이를 더 어른스럽게 만들었다. 본인은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자세만큼은 전문가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 꿈이 더 무르익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장이는 10월이 끝나고 다시 백수의 세계로 복귀한다. 가장 큰 산인 취직이 남아있는 셈. 취직 준비에서 받을 스트레스와 얼어붙은 취직 시장을 생각하니 내가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기록을 사랑하는 모습을, 그 분야 사람들은 좋아할 게 분명했다. 현장이가 믿고 있는 대로, 신의 이끄심 대로 순조롭게 미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나도 밥 얻어먹지.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2018.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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