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며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며
‘장어 없는 장어덮밥’ 도시락 출시
우리나라는 더위를 견뎌내기 위한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즐겨 먹는다. 소위 삼복(三伏), 즉 초복 중복 말복 때마다 삼계탕 집들은 손님들로 불이 날 지경이다.
한편 이웃의 섬나라 일본은 장어가 대표 보양식이다. 현지말로 장어를 우나기(うなぎ, 鰻)라고 한다. 일본에도 한국의 복날과 비슷한 절기로서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가 있는데, 이때 일본인들은 주로 장어구이나 장어덮밥 등을 먹으면서 몸보신을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요샛말로 ‘신박한’ 장어덮밥이 등장해서 화제다. 일부 편의점에서 장어가 없는 장어덮밥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장어가 값싼 음식은 아닌지라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장어요리가 부담이 되게 마련인데, 올해(2018년)는 설상가상으로 시중에 공급되는 장어의 양이 급감한 나머지 장어요리들의 값마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급기야 판매 가격을 대폭 낮추되 장어는 없애고 장어구이 소스만 끼얹은 도시락이 출시된 셈이다.
장어 없는 장어덮밥을 과연 누가 살까? 얼핏 생각해보면 ‘폭망’할만한 아이템이지만, 놀랍게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라고 한다. 일본 현지의 젊은이가 인터뷰어에게 대답하는 사진 자료를 보니, 현재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기기가 발전하는 중이기 때문에 언젠가 VR 고글을 끼고 먹으면 장어가 눈앞에 있는 듯 실감나게 먹을 수도 있다며 무한 긍정론을 펼치기도 했다.
소스에 과연 장어의 성분이나 육즙 등이 실제로 배여 있을지, 아니면 ‘맛’만 흉내 낸 장어구이에 불과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주인공 재료가 빠진 채 그저 유사체험을 즐길 수밖에 없는 이 기묘한 음식에 뭇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열광하는 세태를 접하니, 한편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웃픈’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의 자린고비 설화
‘장어 없는 장어덮밥’ 얘기를 보니 문득 이와 유사한 구전으로서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자린고비 설화가 생각난다. 어느 마을의 지독한 구두쇠가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식사 때마다 그것을 쳐다보면서 밥을 떠먹었다는 설화 말이다.
‘장어 없는 장어덮밥’이나 자린고비 이야기나 둘 다 정작 주인공 재료가 빠진 음식을 먹으면서도 주재료가 있는 양 스스로를 세뇌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두 행위 모두 결국 돈이 없어서든 돈을 더 모으기 위해서든, 사람이 ‘무엇인가를 아끼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유사체험’이라는 점 역시 비슷하다.
게다가 무엇인가를 아낀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경제력과 관련한 문제이므로, 두 경우 전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회나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훨씬 과거였던 시절에는 아마도 굴비가 매우 비싼 음식 재료였기 때문이리라. 설화의 어느 버전(version)에 의하면 이 구두쇠는 굴비를 한번 쳐다볼 때마다 “짜구나!”하고 말했다고 한다. 또 어느 버전에 따르면 슬하의 자녀들이 굴비를 너무 자주 봐서 ‘과식’을 했다는 이유로 이 구두쇠가 자식들에게 타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저축의 시대 vs 투자의 시대
그러나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장어 없는 장어덮밥’ 얘기와 자린고비 설화는 결이 조금 다른 듯하다.
자린고비 설화는 그야말로 저축이 미덕이었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때는 조금 더 아끼고, 약간 더 고생하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품에 안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구두쇠라는 말은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 데에 몹시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사회 분위기상 절약하는 태도가 곧 바람직한 경제생활로 장려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실제로 설화의 어떤 버전에 의하면 이 구두쇠는 사실상 부유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어 없는 장어덮밥’ 이야기에는 어렴풋하게나마 좌절과 체념의 냄새가 풍긴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장어가 흰밥 위에서 사라져버렸음에도 장어를 먹은 양 정신 승리를 해야만 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희박한 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꾸역꾸역 돈벌이를 해나가는 이 땅위의 평범하고도 성실한 시민들이 연상된다.
금리가 0%로 수렴해가는 현대 시대에는 저축과 절약보다는 투자를 잘하는 일이 경제생활을 현명하게 하는 길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훨씬 웃도는 요즘에는, 제 아무리 근면한 노동자일지언정 하루하루의 고난들을 평생 태산처럼 쌓아본들 번듯하게 가족들을 품어줄 집값조차 마련하기 벅찰 정도다.
그러나 ‘장어 없는 장어덮밥’에 열광할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소비자 계층에게 저금 따위는 버린 채, 속칭 ‘돈놀이’를 할 만한 자금이나 마음 여유가 있을까 싶다. 그들에게 투자 행위는 심정적으로 봤을 때 차라리 도박이나 노름에 가깝지 않을까. 자린고비 ‘설화’와 무(無)장어 덮밥 ‘실화’가 같은 듯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남일 같지 않은 ‘무(無)장어’ 덮밥 사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처럼 ‘웃기면서도 슬픈’ 사연 따위야 일본 내의 이야기일 뿐, 우리 대한민국과는 무관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필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웃 섬나라의 사정보다 경제 시국이 더욱 안 좋다. 2018년 3월까지를 기준으로 할 때, OECD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4.5%로서 한국의 그것(11.6%)에 비해 절반 미만의 수준이다. 모 경제신문은 이를 두고, 일본은 채용 전쟁을 벌이는 반면 한국은 취업 전쟁이 전개되는 중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청년층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OECD가 발표한 한국의 2018년 2월의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수 100 미만으로서, 이를 두고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우려한다.
물론 일본의 식문화와 우리의 식문화가 다르므로 당장 다음 달부터 우리나라 편의점에 닭다리 1개만 들어있는 ‘컵 삼계탕’이 시판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우리나라는 우스갯소리로 ‘치킨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닭 공급량이 제법 안정적인 편이므로, 닭 요리 값이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을 걱정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러나 장어가 실종된 장어덮밥 사태를 보면서 왜인지 모르게 그저 남의 일처럼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흰밥 위에 멀거니 흩뿌려진 소스들 마냥 우리 대한의 서민들 역시, 언젠가 미래 전망이 실종된 경제 텃밭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침윤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장어’가 사라졌듯이 당연히 서민들이 기대할법한 ‘경제 발전의 희망’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감이다.
이렇듯 ‘무(無)장어 장어덮밥’ 사건은 이웃나라 일본의 경제난만을 직접적으로 예시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곧 이어 불어 닥칠, 아니 어쩌면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을 한국의 경제난을 간접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경고장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어린 한국의 삼계탕을 바라며
물론 일본인 중에서는 딱히 서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저 ‘장어 없는 장어덮밥’ 도시락이 신기해서, 혹은 그저 재미있어서 사먹는 이들도 있을 테다.
또 이 글을 보는 이 중에는 일본 내에서 장어 값이 잠깐 폭등한 탓에 재미난 소동 하나 벌어진 일 가지고 무슨 한국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둥 확대해석을 하느냐고 꾸짖는 이도 있을 테다.
필자 역시 이 글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바다. 설령 일본의 장어덮밥 해프닝이 일본 서민들의 경제난을 반영하는 ‘진짜 사고’일지언정, 최소한 우리나라만큼은 누구나 반드시 먹어야 할 ‘국민 음식’ 앞에서 경제적 취약계층만 소외되는 기현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무엇인가를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만큼 처참하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 중산층 내외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미약하게나마 갖고 있는 ‘신분 상승의 희망’,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한 기대’ 등이 한낱 VR 같은 신기루나 허상이 아니길 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대한민국의 삼계탕에는 언제나 닭고기가 함께여야 한다. 그것도 닭고기 한 마리가 그릇 하나를 가득 메운 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희망의 훈김을 연신 모락모락 뿜어내는 자태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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