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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Feb 01. 2022

지금 우리 학교는

한국적 좀비의 흥행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러도. 그런데 팬데믹이 2년 넘게 이어지는 현실에서 좀비물은 오히려 현실성을 부여받았다. 창궐하는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 일상이 된 마스크와 대면 기피, 집단적 공포와 광기의 발현, 그리고 현실이 된 격리 생활. 이 모든 것이 좀비 영화의 현실화이다. 물리적으로 물어뜯지만 않을 뿐, 심리적으로는 물어뜯는 이미 좀비가 되어 버린 생활이다.


이런 시점에 개봉한 지금 우리 학교는 시의적절한 시점을 개봉 타이밍으로 잡았다. 더구나 오징어 게임으로 촉발된 K 콘텐츠에 대한 국제적 위상과 관심도에 힘입어 개봉 당일부터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도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기는 어렵겠지만, 한국 드라마가 갖고 있는 특유의 특징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고 어필하고 있기에 당분간 한국 콘텐츠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 보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독창적인 좀비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특히 킹덤과 비교하면 그렇다. 시각적으로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면이 부각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새롭고 신선한 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있어서 12부작을 끝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국 드라마 혹은 영화의 공통된 특징을 꼽으라면, 우선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있다. 어떤 장르의 콘텐츠에서건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어떤 형태로건 담겨 있다. 소소한 유머 코드도 특징이다. 공포물에서조차 소소한 유머가 감초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정"과 "신파." 이런 요인들이 다른 문화권의 작품들과 차별화되어 국제적으로 신선함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요인들은 잘 버무려져 배치되어 있다. 학교 폭력, 부조리한 입시 제도, 약육강식 사회에 대한 비판, 기성세대와 정치에 대한 풍자 등 상당히 많은 사회 비판이 들어가 있다. 이렇게 많은 비판 코드를 버무려 넣으면 역효과가 나기 쉬운데, 분량과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해서 크게 거슬리거나 작위적 비판이라는 거부감 없이 무난하게 극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다소 과할 수 있는 그런 요인들을 덮어버리고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주인공 학생들과 이들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식과 이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또한 갈등하고) 청소년다운 발랄함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식이 때로는 미소를 짓게 만들고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때로는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시청자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기 쉽지 않을 텐데, 이 또한 각자 인물의 개성과 스토리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잘 묘사되어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연기가 어설프다는 지적이 있던데, 오히려 내 경우에는 딱 청소년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싶게 연기도 자연스러웠다고 봤다. 물론 이들의 연기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개성을 살리기에 충분하였고,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쉬운 점을 굳이 지적하자면, 성인들 출연 부분은 대폭 분량을 줄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형사, 계엄 사령부가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극의 흐름에 있어 중요하거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풍자와 비판을 위한 장치였다면 분량을 대폭 줄여서 묘사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여고생의 화장실 출산과 방황 그리고 형사가 갓난아이를 떠맡게 되는 장면은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사족이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없어도 전체 극 흐름에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 불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폭격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택한 선택도, 극에서 말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전체적으로 계엄군 분량은 많이 들어내는 것이 극의 흐름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제는 한국 콘텐츠가 개봉하면 무조건 일단 국제적인 화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낯선 풍경이었을 텐데, 한국 문화가 세계적 주류가 되었으니 기분 좋은 일이다. 김구 선생이 백여 년 전에 희망했던 소망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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