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위대함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아마존닷컴의 회장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후 어떤 변화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구태의연한 질문이다.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게 무엇이냐는 질문은 왜 하지 않나.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데 말이다. 예측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 전략을 세우는 일이 더 쉽다. 사람들은 싼 가격과 빠른 배송, 다양한 상품을 원한다. 10년이 지나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전제에 집중해야 헛고생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런 곳에 돈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 의미심장하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은 바로 그것에 주목한다. 가상현실이 주요 무대로 펼쳐지는 미래 사회의 경쟁에서 인간 고유의 능력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45년, 먹을 것이 부족하고 빈부 격차가 심화된 암울한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아시스에 접속하여 현실에서 도피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괴짜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 분)는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에서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힌트는 그가 사랑했던 80년대 대중문화 속에 숨겨져 있다. 아날로그 감성이 충만한 자가 첨단 디지털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설정. 이러한 게임판에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 분)가 뛰어든다.
제임스 할리데이를 선망했던 소년 ‘웨이드 와츠’는 제임스 할리데이의 생에 집중한다. 그의 삶과 일상, 선호했던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세상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과 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문화에 대해 깊숙이 파고든다. 이러한 자세는 인공 지능으로 대변되는 기술과 인간의 대결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시사한다. 첫째로 기술보다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 관심을 갖고 인간과 문화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함양할 것. 둘째로 남이 제시한 문제에 답만 하기보다는 본질에 접근하는 데 유의미한 질문을 던질 것. 셋째로 우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결속할 것. 웨이드 와츠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며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IOI’라는 거대 기업과 승부한다.
젊은 시절의 본 조비(Jon Bon Jovi)를 닮은 파시발(웨이드 와츠의 가상현실 속 아바타). 그의 경쾌한 걸음걸이를 보니 영화 <풋루스(자유의 댄스)>의 케빈 베이컨이 떠올랐다. 80년대의 아이콘들을 품은 주인공의 아바타와 반 헤일런(Van Halen), 트위스티드 시스터(Twisted Sister)의 배경음악은 대중문화가 활짝 꽃을 피웠던 시기의 열정과 낭만, 청춘과 반항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과 사람이 땀 냄새로 부대끼며 어울려 살아가던 시절. 그 시절 외톨이로 지내며 가상현실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낸 제임스 할리데이는 인간의 정과 대중문화의 숨결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오아시스의 주인은 그런 인간다움을 가득 지닌 사람이 되길 바랐나 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 등장하는 신기술에 익숙해지는 데 사활을 건 우리들도 되새겨 볼 대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