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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ug 19. 2018

편견의 '관(棺)'

침대에 누워 즐기는 영화 한 편. 하루 중에 가장 큰 행복입니다. 야근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더욱 찾게 되는 보상이지요. 하루 중에 나의 즐거움을 위해 쓴 시간이 특별히 부족한 날이니까요. 오후 다섯 시쯤 단 음식이 당기는 것처럼 간절해집니다. 하루를 마감해 줄 영화 한 편이. 


어젯밤에도 그래서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볼 영화를 찾습니다. 영화를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대략 아래와 같은 과정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안 본 거네. 배우도 괜찮고. 그런데 감독이... 시작은 창대하다 갈수록 부실해지는 영화겠군. 흥행에도 참패했다더니 벌써 VOD 서비스를 하네. 오늘 밤은 피해야겠어. 피곤한 하루였는데,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순 없지.’ 


결국 한 시간 넘게 영화만 고르다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건 이럴 거야, 저건 저럴 거야 하는 편견이 영화 감상이라는 ‘소확행’을 빼앗아 간 듯하네요. 영화에까지 ‘효율적인’ 잣대를 들이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참 팍팍한 중년 사내가 되어 버렸네요. 


어릴 적의 저는 영화라면 눈을 떼지 못하는 축이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 유선방송에서 나오는 한물간 B급 영화를 보느라 약속을 못 지킨 적도 있었습니다. 영화 속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 세상 속을 여행하는 재미가 참 좋았어요. 싸구려 화려함으로 가득한 뒷골목이거나 지성미 넘치는 예술가의 거리이거나 영화 속에서 만나는 세상은 그 자체로 새롭고 즐길 만한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런 기준으로 영화 한 편을 고르는 일도 어렵게 된 요즘. 편견의 대가로 행복이 줄었습니다.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나름의 기준을 만든 것이었는데 결과는 그 반대네요. 편견 탓에 영화를 볼 기회조차 줄고 있으니 저만 손해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이런 어리석음이 넘쳐 납니다. 저 사람은 어디 출신이니까, 이전 프로젝트를 말아먹고 왔으니까, 다른 동료들이 불편해하니까, 인상이 항상 어두우니까... 등등의 편견으로 제대로 말도 섞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네요. 그렇게 편견 탓에 새로운 인간관계의 행복을 누릴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편견은 스스로에게도 작용합니다. 새로운 일과 마주쳤을 때, 도전해 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에 말이죠. 이전에 비슷한 일에 실패한 경험이 있으니까,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테니까, 이젠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 실력 발휘하기엔 무리니까... 등등의 편견에 빠지면 도전이란 건 시도조차 못하게 됩니다. 당연히 성장의 기회도 사라지게 되고요.  


늘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 성장하는 속도도 정말 빠릅니다. 해맑은 웃음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비밀이 ‘편견 없는 마음’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부딪쳐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아이들. 한때는 우리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지금처럼 아주 ‘노련’해지기 전에는. 


인생의 노하우, 전문가적 안목, 사회생활 짬밥이라는 포장에 감춰진 편견들. 그것들은 효율적인 삶을 유지하는 필터일까요, 능동적인 삶을 안치한 관일까요? 내가 볼 영화 한 편도 고르지 못하고 누워 있던 침대가 무덤 같았던 밤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저에게 편견은 후자의 의미입니다. 지금이라도 관 뚜껑을 박차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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