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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달래는 5분의 마법

T-Square, <Sunnyside Cruise>

by 박재우

유난히 햇살이 좋고 하늘이 파란 아침. 출근을 위해 핸들을 굳게 잡은 손 위로 차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따뜻하게 부서진다. 팟캐스트 속 머리 아픈 뉴스와는 아무 상관 없이 문득 ‘오늘 날씨 참 좋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버릇처럼 혹은 가장 순수한 본능처럼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 오늘 땡땡이치고 놀러 갈까?”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정해진 목적지가 있고 기다리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 설렘,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고픈 이 짜릿한 욕구는 ‘날씨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정당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이 곡을 재생한다. T-Square의 <Sunnyside Cruise>.

https://youtu.be/8895B5KA1x4?si=IyWtF7_h9VByXDGD


이 곡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다. 오늘 같은 날, 내 안의 ‘땡땡이’ 본능을 깨우는 일종의 스위치다.


이 곡이 J-Fusion의 정수라 불리는 이유를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낀다. T-Square라는 밴드가 ‘Casiopea’와 함께 J-Fusion 시대를 연 거장이라는 사실이나, 이 곡이 벌써 1995년에 나온 20번째 앨범 수록곡이라는 정보는 나중 문제다. 복잡한 재즈 화성 위에 심장을 간지럽히는 펑키한 리듬, 그리고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친숙한 멜로디. 이 모든 것이 “듣는 당신, 기분 좋아져라!” 하고 작정한 듯한 기분 좋은 청량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의 중심에는 이토 타케시의 EWI(Electronic Wind Instrument)가 있다. 이 소리는 특별하다. 색소폰의 풍부한 표현력에 신시사이저의 맑은 톤이 더해졌다. <Sunnyside Cruise>라는 제목 그대로다. 굳게 닫힌 차창을 활짝 내린다.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을 그대로 맞이하는 듯한, 짜릿한 해방감이다.


이 해방감을 흔들림 없이 밀어주는 것은 경쾌하고 탄탄한 드럼 비트다. 마치 잘 닦인 아스팔트처럼 든든하게 길을 열어준다. 그 길 위를 굳건하게 받쳐주는 건 작곡자이기도 한 미츠루 스토의 베이스라인이다. 심장을 톡톡, 기분 좋게 건드린다. 그 리듬을 찰싹 감싸는 쫄깃한 기타 사운드는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찰랑거리는 키보드 사운드는 햇살에 부서지는 바다의 윤슬, 그 자체다.


생각해 보면, 나만 이 곡을 ‘탈출 신호’로 쓰는 건 아닐 것이다. 발매 이후 수십 년간, 이 곡은 맑은 날씨와 시원한 드라이브가 필요한 모든 TV 장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민 BGM’이 되었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이 멜로디는 ‘어디론가 떠나도 좋다’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허락의 신호로 각인된 것인지도 모른다.


곡이 흐르는 5분 남짓한 시간. 나는 상상 속에서 가장 완벽한 ‘땡땡이’를 친다.


음악이 끝날 즈음, 나는 다시 꽉 막힌 도로 위, 현실의 출근길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비록 몸은 사무실로 향하지만 내 기분은 이미 햇살 속을 한바탕 시원하게 ‘크루징’하고 난 뒤다.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현실을 가장 멋지게 달래주는 음악. 그것이 오늘 아침, 내 출근길의 <Sunnyside Cruis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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