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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Sep 01. 2023

부추 부침개랑 테라, 어울리네

낮술, 그 은근한 유혹

지난 주부터 남편이 부추가 잘 자랐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인즉슨 부추 잘라다 먹으라는 얘기였다. 알았다는 대답만 되풀이 하고 부추를 자르러 가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밭에 간 지가 꽤 오래되었다. 언제 갔나? 기억을 되짚으니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서울에서 아들 부부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서울로 가기 전, 애호박이라도 딸까 싶어서 갔더랬다. 아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애호박이 하나 달렸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들은 기억이 있는데, 못 찾았다. 어디에 숨은 건지, 원. 그래서 가지 너덧 개와 고추를 땄다. 청양고추는 많이 가져다줬으니, 이번에는 그냥 고추를 가져다 주자 싶어서. 고추는 튀김을 해 먹으면 맛있다. 갓 튀겨낸 고추튀김은 참 맛있지. 맥주랑 곁들이면 아주 좋다. 


그 날 이후, 밭에 가지 않았다, 고 생각했더니 이런, 월요일에 갔네, 갔어. 정신 없이 어질러진 농막을 정리하러. 그럼 월요일에 가고 안 간 거네. 노각 두 개를 따온 기억이 났다. 


아무튼 어제, 오랫만에 밭에 가서 부추밭을 들여다봤더니, 부추가 아주 잘 자라 있었다. 너무 잘 자라서 아주 억세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 억세서 먹을 수 있으려나? 진작에 잘라 먹었어야 했나? 그냥 놔두면 더 억세지거나 꽃이 피어서 못 먹을 것 같아 가위를 가져다가 밑동을 댕강댕강 잘랐다. 부추는 그렇게 자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자란다. 그러면 또 잘라서 먹으면 된다. 처음 자르는 부추가 가장 영양가가 높다나. 남자한테 좋다나 어쩐다나. 


부추를 잘라서 농막 앞에 앉아 다듬었다. 물론 부추만 자른 건 아니고, 고추도 따고, 노각도 땄다. 단호박도 다섯 개를 땄다. 단호박은 처음 심어보는 건데, 제대로 잘 익은 건지 어쩐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몇 개나 버렸는지 모른다. 후숙을 해서 먹는 거라고 하던데, 두고 봐야겠다.


부추는 어제 저녁에 부침개를 부쳐서 먹었더니, 맛있었다. 부추를 씻는데 부추 특유의 향이 향긋해서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남은 부추는 밀폐용기에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했다. 오이소박이를 담으려고 했는데, 오이가 없어서.


오늘 낮에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궁리를 하면서 냉장고를 들여다보는데, 부추가 보였다. 아싸, 부침개 부쳐서 맥주랑 같이 먹어야지. 그래서 오늘도 부추 부침개를 부쳤다. 맥주는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테라를 마시는 걸로. 


역시 기름기가 도는 음식은 맥주와 잘 어울린다.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부침가루를 물에 푼 것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로 자른 부추를 넣었다. 오롯이 부추만 넣었다. 부추 향이 진하게 맴도는 부추 부침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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