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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ul 11. 2023

앗싸, 비 그쳤다. 대박아, 산책 가자

[대박이와 함께 하는 일상 2]

대박아, 사진 찍잖아. 엄마를 봐야지. 그러자 나를 향해 눈만 돌리는 대박이. 더운데 귀찮게시리, 하는 표정이다.


오늘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계속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가 오면 가장 큰 걱정은 대박이 산책이다. 사실은 산책을 빙자한 대박이의 실외 배변이지만. 대박이는 절대로 실내 배변을 하지 않는다. 소변이고 대변이고 전부 밖에서 해결한다. 30kg이 넘는 대형견이니 집안에서 배변을 한다면 그 처리도 만만치 않을 것임 잘 알기에 다행이지만, 그게 늘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나, 대박이만 놔두고 오랜 시간 외출할 때 그렇다. 대박이가 나나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소변이고 대변을 꾹 참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집을 비우지 않으려고 하지만, 살다보면 꼭 그래야만 할 때가 생긴다. 그럴 때는 마음이 바쁘다. 얼른 귀가해서 대박이 산책을 시켜야 하는데, 하면서 귀가하는 발걸음을 서두르게 된다.


남편이 출근할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참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하는데 비가 엄청나게 많이 쏟아진다면서 외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여기는 안 오는데, 하면서 베란다로 나가 바깥을 살피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빗줄기가 굵어졌다. 에궁. 산책은 못 나가겠네. 영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언니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비가 너무 많이 오지? 나도 전화하려고 했어'라고 얘기한다. 영란 언니는 대박이와 나의 산책 파트너다. 우연히 알게 돼, 아침마다 만나서 같이 산책을 하고 있다. 두어 달쯤 됐나?


대박이 산책은 오후에 빗줄기가 성겨지면 그 때나 가야지, 했다. 그런데 9시 반쯤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밖을 내다보니, 비가 그쳤다.


앗싸, 비 그쳤다. 대박아, 산책 가자.


산책을 갔을 때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 된다. 빗줄기가 굵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비가 쏟아질 때를 대비해 방수가 되는 등산 모자를 쓰고, 등산용 소형 우산을 챙겼다. 대박이는 산책 가자는 말에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산책 간다고 신나서.


비가 오지 않는 틈새를 노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는 한 시간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비는 조금씩 흩뿌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우리가 산책하는 길에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아서 비를 막아주어서 비를 거의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 길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나무들이 햇빛이 작렬할 때는 햇빛을 막아주면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무 길을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고.


오늘도 대박이는 왕성한 배변활동을 했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냄새를 맡았고, 영역 표시를 했으며, 가장 중요한 큰일도 보았다. 오전에 산책할 때 대박이가 큰일을 보면, 아주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아주 드물게 큰일을 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걱정이 된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가 개가 똥을 누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게 될 줄은. 그래서 인생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보은의 동산 연못. 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보은의 동산 연못에 피어난 연꽃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은의 동산 연못에 피어난 연꽃들을 구경했다. 산책을 할 때마다 보고 있는데, 6월 말부터 연꽃이 조금씩 피어나더니 점점 많아지고 있다. 7월은 연꽃이 절정으로 피어나는 시기가 아니던가. 지금쯤 양평 세미원이나 시흥 관곡지에서도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리라. 연꽃이 덜 더울 때 피면 더 좋을 것 같다. 재작년인가,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양평 세미원에 연꽃 구경하러 갔다가 쪄죽는 줄 알았다. 너무 더우니까 연꽃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얼른 시원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필이면 연꽃은 염천에 피어나는겨, 하면서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나, 부르지 마쇼. 대박이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대박이는 집에 돌아와 퍼졌다.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뒹굴거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 그런 대박이를 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의 숙제를 시원하게 해치운 기분이랄까. 이제부터는 비가 많이 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우리 농장이 물바다가 될 텐데, 우짜노. 그렇지 않아도 배수가 잘 안 되는데.

이래서 사람은 살아가는 만큼 걱정거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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