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의 간이의자
지난 토요일 아침, 주말 놀거리 계획 중 우리 가족이 '공룡박물관'으로 부르는 자연사 박물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매년 한 번 이상씩은 꼭 가는 자연사 박물관.. 늘 놀이터나 수영장으로 다니다 오래간만에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아이들도 조금씩 더 커서인지 같은 전시를 보면서도 생각하거나 느끼는 게 조금씩 달라 보였다. 우리 또한 늘 보던 것들이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도, 더 잘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았다. 박물관 관람 후 간단히 밥을 먹은 다음,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커피숍에 가 봤다. 우리도 커피 한 잔씩, 아이들은 코코아 그리고 조각 케이크..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오늘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추억은 바로 이 커피숍에서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지우만 할 때 박물관에 다녀오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지금의 지우보다 한 살 정도 많을 때 대영박물관 관람 후 내 기억 속에 남았던 것은 어떤 애국심 넘치는 한국 유학생이 '세계의 금속활자' 지도판에 매직으로 적어놓은 직지심경과 끝도 없는 전시관 중간중간에 놓여있어 아픈 다리를 쉬어갈 수 있었던 벤치뿐이었다. 이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나와 형의 결사적인 반대로 박물관 입구만 보고 돌아 나왔는데, 입장하는 곳 너머로 살짝 보이던 모나리자가(였을까? 다른 전시였을까.. 사실은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기억에 남는다.
부모는 때때로 아이들을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혼자서 멋대로 기대한다. 이곳에 가면 이런 걸 느끼겠지, 혹은 이렇게 하면 요렇게 되겠지.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는 곳에 끌고 가 봐야 아이들에게 '다리 아픔'과 '지루함' 만을 가르쳐 줄 뿐이다. 어린 시절, 나 또한 매번 그렇게 느껴 놓고선 부모가 되어서는 부모 입장에서만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서 우리는 베를린에 온 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자연사 박물관과 기술 박물관 이외에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았고 다른 유럽 여행도 다니지 않았다. 다만 베를린 전역의 놀이터(놀이터들이 모두 다른 테마로 만들어져 있다), 수영장, 공원, 동물원 등이 우리가 매번 다니는 곳이다. 그렇게 우리는 베를린 곳곳에 우리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두 번, 세 번 가본 곳이라면 이젠 차만 타고 지나가도 아이들이 그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날씨가 좋아지면 비슷한 날씨에 가 본 공원을 이야기하며 또 가자고 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이런 흔적들이 하나하나가 모여 조그만 추억의 세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도 모두 해주지 못하면서 뭔가 대단한 걸 해주려고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아이가 원하는 건 어떻게 아냐고? 당장 아이에게 물어보자. 나의 경우 대부분 아이들이 원하는 대답은 '그냥 아빠랑 같이 놀기'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