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과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패터슨 시에서 사는 패터슨. 그는 패터슨 시의 버스기사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일터에서는 동료 기사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운전석에 올라 같은 노선을 운행한 뒤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일상에서 유일한 변주는 버스에 타는 승객들이 바뀐다는 것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삶을 사는 패터슨이지만, 그는 그 평범한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특별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노트를 통해 한 편의 시(詩)가 된다. 영화 <패터슨>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건 바로 우리들도 패터슨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패터슨처럼 평범하지만 알고보면 특별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라는 부제가 붙은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의 서문에도 이 패터슨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마도 같은 버스기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저자에게 영화 <패터슨>은 더욱 특별했을 터. 그는 영화 중에서도 영화 후반부, 어떤 여행자가 패터슨에게 시인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고 답하는 대사에 공감했다고 했다. 미국에도 나와 같은 버스기사가 있어 기뻤다고.
“나는 격일로 하루 열여덟 시간씩 시내버스를 몬다. 버스기사보다 더 버스기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그냥 버스기사라 나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꾸하기 싫은데 묻지 않아서 좋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좋다. 그 사람 머릿속에 있는 딱 그 버스기사로 맞춰 산다.” (14-15쪽)
전주에는 하루 열여덟시간씩 버스를 운행하며 글을 쓰는 ‘그냥 버스기사’ 허혁이 있다. 가구점을 운영하다 정리하고 자신의 고향 전주로 내려가 시내버스를 몬지 이제 5년이 되었다. 끼니도 못 챙기고 때로는 화장실도 참아가며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노선을 몇 번씩 도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극한 직업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그는 2년차가 되었을 때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버스를 운행하며 드는 생각들, 만나는 풍경들, 무엇보다 한 생을 짊어지고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의 이야기들의 이야기는 특별했다. 그렇게 글을 썼고, 한 권의 책이 되어 현직 버스기사이자 작가가 되었다.
버스로 거리를 누비며 글을 쓰는 사람. 영화 <패터슨>의 장면이 겹쳐지며 아름다운 장면을 기재했지만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속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열여덟 시간을 운전석에서 버텨야 한다는 육체적 괴로움, 운전에 집중하기도 모자란데 서비스를 요구하는 승객들과의 실랑이, 거리 곳곳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사고 위험요소까지 ‘체험 삶의 현장’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민낯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를 떠난다는 설레임보다는 피곤한 몸을 구겨 넣는 곳, 그래서 조금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마는 곳이 시내버스였다. 그리고 그것을 버스 운전석에 앉아 매일같이 보고 들은 버스기사의 눈에 우리는 안스러운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고단한 삶, 묵묵히 같은 거리를 맴도는 버스 노선처럼 그저 우리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살아가면 될 것을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경쾌한 목소리로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는 어느 승객처럼, 이 정류정은 힘들게 안 서고 가셔도 된다고 버스정류장에서 손사래 쳐주는 배려를 해주는 어느 여고생처럼 아직까지는 우리를 웃음짓게 하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별 게 있나. 그저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들고, 한껏 웃고 나면 되는 것을.
오늘도 우리들의 삶을 싣고 같은 거리를 도는 세상의 모든 버스기사님들께 버스 요금 내며 가벼운 눈인사라도 건네보면 어떨까. 당신도 나도 오늘의 삶 속에 한번은 웃음이 기록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