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을 찾은 그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전혀 문제를 일으킬 학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부모가 먼저 상담 신청을 했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 학업 성적도 나쁘지 않고 태도 역시 성실했던 학생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부모 몰래 불법 성 동영상을 보고 있었고, 아이가 말은 하지는 않지만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어 상담을 신청을 했던 것이었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까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 학생이 상담실에 선생님과 단 둘이 남게 되자 선생님에게 한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선생님, 섹스는 누가 하는 거예요? 남자끼리 하는 거 맞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남학생이 처음 불법 영상을 보게 된 건 온라인 서핑을 하던 중이라고 했다. 옆에 광고가 떴고, 그걸 찾아 들어갔는데 게 그게 하필 동성간의 영상이었다. 이후 유사 영상을 계속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계속해 동성간 성관계 영상을 보게되었고, 성교육이 전무했던 이 학생에게 성관계란 동성간에 하는 것이란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작년에 아이 유치원에서 열린 부모 대상 성교육에 강연자로 온 청소년 성교육 상담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던 그 시절 나 역시 불법 동영상으로 성관계를 접했다. 그런데 하필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 다자성애에 관련된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건 물론이고, 한 달 가까이 그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때로는 죄책감이, 때로는 호기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른들은 다 이런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에 세상 모든 어른들에 대한 거부감도 생겼다.
내 경험 때문이라도 아이를 키우며, 그것도 나와 성이 같은 딸들을 키우며 성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부모와 먼저 이야기할 수 있게 키우고 싶었다. 게다가 7살이 되며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는 거야?”, “고추는 어떻게 생겼어?”라는 질문을 먼저 할 만큼 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 큰 아이 때문에 더더욱 내가 먼저 준비해야겠다 생각했다.
오히려 어떤 사회적 편견도 없을 때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땅히 아이에게 보여줄 자료가 없었다. 이미 아이는 “아빠의 정자 씨가 고추를 통해 엄마의 난자 씨를 만나는거야”를 말하고 있는데 그림동화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림이 아닌 정확한 어른 남녀의 성기 모습을 보고 싶어했고,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지만 내가 과학 시간에 배웠던 난소의 모습 외에는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그나마 겨우 찾아준 책이 why 시리즈 중 《사춘기와 성》이었다.
그런 갈증이 있을 때 유치원에서 열린 부모 성교육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께 내 고충을 말씀드렸더니, 그때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인 1971년, 덴마크이 작가이자 심리치료사,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기가 어떻게 생기고 태어나는지를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어른 남녀가 벗은 모습, 성 관계가 이루어지는 모습, 아기가 나오는 모습까지 어떤 비유 없이 팩트를 그렸다.
이 책은 출간된 이듬해인 1972년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수상했고, 올 9월부터 코펜하겐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덴마크의 보물’전시에 보물 전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미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이 의무 과목으로 지정된 유럽에서 유아동 성교육 책으로 사용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 근거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사실적인 그림과 표현에 바로 아이에게 보여줘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남편 역시 이 책을 보자마자 한 첫 마디가 "이걸 아이한테 보여준다고?"였다. 아이에게 보여주기에 앞서 마흔을 앞둔 성인 두 남녀 두 사람이 주저할만큼 대한민국에서 교육 받으며 자라온 우리들에게 이 콘텐츠는 낯설고 놀라웠다.
아마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윗 세대들이 이 책을 처음 보면 나와 똑같이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충격이 가시고 든 생각은 ‘왜 나는 인간이면 누구나 하게 되고 알게 되는 성관계’를 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었다.
나는 40년이 흐르는 시간동안(그 사이 두 번이나 출산을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성관계는 이렇게 하는 거라 알려주지 않았고, 아기는 배꼽으로 나오는 거란 엄마 말에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정말 아기는 배꼽에서 나오는줄 알았다. 그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이미 나에게는 성관계라는 것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내용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 어쩌면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이미 이 책에 나오는 지식 정도는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뒤 다 자르고, 성행위에만 집중해 논란을 만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른들이 논쟁을 벌이며 쓰는 자극적인 말들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을 오히려 외설적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치원 때부터 성교육이 시작되는 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20년이다. 건강한 성 인식은 아이 때부터 부모와, 학교가 함께 만들어가야함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 아닌가. 어느 시기가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 있으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고,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공교육에서의 적용은 어려울수는 있으나, 적어도 이런 책 한 권쯤은 우리사회에 꼭 있어야 한다. 논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논란의 역할은 톡톡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