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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 planEAT 아워플래닛 May 15. 2019

아유보완, 페타!

페타 시장 푸드투어

FOOD STORY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내가 늘 하는 일들이 있다.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 보는 것과 가장 오래되고 번잡한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것.  하나는 멀리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장 가까이서 그 도시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시장에서 나의 관심사는 물론 먹거리와 식재료이다. 

그 나라 음식문화의 근간과 식생활의 단면, 물가 파악, 흥정의 노하우 등 음식에 관심 있는 여행자에게 시장은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여행의 필수코스이자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자국 음식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현지인 친구가 동행한다면?

금상첨화! 그 여정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진다.


여행 전에 지인의 소개로 만난 스리랑카 친구 미유루는 거기에다가 현직 요리사였다.

아.. 요리사가 안내해주는 재래시장 먹거리 투어라니. 기대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설렘이었다.

역시나 미유루는 호기심 많은 우리의 질문공세에 명쾌하게 답을 해주었고, 드넓은 페타 마켓을 큰 걸음으로 활보하며 구석구석 우리를 안내했다.

 

여느 오래된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 전체에 에너지가 가득했다.

마켓은 몇 개의 큰길들로 연결되어 있었고 각각의 길은 전문용품 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짝거리는 전자제품들이 시선을 끄는 거리를 지나면 화려한 사리(여성들의 전통의상) 와 옷감을 파는 거리가 이어지고, 거기서 한 블록을 지나면 건어물 상점들이, 청과류 시장이 이어지는 식이다. 마치 연극의 막이 바뀌는 것처럼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배경과 등장인물, 소품들이 달라졌다.


모든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좁은 골목 사이에, 건물과 건물의 틈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먹거리를 파는 곳이 있었다. 미유루는 넘쳐나는 볼거리들과 점점 달아오르는 시장의 열기로 인해 정신이 없는 우리를 부지런히 이끌며 설명과 시연, 시식을 이어갔다.


 


우리는 4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10가지가 넘는 것들을 먹고 마셨다. 중간중간 조금씩 맛본 것까지 하면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향신료였다. 우리가 이날 시장에서 먹은 모든 음식에서 향신료가 느껴졌다.

심지어 먹기 좋게 썰어서 파는 노점의 과일에도, 감자칩처럼 튀겨 먹는 카사바칩에도 라면스프 같은 맛이 나는 향신료 소금이 곁들여졌다. 신기하게도 우리로 치면 장아찌와 같은, 채소와 과일을 이용한 피클에도 제각기 잘 어울리는 향신료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향신료라는 한 가지 요소를 곁들였을 뿐인데 그 작은 차이가 평범한 음식에 개성과 표정을 불어넣고 있었다.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향신료의 위대함이다.


스리랑카 음식은 일반적인 우리 입맛에도 매운 편인데 그 매움이라는 것이 고추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향신료의 조합에서 비롯된 다방면의 자극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서 때로는 음식만화 속 대사처럼 ‘입 안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듯 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향신료는 조합과 비율의 차이를 두면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를 만드는데 이 다양한 가능성이야 말로 향신료 요리의 최대 장점이자 매력포인트이다.

그 옛날 고작 후추 정도 어렵게 구할 수 있던 나라들에 비해 이들은 이 자연의 선물들로 얼마나 다채로운 미각의 즐거움을 누리고 살았을지. 실제 민중의 삶이 어떻든, 지표와 숫자로 보는 이들의 경제상황 어떻든 간에 향신료와 허브로 표현되는 식탁 위 맛의 다양성에 있어서 이들은 오래전부터 금수저였음이 분명하다.


한낮의 더위와 피로를 달래주는 또 다른 주역은 ‘단 맛’이었다. 유독 더운 나라에는 달달한 간식거리도 많은 편인데 이곳 역시 그랬다.

거리 곳곳에 ‘Cool spot’이라는 이름의 가게들이 보였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글자 그대로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메뉴들이 가득했다. 풍요로운 과일의 나라답게 10여 종이 넘는 생과일주스와 -이미 충분히 단 과일과 함께 설탕도 충분히 넣는다- 짭짤하고 매콤한 간식들로 가볍게 요기를 하는 현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우리도 그들처럼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인도의 여느 거리에서처럼 이곳도 차를 파는 곳이 많았다. 우유와 함께 진-하게 우려낸 차에 더욱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 높은 곳에서부터 아래로 차를 붓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 작업에서부터 ‘YARD (길이 단위) TEA’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인들이 참새방앗간처럼 수시로 드나들며 선 자리에서 빠르게 찻잔을 ‘탁’ 털고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이탈리아의 바(bar)의 아침 풍경과 같았다. 말하자면 ‘스리랑칸 에스프레소’인 셈이다.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넘치는 달콤함이 이온음료처럼 지친 육신 곳곳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기분도 함께 좋아지는 것이, 이럴 때 당분이 필요한 거구나 새삼 느꼈다.


 


한 거리에는 건어물을 전문으로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박스마다 쌓여 있는 건어물들이 무척 흥미로워 보였다. 옆 나라 인도에 살 때는 건어물을 이용한 요리라는 것을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데다가 말려진 생선의 종류도 다양해서 저 많은 건어물들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가 궁금했다.

“뭐. 아주 많은 요리에 쓰이고 있지” 라며 미유루는 마치 우리에게 쌀을 언제 어떻게 먹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했다. 거기에 스리랑카에서는 우리처럼 건어물로 육수를 내는 대신, 코코넛 밀크에 향신료와 함께 우려서 이것을 많은 요리의 베이스로 사용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투어는 청과물 시장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족히 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긴 시장 안을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도 그렇지만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채소와 과일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맛과 향, 조리의 용도가 다른 색색가지의 바나나들 (바나나 꽃까지 요리에 사용한다), 다양한 크기와 맛을 가진 5-6종의 올망졸망한 망고들은 하나하나 입에 넣을 때마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단일품종의 맛에 길들여진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여러 층위의 매운맛과 함께 깊이 있는 향을 가진 고추들, 이곳 향신료 요리의 주연을 책임지는 각종 스파이스와 허브들, 신맛을 담당하는 열매들 (타마린드, 우드 애플)…

얼굴을 흠뻑 적시는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먹어보고 질문하고 기록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정신없이 보물섬을 탐험했다.



점심식사로는 오랜만에 남인도 정찬을 만났다. 탈리(thali) 혹은 밀즈(meal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으로 한 접시에 모든 것이 담겨 나오는 ‘한상차림’ 정식이다.

테이블에 앉으면 우선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바나나 잎이 깔리고 그 위에 제일 먼저 고슬고슬한  밥이 그리고 서너 가지 다른 채소 반찬들이 올라오고, 마지막으로 밥 위에 튀기듯이 구운 살 밥이 실한 생선이 한 덩어리 올려진다.

힌두교가 우세한 남인도에서는 생선이 곁들여진 이런 채식 밥상이 주식이다.

채식요리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 고기 없는 식단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는 향신료의 위대함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만 먹고도 한 달은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다. 

나를 포함해서 기존의 채식 밥상은 단조로우며 즐겁지 않다. (혹은 우울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변주와 활용을 보여주는 이 채소 요리들이 신세계로 보일 수도 있다. 

밥과 반찬은 무한리필이 가능하며, 그릇도 커트러리도 없으니 심지어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미유루는 네 손가락을 어떻게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밥을 먹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커리와 버무려져 질척이는 손끝의 느낌이 처음에는 누구나 어색하지만 꼬물꼬물 뭉쳐지는 밥알과 다른 식재료들의 촉감, 손가락이 입술을 건드리며 음식이 밀려들어올 때의 느낌, 손에서 코로 전해지는 향신료의 향처럼 평소와 다른 감각들이 동원된 식사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수식(手食)을 하는 것이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손만큼 믿을 만하고 청결한 도구도 없는 셈이다.

 



오후의 시장은 오전에 비해 한 템포 느려진 듯 보였지만 여전히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의 하루를 보고 있으면 일상의 저러한 삶이 바로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소하지만 다부진 어깨와 팔뚝에 솟은 잔근육들은 단시간의 운동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그들 삶이 남긴 흔적이자 정직한 노동의 증거다. 팍팍한 상인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길 위의 요리사들에게 -매일의 반복으로 훈련되는 그들의 기술과 땀과 인내로 점철되는 일상의 시간들에- 같은 업을 가졌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따금씩 존경심을 느낀다.


미유루와 함께한 시장 투어는 스리랑카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매우 만족스러운 오리엔테이션이었고 잠시나마 그들과 섞여 같은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냄으로써 이나라 사람들과 심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대도시를 떠나 더 깊숙이 스리랑카를 파고들 시간이 왔다. 인도양은 어떤 푸르름으로 우리를 반길지, 그곳의 음식과 사람들은 또 어떨지. 놀라움과 새로움으로 가득했던 맛보기를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by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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