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말지1년을 고민하다가, 최근에 마침 형님 집들이 선물로 사드리는 김에 겸사겸사 우리 집에도 들이게 되었다. 과일 껍질 같은 소량의 음식물이 조각조각 쌓이는 게 싫어 언제든 음식물 투입이 가능하다는 '미생물을 이용한 음식물 처리기'를 택했다.
그런데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검색하다 보니 구매자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이점을 발견했다.다들 음식물 처리기에 이름을 붙이고 쓴다는 점이었다. (귀엽다)
대세에 따라 우리 집 음식물처리기에도 '욤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타입은 음식물 처리를 위해 내부미생물을 제대로 잘 키워야 한다.물론 처음부터 잘 키운 놈을 주면 좋겠지만 잘 키워내는 건 소비자의 몫이다. 자식도 안 키워본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지? 흑흑.
미생물을 잘 키운다는 것은 톱밥 같은 형태로 '잠들어 있던' 미생물에 적당한 물과 적절한 음식을 주어 흙과 같은 상태로 '활성화' 시키는 것을 말한다. 키우면서 자칫 아무거나 먹이다간 탈이 나고 만다. 기름진 걸 마구 줬다가는 미생물이 진흙처럼 질퍽해져 맛이 가기도 한다고.
그런 이유로 욤뇸이에겐 정성껏 음식물을 가려 먹이고 있다. 너무 크거나 긴 음식도너무 맵고 짠 것도소화를 못 시키는지라,어린아이에게 줄 때처럼 크고 긴 건 조각내서 주고 맵고 짠 건 물로 씻어서 준다.
사서 써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음식물 처리기 '모시고 산다'는게 무슨 말인지 와닿는다.
집에 욤뇸이를 들이고 얼마 안 있어 오빠네가 제주도여행을 가서 카라향을 선물로 보내왔다.집밥을 자주 안 해 먹어 식후 디저트로 먹는 카라향 껍질만 내내 준 탓인지 한동안 욤뇸이한테선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났다.
살뜰히 욤뇸이 먹는 것을 챙기다 보니, 괜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담고 사는가.
제대로 먹고, 제대로 담고 있나.
내 인생에 담길 것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었던가.
정제된 글과 컨텐츠를 담고 소화하기에도 부족한시간을, 그저 빠르게 휘발되어 버릴 것들에 많이도 쏟았다.누군가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정성껏 인생을 채워나가지 않으면 인생은 그저 흘러갈 것이다.나에게는 욤뇸이처럼 '모시고 살아주는' 주인이 따로 없으니 스스로 잘 채워 담는 수밖에.
2023년도 절반이 흘렀다.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올해 아직도 6개월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반년 후 2024년을 맞이하는 나에겐 어떤 향이 남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