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있는 일 같아요. 문제는 그 사랑들이 하나같이 다 진심이라는 거죠.
「이번 생은 처음이라」
신혼 초, 한동안 어머님은 나를 젊은이라고 불렀다.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할머님께서도 시어머님을 젊은이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아마도 대구, 경북 지역에서 며느리를 부르는 사투리 호칭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새아가, 며늘아가 정도의 일반적인 호칭을 기대했던 나에게 '젊은이'라는 호칭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얼마나 객관적인 이름인가!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관계 맺음도 없이 상대적인 나의 젊음만으로 불린다는 것!며느리가 아무리 남이라지만 정말 남 같은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젊은이라는 호칭이 들리면 단란한 시댁 식구들 속에 나 혼자 혈혈단신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예, 접니다. 젊은 저를 부르셨나요?
당시 얼마동안은 남편에게 이 단어로 계속 농담을 하곤 했다.
젊은이는 떡볶이 먹고 싶어.
젊은이는 먼저 잘게.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나를 젊은이라고 부르지 않으시는데, 아마 그 당시엔 며느리나 아가라는 표현이 어머님 입에 안 붙고 어색해서 젊은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 언젠가,
시댁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밥상 위에 따뜻하게 갓 구운 소고기, 냉장고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온기 어린 나물, 생기 가득한 신선한 쌈채소 같은 질 좋은 반찬은 온통 남편 앞에만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반면 내 밥그릇 앞에는 멸치볶음, 진미채, 콩조림 같은 차갑고 마른 반찬들만이 맥없이 놓여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먹는 걸로 차별하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 갈 때면 사위 앞으로 메인반찬을 밀어놓는 친정 엄마의 모습과 비교되어 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어머님의 행동이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어머님은 일생동안 아들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체화되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걸 안다. 어머님 당신이 아들과 식사하더라도 나 때와 똑같이 좋은 반찬은 죄다 아들 쪽으로 쭈욱 밀어 뒀을 성격이라는 걸.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결혼은 그래서 어려운가 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얽혀있어서.
다행히 요즘은 나와 남편 사이 중간 위치에 고기반찬이 놓인다.
그 작지만 큰 변화는어머님의 절친이 놀러 오신 어느 날이 계기가 되었다.
그날도 어머님은 남편 앞에 놓인 갓 구운 갈치 가시를 발라도톰한 살을 집어 남편의밥 위에 올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많이 묵으라, 우리 아들"
그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어머님 친구분이며느리 섭섭하게 아들만 챙기냐고 한 말씀하시며주인공 반찬들을 쓰윽 내 쪽으로 당겨주셨다. 그제야 어머님은 한쪽으로 치우쳐있던 반찬들을 눈치챈 듯 또 한 번 생선살을 발라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내 밥그릇 위에도 살며시 올려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