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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림 May 19. 2020

수아에게 뽈에게 동그라미에게

2020년 5월 19일 화요일

날씨 : 추적추적, 음산하긴하지만 내겐 기분 좋은 날씨 

기록자 : 야림 




동그라미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넷이서 교환일기를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뽈에게서 들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마침 나도 허리가 부서지도록 와식생활을 즐기던 때였고 학교도, 지금하고 있는 회사 일도 아직은 어떻게 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새하얀 날들 중 하루였으니까, 하고싶다고 말했다. 각자가 요일을 정하고 앞사람이 쓴 일기를 읽고 어딘가 마음에 들어오는 곳을 물어 글을 쓰면 되는 간단하다면 간단한 규칙만 있었다. 어느덧 각자가 알음알음 쓴 글은 총 32편. 내가 쓰고 있는 이 글까지 합하면 오늘로 33편, 첫 글을 올린 지 오늘로 58일째다.



날씨가 좋다고 철로를 앞에 두고 베란다에서 맥주도 마셔 제끼던 나였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나는 집에 갇혔다. 이전에 한 번 번복한 바 있듯이, 처음엔 내게도 집순이 DNA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잠시 그 '갬승'에 심취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의로 집에 있을 수 있어야 집순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낙담했다. 지금은 어떻냐고?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기위해 티브이를 해체해서 듀얼모니터로 쓰고 있고, 학교에 갈 수 없으니 집에서 종이를 만들고 있다. 작지만 작업실이자, 사무실이자, 식당이자, 침실인 복합적인 공간이 됐다. 



그냥 무뎌지고 익숙해졌다, 이 생활에. 아니 체념한 걸지도 모르겠다

5월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내게는 글로 쓰고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이마저도 무덤덤하고 이제는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지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매일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일상이라. 

바깥에 나갈 일이 없으니 외출복 자체를 꺼낼 일이 드물고, 간만에 나가게 되더라도 늘 같은 옷을 꺼내들게 되니 인스타그램에 신나게 그날그날 입은 옷을 촬영해 기록하던 #오늘의야림도 멈춘지 오래다. 친구를 만나거나, 맘편히 전철을 타고 시내에 나가 전시를 보거나 책을 사러 서점에 갈 수가 없어졌다. 매일이 일어나서 씻고 작업하고 과제하고 일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샤워하고 다시 잠드는 일이 크게 달라질 일 없이 매일 반복된다. 이틀에 한 번 갈까말까하는 편의점 직원이나 마트 아주머니를 빼고서 하루 24시간 중 얼굴을 맞대고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최고로 많을 때는 2명. 어떤 날은 아예 아무도 없이 혼잣말만 곱씹기도 한다. 전철은 커녕 전철역에 발을 들인 것도 두달 전의 일이고. 철저하게 바깥세상에 통제된 채 대부분의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요즘은 나마저도 기계가 된 기분이다. 음, 그렇다고 우울하다거나 견딜 수 없이 힘들다거나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여전히 인터넷에서 새로운 작가들, 새로운 프로젝트, 재미있는 짤을 발견하면 소리내어 웃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줌으로, 페이스타임으로, 인스타로 전한다. 그냥.. 그 모든 수단이 온라인이라는 게 나를 멈칫하게 할 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  





그래서였을까. 어느날 문득, 수아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한참 전에 써놓고는... 게으름이라고 써야 맞겠지만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고 뜸을 들이다가 어느덧 뽈과 동그라미의 생일이 다가와 버렸다. 느즈막히 부친 편지는 오늘에서야 마침 그들의 손에 쥐어진 모양이다. 각자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썼는데 어떻게 느꼈을까. 


편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매체다. 언제 도착할지, 혹은 도착이나 할지, 잘 받았는지, 답장은 쓰고 있는지, 그 답장이 언제 올지 모든 게 불투명한 종이쪼가리. 나는 그 불투명함을 정성이라고 말하고 싶고, 하루를 살게 하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편지를 보낼 거라는 소식을 알리고 부치는 편지도 그 나름으로 두근거리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던 편지가 우편함에 꽂혀있는 걸 발견하고 게다가 수취인란에 본인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얼마나 떨리는 경험인지 나는 안다. 그래서 세 명에게 부러 직접 만든 종이로 봉투를 만들고 한 자 한 자 손글씨로 새긴 편지를 써서 부쳤다. 모두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난 기분이 드는 밤. 오늘만큼은 덤덤한 마음을 걷고 뜨겁고도 경쾌하게 보내고 싶다. 




클릭 한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덧쓰기도 할 수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느려터진 전달도구. 

그런 종이가 이 책의 주역이다. 


(중략)


무심한, 사소한 종잇조각 안에도 '종이의 신'은 있다. 

조용히,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쓰고, 찢고, 접어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종이는 신통하게도 살아 있다. 


- <종이의 신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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