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 탄자니아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다가 왔다고 하면 그곳은 어떤 곳인지 많이 물어보곤 합니다. 여행자들이 동남아 유럽을 거쳐 끝판왕으로 가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보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제가 2년 3개월 동안 아프리카 살며 경험했던 것들 특별히 아프리카 비즈니스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제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아프리카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길 기대하면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2015년 2월 23일 탄자니아 아루샤에 에티오피아 항공 비행기를 타고 아루샤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뭔가 모를 동경은 있었지만 이렇게 아프리카 땅을 직접 밟게 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20대의 마지막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될지도.
탄자니아에 첫 느낌은 따뜻하다! 였다. 탄자니아는 한국과는 정반대 계절이어서 내가 도착했던 2월은 탄자니아의 여름이었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도착한 아루샤는 1,400m의 고산지대로 햇빛은 뜨겁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아주 쾌적한 날씨였다. (참고로 아루샤는 왼쪽에는 세렝게티, 오른쪽으로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다. 이건 다른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난 이곳에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생겨서 오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그곳에 필요한 제품을 발굴하고, 현지 사람들이 판매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회사였다.
미국에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고, 한국에 지사가 있는데 난 한국지사에서 인턴생활을 하다가, 탄자니아에서 교육 비즈니스를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비즈니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탄자니아로 오게 되었다. 탄자니아는 나 외에 미국에서 Operation을 하던 David이 탄자니아 지사 CEO로 왔다. 이렇게 David과 나의 탄자니아 생활이 시작됐다.
탄자니아에 아무 연고도 없던 나와 David은 이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넬슨 만델라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Hilonga 교수의 집에 거주하게 되었다. Hilonga 교수는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수재로, 넬슨 만델라 기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고, 자신이 전공한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정수기를 개발하여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가 이기도 하다.(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였는데, 지금은 본인이 개발한 정수기를 가지고 여러 비즈니스 경진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는 등 현재는 탄자니아에서 촉망받는 박사이자 기업가가 됐다.)
David은 나보다 한 달 빨리 탄자니아에 들어와서 회사 법인 설립과 함께, 주변 학교를 방문하며 우리 교육 Product을 학교 교장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가 제공하던 교육 Product 컴퓨터 교육 서비스로 컴퓨터가 없는 학교에 컴퓨터, 교육 커리큘럼, 컴퓨터 교사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탄자니아 Secodary School(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는 IT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컴퓨터 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선정했지만, 정부 및 학교 재정 부족, 컴퓨터를 가르칠 충분한 자질의 교사들의 부족 등으로 현실적으로 IT 교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에서 기회를 보고 탄자니아 학생들에게 고품질의 컴퓨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학교와 계약을 하여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을 내면 학생들이 컴퓨터 교육을 제공하는 Product을 개발했다.
처음에 아무런 네트워크도 없었던 우리는 일단 주변 학교에 우리 교육 Product을 알리기 위해 교육청에서 해당 지역 학교 리스트를 받아, 한 학교씩 방문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교 이름만 있지 지리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교를 찾아가려니 쉽지 않았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 은 바로 구글맵!(탄자니아에서도 아주 잘 됩니다. 구글의 위엄) 구글맵에 학교 이름을 쳐서 나오면 일단 그 길을 따라서 가다가 못 찾겠으면 길가던 꼬마를 붙잡아서 어딘지 물어보곤 했었다.
탄자니아에서 첫 두 달은 거의 매일 10km 이상씩 걸으면서 열심히 학교를 방문했었다. 관심이 있는 교장 선생님도 있고 없는 교장 선생님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우리가 받으려고 했던 금액은 한 달에 한국돈으로 한 학생에 5,000원 정도였는데, 교장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이 그 돈을 낼 여력이 없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David과 나는 그래도 일단 이 주변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꼬박 1달이 넘게 거의 40개가 넘는 공립학교를 방문했는데, 대부분 시작이 어렵다고 거절을 당했었다. 몇몇 공립학교 학교가 아니라 학부모를 설득해야 하니 먼저 아이들에게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관심은 보이지만 실제로 계약이 이루어 지지 않고는 했다. 그래서 David과 나는 공립학교는 빨리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으니 전략을 바꿔서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립학교를 먼저 시작해보자고 결정하고 사립학교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탄자니아에서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 탄자니아에 가고자 마음먹었을 때 그곳에 대한 기대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땅에서 살게 된다는 마음 하나로 불편한 것도 모르고 일단 생존! 했던 것 같다. 가끔 그때로 되돌아보며 David과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우리는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그러면 다음 편에서는 우리가 첫 계약을 한 Edmund Rice와 그 이후 이야기에 대해 해보도록 하겠다.
<비즈니스 인사이트>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가 소개한 우리 교육 프로그램을 받아들이지 않는 소비자에 대한 원망(?)이었던 것 같다. 아니 좋다면서 왜 안 쓰지? 밥은 사 먹으면서 왜 교육에는 돈을 안 쓰는 거지?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우리 교육 프로그램이 학생이나 학교가 돈을 내고 쓸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매력의 기준이 교육의 질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었던 것이다...
탄자니아 가정에서 돈을 쓰는 비중을 대충 따져보면 첫 번째 식비, 주거비 그리고 두 번째가 교육비 및 생활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교육비는 그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모습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이곳도 학력 인플레가 심해서, 일단 대학교 지원을 해놓고 붙으면 은행으로부터 교육비 대출을 받아서 어떻게든 학교를 졸업하면, 일단 최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봉급을 받기 때문에 기를 쓰고 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한다. 그래서 대학교도 많고(대학교 같지 않은..), 학원도 굉장히 많다. 그래서 이미 교육 시장은 이 곳에서 돈이 흘러들어오는 검증된 시장이다.
시장 조사 차원으로 현지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는 학원, 대학교 등도 가봤지만 엄청 비좁고 불도 잘 안 들어오는 교실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사실 듣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
그래서 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지 물어보면, 이 학원, 학교가 이곳에서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이름 있는 학교여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정해줘야 하지만, 가르치는 교육의 질이나 환경은 정말로 형편없어서, 진짜 우리가 제대로 잘하면 이곳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지만, 학교 네트워크가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방과 후에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학원을 오픈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비즈니스 쉽지 않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했던가? 성공적으로 건강한 비즈니스를 자리 잡으면 그만큼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히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 한다는 것 은 더더욱 쉽지 않다..
어느 나라, 어느 기업가나 마찬가지 겠지만 그곳 사람들은 생계를 걸고 열심히 비즈니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