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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매니저 Feb 15. 2021

악역을 찾아라

넷플릭스 영화 리뷰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아무도 모른다> 

**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모처럼의 휴일, 따뜻한 하루의 끝을 상상하며 저녁 10시 즈음 소파에 기댔다.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집어 들고 넷플릭스에 로그인. 저장해둔 나의 리스트를 보다가 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어 '그래 오늘은 이거다'하고선 클릭했다. 등장인물들은 어떤 언어를 구사할지 어떤 감독의 작품인지 촬영이나 개봉 시기 그 어떤 정보도 모른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출처: 다음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먼저, 영화는 실제 일본에서 벌어졌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1988)'에 기반해 시나리오가 쓰였다.

말 그대로 4명의 아동은 방치되었고 사망자도 발생했던 사건이다.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뜨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화 또한 어떤 어른이나 제도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아동들의 계절들을 담았다. 4명의 남매 중 가장 큰 아이의 나이가 12살이다. 아무리 어른스럽다 손 치더라도 아이는 아이. 방치된 채 그들은 7부 바지로 겨울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고 수도가 끊긴 채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스토리 자체가 무거워 영화를 보는 내내 찡그린 눈썹을 풀 수 없었지만 '뭐야 이런 영화가 다 있어.' 하고 넘기기에는 또 마음이 복잡했다. 답답한 마음을 설명할 길을 찾기 위해 급히 이것저것 영화에 관한 정보들을 검색했다. 알게 된 사실들은 주연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Yagira Yuya) 배우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14세)을 수상했고, 출연한 배우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다는 정도. 그렇게 서칭을 하다 그 날 저녁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영화를 다시 펼쳤다.


잠깐, 이 영화의 악역은 누구지..
비극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 할 수 있을까?
출처: 다음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악역 후보 #1 엄마

양육의 의무가 있는 부모 중 '모'.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유일한 양육자이다. 생활비를 보내거나 두고 일터로 향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엄마는 죄가 있다. 물론 모든 악역이 죄를 저지른다거나 죄를 저질렀다고 모두가 악역인 것은 아니지만) 그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은지 영화 리뷰에는 잔뜩 '엄마'에 대한 비판이 쓰여 있었다. 최악 이라고들 했다. 그 무책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한 명의 악역이 완성할 수 있는 비극의 깊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출처: 다음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악역 후보 #2 아빠 후보(?)들

그렇다면 부모 중 '부'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나. 사실상 영화에서 '부'는 실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입을 통해 일화로 묘사되거나 아키라가 도움을 요청할 때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그저 자신이 생부 일리 없다고 말하거나 생부라 인정하더라도 양육을 위해 나설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아이들 인생을 스치듯 지나친다. 아이가 나를 닮았는지 진짜 내 아이인지는 궁금하지만 그 이외에는 딱히. 용돈 좀 쥐어주면 그만인 걸. 명백히 생부 또는 생부 후보는 책임의 굴레를 흔적 없이 빠져나왔다. 너무도 손쉽게 그리고 야속하게.


악역 후보 #3 편의점 사장님과 직원

아키라는 매일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같은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구해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먹여 살린다. 아니, 뭐라도 먹였으니 아이들이 다행히 살아 있는 수준이다. 양육자의 부재가 길어짐에 따라 아키라의 행색도 점점 남루해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편의점 직원들이다. 간혹 아이들에게 판매 기한이 지난 음식을 뒷 문을 통해 전달하거나 엄마가 돌아왔냐는 질문을 건네기도 하기에 그들에게 악역의 타이틀을 주기엔 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오지랖을 부린 것일 텐데. 그러면서도 한 걸음만 더 다가갔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올라온다. 


출처: 다음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악역 후보 #4 집주인

항상 프렌치 불도그를 품에 안고 있다. 유일하게 보호자가 없는 동안 망가진 집안 상태를 직접 두 눈으로 본 목격자인데 이상하다 생각은 하지만 안고 있던 반려견을 한 번 보고 아이들의 집을 한 번 돌아보고는 제 갈길을 간다. '그대로 가지 말고 도와줘요' 속으로 또 외치지만 그 처럼 한 번 돌아보는 정도, 갸우뚱하는 정도가 보통의 우리들 모습이 아닌가 싶어 말문이 막힌다. 


악역 후보 #5 동네 사람들

아이들의 모습이 변해가도 변함없이 아이들을 지나치는 익명의 사람들. 무수한 사람들 중 그 누구의 눈에도 아이들은 보이질 않았나 보다. 그렇게 결국 아무도 모르게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나 보다. 


출처: 다음 영화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04)

아키라의 더벅머리는 안중에 없는 야구부 감독, 돈을 미끼로 미성년자를 노래방에 데려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누구 하나 비극의 공범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후의 안전장치가 되어 주지 못한 사회 시스템 조차도. 


나라고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쉽사리 답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떤 노력을 해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JTBC 방구석 1열에 출연한 변영주 감독님께 얻어 이 부분을 공유하며 갈음하고자 한다.


"학대를 한 적이 없는 부모님이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하면 너무 화가 날 텐데, 그때 부모님들이
 '아, 이나라 아이 키울 만 하구나.' '내 아이를 보호해 줄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생각해주도록 노력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wyTzmzbyu0M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그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거니까.


최근 정이삭 감독의 가족 영화 <미나리>와 출연 배우들이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어 화제가 되면서 다양한 가족 영화들이 회자가 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로 시동을 걸었으니 이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걸어도 걸어도>, 윤가은 감독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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