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끝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는'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으로 자처하는 방구뽕이라는 인물이 등장한 "피리부는 사나이" 편이다.
방구뽕은 대형학원 원장의 아들인데 그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시달리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학원버스를 그대로 납치해서 산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서 놀게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할 아이들이 아이답게 놀기는커녕 학원가를 전전하며 끼니조차 편의점에서 때워야 하는 현실이 비정상임을 꼬집으며 부모뿐 아니라 경쟁을 조장하는 이 사회 모두에게 여운을 남긴 캐릭터가 나타난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납치했다면서 방구뽕에게 소송을 걸지만 그는 본인이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고 하면서 법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방 선언문 세 가지를 외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은 최후 변론에서"불안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는다."라는 말을 남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앞장서야 할 부모들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이유는 무엇일까.부모 자신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들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 자신이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까.
방구뽕처럼 나도 슈퍼우먼의 역할을 해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엄마들이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고, 엄마들의 해방을 외치고 싶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다.(물론 아빠의 행복도 마찬가지)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나는 엄마 해방군 총사령관 느낌으로 어린이 해방 선언문과 같은 강령을 육아에 지친 엄마(혹은 아빠)들에게 제안한다.
하나, 엄마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엄마들은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엄마들은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육아하고 집안일하느라 지금 당장 쉴 시간도 없는데 놀아야 한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라고 반문을 할지 모르지만, 엄마들을 납치해 산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실천했던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하나, 지금 당장 노는 방법: 나만의 놀이시간, 놀이공간을 만들자.
1) 나만의 놀이시간 : 아침시간을 사수하자.
하루 종일 육아로 지친 마음을 달래려 육퇴 후 맥주 한잔을 힐링 시간으로 삼았었다. 늦은 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마시는 맥주는 달콤했지만, 그 시간 SNS로 타인의 삶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은 좋은 곳에 가고 좋은 것을 먹으며 즐겁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힘든가,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늦은 시간 잠들다 보니 아침이 피곤하고 늘어나는 뱃살도 스트레스의 요인이 됐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노는 시간을 바꿔보기로 했다. 늦은 밤 말고 아침에 내 시간을 가져보자. 그즈음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읽고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매일 아침 30분 노트에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적어나가는 일종의 손글씨 명상이었다. 일찍 일어나더라도 할 일이 없으면 금방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갈 테니 우선 이거라도 해보자 싶었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는 게 먼저이기에 아이를 재우며 나도 같이 잠들고,새벽 기상까지는 못해도아이보다 30분만 일찍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침 30분의 시간은 저녁에 흘려보내는 3시간과 맞먹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한다는 게, 핸드폰을 보며 의미 없게 지나 보낸 시간과는 달리 너무도 소중한 내 시간으로 느껴졌다.
출처 : 이케아 홈페이지
새벽 시간의 그 공기와 감성을 느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육아로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나 혼자만의 소중하고 신성한 시간을 경험해보면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게 된다. 그 후 모닝페이지는 독서와 아침산책으로 이어졌고, 시간도 늘어서 아침 두 시간은 지금까지도 내가 꼭 사수하는 나만의 놀이시간이다. 내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와 남편을 맞이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니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것은 덤이다. 매일 아침이 어렵다면 주말 오전이라도 내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그 시간에는 아침산책을 하고 카페로 가서 나랑 놀아보자.
추천 책: 아티스트웨이
2) 집안에 나만의 놀이 공간을 만들자.
육아를 하면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집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거창할 것은 없다. 나도 처음엔 침대 옆 수유 의자를 내 공간으로 삼았다. 별다를 것 없었지만 내 공간이라고 정하고 의자 옆에 좋아하는 엽서를 붙여놓고 향초까지 장식해 놓고 나니 그곳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공간에서 일기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혼자 노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나중에는 내 책상까지 마련하기에 되었다. 지금도 내 책상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가서 노는 나만의 놀이공간이다.
추천 책: 오늘부터 그 자리에 의자를 두기로 했다
출처 : 이케아 홈페이지
3) 나를 알게 되는 온라인 놀이 공간(SNS)을 만들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너무 혼자서만 놀면 외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엄마들은 아무래도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많으니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놀이공간으로 SNS를 추천한다. 좋은 순간만 모아놓은 타인의 계정을 보면서 부러워만 하지 말고, 육아 이야기뿐 아니라 본인의 생각이나 취향들을 SNS에 기록해보자. 거창할 것 없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도 기록으로 남기면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기록하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모르고 있던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 엄마의 첫 SNS
나도 그랬다. 아이가 어릴 땐 소중한 순간들을 남기고 싶어서 SNS에 기록을 했다. 그러다가 운동으로, 독서로 관심사가 변했고 그 후엔 글쓰기로 발전해서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추천으로 뜬 계정들을 보면서 나와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면서 SNS로 만난 사람들과도 깊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까운 지인보다 관심사가 비슷한 온라인 친구들에게 내 고민을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게 되기도 한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것 또한 새로운 즐거움이다.
추천 책: 기록의 쓸모, 엄마의 첫 SNS
추천 플랫폼: 밑미, 네이버카페: 슬기로운엄마생활,쓸줄하하
둘, 지금 당장 건강해지는 방법: 마음 건강에서 몸 건강으로
몸 건강은 마음의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아파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면 움직이기 싫어지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니 몸 건강까지 해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먼저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내 감정을 기록하는 것, 나만의 해방일지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해방일지는 주제도 형식도 없다. 마음이 힘들 때 비밀노트에 내 생각을 마구 적어나가다 보면 감정도 정리되고 그 상황이 이해되기도 하며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니 나중에 괜히 털어놨다 하며 후회할 일도 없어서 속풀이용으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도구이다.
엄마들이화가 났다고 느끼는 감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피곤함이라고 한다.(엄마의 화코칭 인용) 피곤한 엄마들의 경우 휴식을 취하는 게 먼저이니 건강해지겠다고 당장 무리한 운동을 하기보다는 하루에 20분씩 산책을 추천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지만 제일 간편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운동이 걷기와 산책이었다. 맑은 공기와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면 기분도 전환되고,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은 또 한 번 내 자존감을 높여준다.
추천 책: 엄마의 화코칭, 자연스러움의 기술
셋,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 종이를 꺼내 내가 좋아하는 일 20가지를 써보고, 한동안 못해본 일 한 가지를 해보자. 지금 당장!!
나도 처음부터 내 욕구에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20가지를 써보는데 처음엔 울컥하기도 했다. 그중엔 카페에서 멍 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수다 떨기 같은 소소한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이걸 한동안 하지 못했다니 그동안 내가 노력도 안 하고 상황만 탓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남편이 나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엄마니까 스스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남편이 반대하더라도 내가 나를 위해 내 시간을 사수하는 것이 맞다. 그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자들은 여자들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육아를 하면서도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챙겨서 보고,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고, 운동 일정을 잡았다. 이해가 안 된다고 불평만 하기보다는 그가 하는 것을 벤치마칭 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 챙겨보기, 나도 친구들과 약속잡기, 내 운동시간 확보해서 그날은 아이 재워달라고 하기.
내 시간을 확보하는 일은 아이가 아빠를 잘 따르고 남편도 협조적이니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하면서 아이가 아빠를 따르고 남편도 육아하는 입장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애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 아이와 함께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아이는 엄마의 모든 걸 따라 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아이가 아주 어리다면 유모차에 싣고 산책하고 카페에 갈 수 있고, 조금 컸다 하면 친구 만날 때 양해를 구하고 같이 갈 수도 있다. 물론 혼자 가는 것보다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하다 보면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된다. 나는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집에서 줌바 영상을 틀고 아이와 춤을 추기도 했고,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가기도 했다.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아이에게도 펜과 종이를 쥐어줬다.
무언가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어느 순간 엄마가 운동하는 시간이구나, 엄마는 책 보는 시간이구나 인정하는 시기가 오게 되더라.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안 될 이유를 찾으면 수백 가지이지만 해야 될 방법을 찾으면 길은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