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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Aug 16. 2021

마지막 이야기. 엄마와 나.

우리는 과연 건강한 관계일까...?

 긴 취준을 하는 동안 마음 한 편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부모님. 정확히는 엄마였다. 큰 꿈을 갖고 처음 스타트업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도 항상 나의 마지막 과제는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형과 달리 엄마의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었다.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 혼나는 형의 모습을 자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낯을 가리는 내가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등학교 3년을 보낸 것도 그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인서울'이 목표였기 때문에 딱히 엄마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걸 자각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첫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 두 번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중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고, 엄마와 나는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갈등이 시작된 건. 졸업을 얼마 안 남겨두고 공기업을 목표로 취준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는 공기업을 준비하기 전부터 내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를 원했었다. 아마도 형이 공무원 시험을 때려치우고 사기업에 취업을 한 순간 공무원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내게 넘겨졌다. 대학교를 다니며, 한 번도 공무원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내게 통화할 때마다. 그리고 집에 내려갈 때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바람은 내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아직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명확히 정하지도 못한 상황에 들어오는 압박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나는 그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채 타협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타협은 나를 지긋지긋한 암흑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가 주체가 되지 않은 첫 번째 취준. 타협을 한 것 치고는 나름 노력을 했었다. 스터디원을 구성하여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고, 서류전형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을 따며 준비를 했다. 하지만 서류전형 그리고 필기전형에서 연거푸 '불합격'이라는 씁쓸한 세 글자를 마주할 때마다 자존감은 한 없이 무너졌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가 원하는 '진정한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의지대로 다른 길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7년 여름. 어려웠던 필기전형을 통과했지만, 면접을 보지도 않은 채 다른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겨울. 스타트업에 들어가기 몇 주전. 서로 엇갈려버린 길 때문에 나는 엄마와 크게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면접도 보지 못한 거면 그 길이 니 길이 아닐 수도 있어. 앞으로 공무원 준비하는 건 어때?"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았고, 서른 넘게 취업 못 한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공무원'얘기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말이 시발점이 되어 나는 엄마와 크게 다투기 시작했다. 그날 처음으로 속에 품고 있던 내 진심을 엄머에게 꺼냈고, 예상은 했지만 엄마는 그런 날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을 할 때마다 돌아온 건 날이 선 말과 주위 아들과 비교하는 말 뿐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니 얘기를 하지 못해. 다른 애들도 다 하는 걸 니는 왜 안 하려고 하니?"


 말을 하면 할수록 엄마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그저 주변 사람에 자랑하기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조금 더 안정된 곳에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한 말인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쁜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 애기는 끝나지 않을 거 같았고, 다음날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공무원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자리 잡을 때까지 절대로 부모님에게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채로.

 



 그리고, 시간이 흘러 31살에 신입사원이 된 후 2019년 1월. 설 연휴를 맞아 형이랑 함께 고향집에 내려가게 되었다. 


"니 이번에 말할 거가?"

"이번에는 말해야지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으니까"


 함께 내려가며 취업한 지금 다시 엄마에게 얘기를 꺼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다시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언제 말을 꺼낼지 망설이던 중에 형이 내 눈치를 보고 먼저 운을 띄었다.  

 

"엄마, OO가 말할 거 있다는데..."

"뭔데?"

"아니 다른 건 아니고 나 취업했다고.."


 다시 한번 집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년 전과는 달리 내 편에 서서 말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취업한 곳이 대기업 계열사라는 것이 달랐다. 한 동안 엄마는 몰래 다른 걸 준비했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도 어찌할 수 없었다.


 물론, 회사를 다니는 동안 통화를 할 때마다 그리고 가끔씩 만날 때마다 엄마는 잊지 않고 여전히 주위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무원'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지금부터라도 당장 공부를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달고 살고 있긴 하다. 그럴 때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약간의 트러블은 겪고 있다. 아마 나와 엄마의 이런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내가 무얼 하든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변치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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