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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Sep 19. 2022

의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시간이 닳아빠진 나뭇결만큼 사소하다. 운이 나쁘지 않다면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지 않고도 나무의 울퉁불퉁한 흠을 맴돈다. 깎이고 패인 구멍이 어디까지 갈 지 몰라 보지 않고 그걸 만지는 동안은 호흡이 가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손은 대체로 안전하다. 충돌은 처음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접촉들이 달라붙어 상처의 입구를 벌리고 다듬는다. 그 바람에 더 깊어지지 못하고 매끈하게 깎인 질곡에 사람들은 등을 대고 쉬는 것이다.


  파서블과 임파서블을 결정짓는 작은 기호 하나가 나무 의자에서 삐져나온 결 하나란 걸 알고 있을까? 토씨 하나 때문에 보풀이 일어나고 올이 나간다. 기대어 있는 사람들은 등 뒤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마모를 알아채지 못한다. 모든 의자에겐 흠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곳에 기대어 자신의 틈을 생각하다 흠을 만들고 일어선다.


  흠과 틈이 모두 한 음절인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겐 흠이 있어요. 나에겐 틈이 있어요. 그 둘은 같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틈은 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간격이 벌어지기도 메워지기도 한다. 어디서 나간지 모르는 올을 다시 틈 속으로 벌려 집어넣으려는 시도와 아예 올을 잘라 발생한 틈을 없애려는 시도가 때마다 부딪친다. 어떤 날은 성공하고 어떤 날은 실패한 대상이 흠이었는지 틈이었는지 매 순간 명확히 인식한 것은 아니다. 올이 제자리로 돌아가든 끊어지든 이내 그것을 잊고 말았다. 흠과 틈의 존재는 앞뒤로 뒤집으며 한 면씩 번갈아 볼 수 있는 양면의 동전이나 양날의 검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한꺼번에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으면서도 만질 수가 없다.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는 수평을 빚어내기 위해 들쭉날쭉한 흠을 메우며 압착된 나뭇결엔 시간이 벌려놓은 틈이 선명하다. 하지만 표면은 걸릴 것 하나 없는 서늘한 미끄러움으로 가공된 직선 위에서 흠과 틈을 생각할 공간을 주리라 말한다.


  틈이 움푹 패여있다면 흠은 불쑥 솟아있는지도 모른다. 모진 굴곡을 단숨에 정렬해놓고 가지런하게 웃는 이는 한 곳에 품고 있는 빛을 반사하는데 그건 아무리 바라보고 매만져봐도 눈만 시릴 뿐이다. 진짜 살아 숨쉬는 질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뭐든지 하려고 하기 때문에 토씨 하나를 원한다. 그것이 떨어지고 빠지고 닳아서 반드시 우연하게 발생하는 흠을 의식하지 못한 채 등을 기대면서도. 의자는 찰나의 기적보다 찰나의 기척을 기다려왔다. 손이 자신의 몸을 받치고 있는 의자 대신 책상을 만지며 겉돌 곳을 찾는 것과 같은 이유로 한 올의 생채기로도 자욱한 안개를 뚫고 드러날 표피 아래 거친 산기슭을 기대한다.


  의자가 되기 위해 죽어있는 나무 토막들은 새하얗고 날이 서 있었다. 뜯으면 나뭇결이 통째로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에 망설이고 있는 내게 목수는 웃으며 뜯어버리라고 했다. 임파서블에 돋아나 있는 토씨를 손톱으로 뜯어 파서블로 만드는 것이 문명의 정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고 의자는 완성될 수가 없다. 토막들을 끼워맞추고 그것들을 하나의 집합체로써 단단히 엮기 위해선 망치로 내려쳐야 한다. 망치야말로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이던 못이 나무 속으로 파고들기 위해선 먼저 망치의 평평한 부분으로 두드린다. 이 때는 생각보다 그렇게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망치를 반대편으로 돌려야 할 시점이 오면 나무 토막은 머리만 비죽 나와 있는 못과의 틈을 메워야 할 하나의 흠있는 형체가 되어 있다. 망치질의 마지막 순간에 재단된 나무와 제련된 망치의 평행선이 부딪치게 되면 나무엔 상처가 남는다. 그래서 망치를 반대로 돌려 둥그스름한 면으로 못을 내려쳐야 한다. 손으로 만졌을 때 걸리는 것이 없을 때까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건만 못은 번번이 살아있었다.


  다시 망치를 집어 들었을 때 가공할 정신을 위해선 두 직선이 맞닥뜨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잊고 그만 망치를 내질렀다. 나는 그런 짓을 두 세번이나 저질렀다. 이미 죽어 사물이 되어버린 나무에게 더 모질게 힘을 가하지 못한 대가로 손톱 자국 모양의 흠이 아로새겨졌다. 흠과 틈이 없는 존재들이 부딪치면 도리어 그들이 생겨난다는 발견은 불규칙한 나뭇결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의자를 완성하기까지 하나의 못만 남겨두고 잠깐 멈추었다. 딱 한번 내려치면 끝날 만큼 튀어나온 못과 나무 토막 모서리 간의 경계로 눈높이를 낮추었다. 올록한 못의 정수리에 망치의 얼굴을 갖다대니 나무 토막과 붙지 않는 가장자리의 빈 공간이 안개 낀 밤의 초승달처럼 빛났다. 의자는 나무와 망치가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알아채지 못하는 이 균열이 완성할 것이다.


  손에 걸리는 것은 없지만 나무와 한 몸이 된 못 주변엔 분명 틈이 있다. 오랫동안 손가락을 그 곳에 가만히 두었다.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디건에서 새로 뽑힌 보풀을 밀어넣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뜯지 않은 채 대신 의자를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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