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m/h로 달리는 나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믿고 싶다
왔나보다. 3/5/7 연차에 오는 직장인 사춘기가. (3년차가 벌써 2년 전이라는 사실에 또 우울해진다) 아니, 봄이라서 그런가? 한달째 무기력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일은 여전히 잘하고 싶고 회사는 여전히 즐겁다. 하지만 어딘가에 구멍이 뽕 하고 난 것 같은 기분. 바람이 숭숭하고 들어오는게 여간 허한 게 아니다.
왜 이럴까. 생각해봤다. 세상은 따라잡기 숨찰 정도로 빨리 변화하고, 그걸 어느새 따라잡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분명 뒤쳐지지 않았는데 앞서가는 사람의 등을 보고 있자니 한참 뒤에 있는 기분이다. 싸운 적도 없는데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거였다.
때문에 이유 없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핫하다는 전시나 플리마켓에 가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봤다. 하고 나서 보니 부끄러웠다. 온갖 욕심과 오만이 덕지덕지 묻어 '나 좀 봐주세요. 멋지죠' 라고 구걸하는 매력 없는 결과물이었다. 펜을 내려놓았다. 사람을 만나면 플러스가 되는 성격이 아니라, 집에서 천장만 바라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아참. 근데 나 뭔가를 이뤄야 했나? 아니 일단, 매일 뭔가를 이루고 사는 사람이 있는 건가.
문제는 결과물들이 눈 앞에 보여야 만족하는 버릇이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발전의 정의는 뭐고, 나아감의 기준은 뭔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뒤쳐졌나.
그래서 나는 지금 변화해야 하는가.
고민의 궤도를 바꿔보기로 한다.
나는 쌓이고 있다. 6월 5일의 나와 6월 6일의 내가 쌓여 6월 7일의 내가 된다. 해내지 않아도 적어도 뒤로 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말하며 살아가는 이상) 나는 그저 오늘 하루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무언가 해냈다는 것으로 덮으려고 했던 것 같다. 또 스스로 불행을 만들었다.
나는 나를 안에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밖에서 보이는 나에게만 신경을 쏟았던 것. 나 하나 사랑하기가 이렇게 벅차고 힘들다.
뭔가 이루지 않아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다. 힘들긴 하겠다. 세상엔 멋지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진 못하더라도, 나만의 속도는 분명 있을테니까. 시속 80km로 달리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야겠다.
나는 시속 20km로 달리는 나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반드시 있다고 믿고 싶다.
이 글의 마지막은, 내가 방황할 때마다 마음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내 옷자락 끝을 잡아주었던 마스다미리의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옅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것이다
계속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해왔던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여러 모습의 내가 모여서 하나의 내 모습을 만들고 있다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늘려간다.
합체해서,
더 강해져가는 나.
- 지금 이대로 괜찮은걸까 / 마스다 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