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를 채우기 위한 플러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불행해졌다.
제주에서 돌아온 뒤, 이틀 내리 쉬던 날.
그 동안 쌓여버린 집안일을 처리한 뒤 피곤함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는데, 순간 이번 여행은 얼마나 좋았나? 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더랬다.
왜냐하면, 지독스럽게 제주엔 3일 내내 비가 왔기 때문이다. 겁나 우울했다. 겨우 시간 내서 온 여행이 왜. 날씨는 또 왜. 진짜 대체 왜.
여행이란 항상 최고의 날씨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나의 요구에 지구는 응답해줄리 없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힘들었는데!
서울에서 나쁜 공기 마시고 살았는데!
일 년에 몇 번 못 오는 여행인데!
어느순간, 나는 여행을 ‘일상이라는 마이너스를 채우기 위한 플러스’라고 생각해버렸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스스로 불행해졌다.
득을 계산하고 실을 후회하며 셀프 고통을 느끼고 있자니
여행을 보상이라 생각하는 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든 만큼, 무언가를 얻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여행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더 좋은 날씨. 더 좋은 한끼. 더 좋은 인생 사진(그놈의 인스타)을 목표하게 되고, 그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좌절을 안게 된 것이다.
병이다. 항상 높은 지점에 만족 목표점을 찍어놓고 그걸 채우기 위해 발악한다. 여행조차 그래프를 그려놓고 kpi를 계산하다니 참 어리석지 아니한가. (으아아 시끄러)
지금 생각하면,
- 전기차를 처음 타서 신기했던 기분
- 해녀박물관에거 흘러나오던 기이한 노동요 소리
- 풍랑 경보 덕분에 힘차게 돌아가던 풍력발전기
- 미친 추위에 이마트가서 전래 힙한 맨투맨을 산 추억
(가슴팍에 SO SWEET)
모두 서울에서라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여행은 보상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다른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일 뿐.
첫째 둘째날 다음 조금 다른 (돈이 좀 나가는) 셋째날일 뿐.
그리고 여행이 또 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