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부터 듣는 사람이다.
처음 듣는 노래도 가사부터 들린다. 노랫말이 귓가를 타고 내게 들어와 추억이든, 마음이든, 감각이든, 어딘가를 건드리는 순간 그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된다. 대신 아무리 유명한 가수이고 온갖 차트를 휩쓸고 매장마다 노래가 흘러나와도 가사가 나를 뚫고 들어오지 못한 채 스쳐 흘러가 버리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가요라는 장르를 알게 된 시점부터 항상 그랬다. 생각해 보면 더 어릴 때 유치원이나 TV에서 배웠던 동요조차 노랫말에 감화감동 받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들을 때 다른 방식으로 듣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던 날 정말 충격을 받았었다. "가사 말고 도대체 뭘 들어?" "아니 멜로디나 목소리부터 듣지 보통." 이럴 수가.
나는 어떤 장면을 기억할 때도 '대화'로 기억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푹 빠졌다면 타인에게 그 감동을 전할 때 99% 대사에 대해, 말이 담고 있는 감수성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한다. 만약 결정적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끝내주는 노랫말을 뱉어낸다? 그 가사까지 줄줄 옮길 뿐 아니라 그 날부터 몇 달 동안은 주구장창 그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장면의 감동'을 되새긴다. 대사와 노랫말로 그 장면은 내게 중요한 '이야기'로 남게 된다.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사건들 대부분은 머릿속에 마치 대본처럼 기록되어 있다. A가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B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A는 이렇게 화를 냈다... 아주 특이한 순간이 아니면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들의 복장이나 헤어스타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를 옮기라 하면 녹화본 수준으로 그대로 옮길 자신이 있다.
말, 감정, 이야기, 스토리. 언어가 주는 것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면 무엇보다 새로운 '언어'에 적응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사하며 맞닥뜨리는 영어 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업계에서 일할 때, 새로운 팀을 만날 때, 새로운 공부를 할 때, 언제나 낯선 쪽으로 방향을 틀을 때마다 온 몸과 마음의 감각을 총동원해 새로운 '언어'를 흡수하고자 했다.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언어가 흘러나올 때까지.
아마 일상에서 나에게는 맥락- 즉, 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스토리의 흐름이 가장 중요한가보다. 말이 내 안에 들어와 착 붙는 감정이 되고 살아 숨쉬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나는 내가 들어가 있는 물의 온도와 내 체온이 맞춰지고 있다고 느낀다. 아무리 아는 사람이 많아져도,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내가 흐름을 조망하고 있지 못한 곳에서는 답답하거나 막막하다. 그럴 때 나에게 큰 그림 보는 힘을 주는 건 늘 '말'들이었다.
어깨 너머로 듣는 대화, 지나가다 읽은 회의록, 뒷자리에서 들리는 통화, 차곡 차곡 쌓이는 미팅에서의 논쟁들... 다르게 말하면, 이러한 대화의 흐름이 열려 있지 않은 곳이야말로 내가 살아내기 가장 힘들어하는 구역인 셈이다. 이야기의 단절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확신도 자신감도 앗아가고, 그저 눈치만 보는, 절반의 퍼포먼스로 단박에 떨어뜨려 버린다.
새삼 내 삶에서 말-대화-이야기의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건, 어쩌다 요 며칠 줄기차게 한국 가요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이사 전후로 해서 거의 3년 만인가. 다짐하고 실천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모든 흡수력은 영어와, 캐나다와, 새로운 문화의 '언어'에 완전히 쏠려 있는 상태이다. 온 세포를 총동원해 모르는 것들을 모조리 흡수 중이다. 물론, 삼십 년 동안 쌓인 모국어의 감각을 새로운 문화의 언어가 3년 만에 따라잡을 리 없었다. 예전같은 수다쟁이가 되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3일을 연달아 반나절 내내 한국 가요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언어의 뉘앙스를,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말들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지. 종종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영어는 아직 한국말처럼 안되니까 답답하지. 말할 때 밀당이 안되네." 그건 너무 단순한 설명이었다. 며칠째 온갖 사랑노래를 듣다가 알게 된 건, 내가 그냥 발표 잘하고 멋있게 영어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는 거였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갈증이 목구멍에서 모락 모락 끓어오르고 있다. 휴.
요즘 종종 구직이나 CX 주제로 한국분들과 커피챗을 하다 보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효율과 효과 두 마리를 다 잡아 보겠다고 엄청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캐나다 일상에서는 무한 인풋으로 그저 정신없이 흡수 중이고 아웃풋은 엉뚱하게 한국어 쪽으로 엑기스처럼 쥐어짜서 나오고 있다. 얼마 전 구직 경험 공유회도 결국 그 일환이었구나 싶고... 두시간 반을 떠들어도 지치지 않더라. 진짜 낭비한 시간 1도 없었다. 증인 90명 있음... (결론 없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