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요
막막한 순간마다 꺼내보는 사진 한 장이 있다.
20년 함께한 바이올린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이후, 남아있던 해외 연주 일정 중 마지막 공연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누구신지 잘 모르지만 지역의 높으신 공무원께서 초대해 주셔서 다녀온 깡시골 맛집 입구에서 우연히 남긴 순간.
같이 갔던 매니저가 ‘연주가 완전 달라졌어, 너 진짜 그만두는 거 맞니’ 라고 코멘트 했을 정도로 몹시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무대였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사실 그보다 더 내게 의미있는 건, 저 사진에 찍힌 나는 입구 건너 어떤 음식을 맛보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고 (최고였음)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꿈에도 모르는 채 그저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다는 것.
문득 내일이 두려울 때, 다시 낯선 길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과 현재에 좀 더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힐 때, 감히 타인의 삶을 간섭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날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
악기를 그만둔 이후 내 선택의 기준은 한결같았다. 과거의 (음악하던 시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자. 20년을 온전히 하나에 성실하게 바쳤던 어렸던 나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때를 떠올리면, 다가올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바닥이면 어떻고 모르면 어때. 내 온 몸으로 겪으며 쌓아가야지.
원문글: https://www.instagram.com/p/CzhEXI8v65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