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연애 7년, 올해로 결혼 7년 차 부부이다. 한 때 남편을 만난 것이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운을 다 끌어모아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콩깍지에 씌었었고, 요새는 왜 그때 이 사람의 이런 면을 보지 못했을까 의아함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 나름의 평화를 지키며 살고 있다.
MBTI 에서부터 모든 취향의 양 끝단의 우리는 최근 극적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발견했다. 바로 '연애프로그램' 시청이다. 그 고마운 포문을 열어 준 프로그램은 단연코 '나는 SOLO'이다.
남편은 평소 음식, 낚시,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나는 음악, 여행,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 때 자연스레 TV 리모컨을 잡으면 어떤 프로그램을 볼 것인지가 메뉴 선택 다음으로 가장 우리를 곤란하게 한다.
그러다가 나의 끈질긴 영업(?)에 "나는 그런(=연애) 프로그램은 재미없어"라고 했던 남편이 '나는 솔로' 돌싱특집을 함께 보게 되었고, 사실 그 이후에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본인이 그다음 편을 기다릴 정도로 빠져들었다.
남편이 보기 시작한 돌싱특집이 특히나 도파민 팡팡 터지는 에피소드가 가득하여 인물 하나하나 우리 부부 나름대로 분석하고, 예측하고, 의견을 주고받느라 저녁식사 자리가 토론의 장이 되곤 했다.
그 이후로 돌싱글즈,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연애남매 등 주옥같은 연애프로그램들을 모두 섭렵 중이다.
우리는 보통 한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이 2시간이라면 보통 그의 1.5 배내지 2배 시간에 걸쳐서 본다. 중간중간 멈추고 토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각 캐릭터에게서 간혹 서로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때론 과거 자신의 모습이나, 현재의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럼 그런 이야기를 물꼬로 다양한 과거 이야기나 그 캐릭터에 대한 평가를 신랄하게 나눈다.
말하자면, 우리는 연애프로그램을 '대리연애'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 탐구' 교재로써 본다. 자아성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아주 탁월한 교과서인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최근 심리, 명상, 정신분석 등등에 빠져 여러 가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그러니 연애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얼마나 흥미롭고, 다채로우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군상의 표본이겠는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 이런 것들을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하는 순간들이 참 많다. 학창 시절에 이런 토론 수업이 있었더라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보는 눈이 더 생겼을 테고, 혼자 착각하며 속앓이를 하거나, 혼자 상대를 넘겨짚어 좋은 인연을 놓치거나 하지 않았을 텐데... 또는 이성에게 더 내 매력을 명확히 표현하거나 더 더 성숙한 인간으로서 인간관계를 넓혀나갔을 텐데...
그래서 오늘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글을 쓰러 들어왔다. 앞으로 남편과 연애프로그램을 보며 나눈 대화들을 좀 기록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주 우리끼리 대화하고 말기에는 너무너무 아깝고 재미난 주제가 많단 말이다 하하하.
그리고 또 모르지 않나. 이런 기록을 쭉 이어나가다 보면 나중에 딸이 연애를 할 나이가 되면 "이거 한 번 읽어봐"하며 스윽- 내밀어 줄 수 있을지.
딸아, 엄빠는 미처 몰랐던 비기를 너에게 전수한다. 뭐 이런 거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