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뮤 Dec 23. 2024

엄마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만 3살의 고백

나의 우주가 돌아왔다. 한 달간 떨어져 있던 첫째가 어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둘째를 낳으러 병원에 간 날부터 멀리 부모님 댁에 맡겨 둔 우리 첫째는 딱 첫 주 동안만 신이 나서 나와 남편을 찾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즐거워하다 서서히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부재를 경험하게 된 우주는 날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만 갔다. 우주 얼굴에 드리운 그리움은 이내 우울로 변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짜증과 울음으로 표현되었다.


내 한 몸 조금 편하자고 첫째를 떼어 놓았나... 싶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남편과 우리 부모님 모두 신생아와 첫째까지 혼자서 돌보기는 너무 힘들 것이라고 나를 만류했지만, 우주의 표정을 보면 볼수록 내 결정이 더욱 확고해졌다. 한시라도 빨리 데리고 와야겠다!


다행히 둘째를 출산하고 몸회복이 무척 빨랐다. 첫째 때의 경험으로 신생아 돌보는 일도 그리 힘들진 않았다. 밤잠을 잘 못 잔다 뿐이지, 꽤 순한 편인 우리 둘째 덕분에 어려울 게 별로 없었다. 이 상태로라면 우주가 돌아와도 나 혼자서 충분히 잘 돌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우주를 와락 끌어안으며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제는 여기서 계속 엄마아빠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화상통화를 할 때 아이 얼굴에서 보였던 우울은 말끔히 사라지고, 여느 때처럼 밝고 행복한 우주의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대로 해피엔딩이라 생각했다.


우주는 둘째를 무척이나 아꼈다. 안아주고 싶어 하고, 뽀뽀해주고 싶어 하고, 우유도 직접 주고, 책도 읽어주고 싶어 했다. 동생을 시샘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히려 너무 좋아해 주니 그저 고마웠다. 그런데 첫째의 동생사랑이 어떨 때는 문제가 되었다.


아직 고개를 못 가누는 동생을 마구 끌어안으려고 당긴다던가, 놀아준다며 아기가 누워있는 바로 옆에서 방방 뛴다던가, 아기에게 우유를 준다며 우유병을 세게 아기 입으로 욱여넣는다던가...


우주는 선의로 한 그 모든 행동들이 아직 신생아인 동생에겐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빽-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우주야! 안된다고 했지!!!!!"


버럭, 사고처럼 튀어나온 내 고함에 우주도 나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내가 언성을 높여도 그때뿐... 시종일관 계속되는 위험한 참견에 나의 데시벨은 점점 높아져 갔다. 아이를 혼내고 나면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닌데... 엄마가 되어서 이렇게 혼내는 게 나의 최선인가?


남편도, 나도 틈틈이 첫째를 안아주고 사랑한다 속삭이고 놀아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언성을 높이며 동생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남발하게 되니... 지킬 앤 하이드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늘 오후까지 이어진 우리 부부의 혼란스러움. 우주는 점점 떼를 쓰고, 퇴행현상을 보였다. 안아달라, 먹여달라, 입혀달라, 닦아달라. 스스로 잘하던 일들을 모두 엄마아빠가 해주길 원했고, 원하는 요구를 안 들어주면 짜증을 내며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처음엔 예전 훈육상황처럼 끝까지 우리가 고수하는 원칙대로 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계속해서 서러움이 쌓이는 우리 첫째에게 한 번쯤은 져주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부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무언의 합의를 한 것이다. 지금은 위급상황이다. 우리 우주의 결핍된 마음을 채워주는 게 먼저다!


안아달라고 하면 만사를 제치고 안아주었다. 먹여달라고 하면 아기처럼 먹여주었다. 쉬를 할 때 바지를 벗고, 입는 것을 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해주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해주었더니 "이젠 우주가 할게요"하며 혼자서 해보겠다는 일들이 생겼다. 나와 남편은 '지금 뗑깡을 받아주면 계속 이럴지 몰라!' 하는 괜한 걱정에 더 단호하게 훈육을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우리 우주에게 필요한 건 그저 아직도 엄마아빠에게 자기는 사랑받는 아기라는 확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시간은 더 이상 큰소리가 오가지 않고 따듯하고 화기애애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내 옆에서 놀던 첫째가 스치듯 이렇게 말했다.


"우주 옆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놀다가 혼잣말처럼 뱉은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콕 박혀 떠나질 않았다. 아이는 떨어져 있는 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까. 어른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지금 당장은 엄마아빠와 떨어져 있는 그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며 감정을 추슬렀을 딸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주야, 엄마아빠에게 와주어 고마워. 앞으로는 우리 꼭 붙어있자!


사랑해, 내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