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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란 Feb 23. 2024

2월 15일. 세계 소아암의 날 / 세계 하마의 날

함께라면 고통도 멸종도 나아질 수 있다

2월 4일은 세계 암의 날이었다.

세상의 온갖 기념일을 다 챙겨보자고 마음먹어놓고, 2월 4일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건 너무 가식적인 말을 쏟아낼 것 같아서였다.

암으로 돌아가신 가까운 분들이 있지만, 그게 직격타를 날리며 온전한 내 슬픔이 된 적은 없어서 그 무거운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거운 척 글을 쓰게 될 것만 같았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세계 소아암의 날.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접해왔고, 그마저도 눈물이 난다며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런 날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모르는 건 다 마찬가지 아닌가.

북극곰, 다람쥐, 얼룩말의 사정을 알아서 그날 일기 쓰듯 뭔가를 쓴 것도 아니었다.

농인, 시각장애인이 주변에 있어서 그들을 생각해야 하는 날 그렇게 한 듯 글을 쓴 것도 아니었다.

20세기 끝물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몇 년 전 북미로 온 주제에 할례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었단 말인가.


그냥 이건 한 해를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내 다짐이었다.

매일 이런 기념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해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려는 것.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것. 

그게 올해 모든 기념일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 이유 아니었던가.     


다시 눈을 떴다.

이 날이 왜 지정된 것인지 찾아봤다.

서로 힘을 내 소아암을 이겨내자는 의미에서 만든 날.

환우들에게 혼자가 아니라 함께임을 알려주는 멋진 날이었다.

이런 날을 그냥 지나칠 뻔하다니.

이 날을 기념에 많은 단체에서 기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이래서 기념일은 필요한 거지.

세계 소아암인 오늘, 세상이 조금 따뜻해 보인다.     


그리고 세계 하마의 날이기도 하다.

하마가 멸종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날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의 하마를 한 번쯤은 멀리서(!!!) 보고 싶다.

그 육중한 몸으로 육지와 강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환상적일 것만 같다.

심지어 자세히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내 최애 동물 중 하나이자 코끼리, 코뿔소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육상 초식 포유류인 하마는 국제자연연맹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이미 등록되어 있다.

하마의 배설물은 강과 호수의 생명체가 자라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양분을 제공하는데, 하마의 멸종은 특정 어류 혹은 조류 개체수의 급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종의 멸종 위협 앞에서 늘 마음이 타는 건 이런 이유다.

한 종이 사라지는 건 결코 그 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런 사실들을 알고도 ‘그럴 수 있지, 뭐’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보며 가슴 아픈 것도 그런 이유다.

이게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그러니 하마를, 다른 동물들을 지켜내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 종의 생명도 구하고, 인간도 구하는 일이 아닌가.

슈퍼 히어로가 되는 길은 멀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멋진 날이다.

소아암 환우부터 하마까지. 

함께라면 고통도 멸종도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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