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콘텐츠 기획자는
출판기획자로 지난 3년간 109권의 책을 계약하면서 그간의 소회와 깨달음을 이곳에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3년 전 출판 시장에 처음 들어오면서 '출판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마주 세웠습니다. 책 한 권 써본 경험 외에는 출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타 분야의 기획자로 살아온 지난 15년(3년 전)의 경험에 의지해서 당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한 번 만들어보자 싶어 시작한 것이 출판기획 에이전시 <책과강연>입니다. 기획이란 결국 필요를 창출하고 사용토록 만드는 것이니 책도 큰 범주에서 보자면 다를 것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무모한 자신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경험이 무용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은근한 자존심이 작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책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기획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질문이 어렵다면, 이 단어를 일상에서 치대고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치대고 살려면 이 단어가 내 일과 깊이 결부되어 있어야 하는데, 누구나 기획이란 단어를 일적으로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듯하면서도 막상 써먹으려면 낯설게 다가오는 단어가 기획입니다.
'기획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개념의 정의를 물어보면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나 다른 차원이어서 사람들은 자못 당황스러워합니다. 자기 언어로 정의해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기획이란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사람들에게 '이건 필요한 거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 있는 것을 있어야 할 것, 지금 손에 넣고 싶은 어떤 것으로 인식을 전환토록 논리를 짜는 일입니다.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가 한 유명한 말이 있죠.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헨리 포드
필요는 찾는 게 아니라, 기획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란 뜻이겠죠. 헨리 포드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상도 못한 '차'를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세계를 리드하고 확장해나간 사람들은 모두 천재적인 기획자였던 것이죠.
존재하는 것들 중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기획된 것입니다. 정말이냐고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세요.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물이 아닌 게 있나요?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 만들어진 모든 것은 기획된 겁니다. 소비자는 결코 이유 없이 물건을 사지 않아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물건을 만들기 이전에 이유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이유의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해야 소비가 일어나니까요. 그러니까 소비란 결국 '이유의 거래'인 것이고요.
책을 쓰겠다고 오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책 쓰기와 글쓰기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왔습니다. 책 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엉덩이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 쓰지 못하는가?' '왜 써 놓고도 책이 될 수 없는가?'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 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지난 3년간 109종의 책을 기획해가며 통찰해온 기획자의 생각을 이곳을 통해 풀어내 볼 생각입니다. 18년째(2021년) 콘텐츠 기획자로 살아오면서 책을 기획해본 지난 3년간의 경험은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먼저 저에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은 곧 지금까지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익숙한 질문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목적 있는 쓰기에(책쓰기)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실제 도움 될만한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책을 쓰려고 할까?
책은 어떻게 써야 할까?
책 쓰기와 글쓰기는 무엇이 다른가?
독자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책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책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책은 인생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책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까?
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책 쓰기를 시작했거나 계획 중인 예비 저자들이라면, 저의 경험담은 특히나 ‘책쓰기’의 콘셉트를 기획하고 본문의 구조를 잡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획의 핵심은 그들의 이유(필요)를 내가(기획자-저자) 찾아 주는 겁니다. 독자를 능숙하게 설득하는 것 출판 기획의 목적이겠습니다.
출판 기획의 핵심은 그들의 이유(필요)를 내가(기획자-저자) 찾아 주는 겁니다.
먼저 방향을 세워야겠지요. 그러고 나면 자연히 목차가 세워질 것이고, 목차가 서면 그 속에 글이 채워지겠지요. 책을 써가는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필시 방향의 문제였을 겁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성급합니다. 잠시 호흡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봅시다. 모든 기획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무엇에 불안해하는가?’
'인간은 무엇이 불만족스러운가?’
‘인간은 무엇이 불편한가?’
책을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 우리가 질문하고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독자의 불안, 불만, 불편 속에 내재된 욕구입니다. 그들의 감춰진 필요를 찾아주거나, 그들이 필요라 믿고 싶은 것을 창조해 주는 것이야말로 기획의 목적입니다. 독자의 필요를 담지않은 글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을 언어로 재현한 차원이라면 그 원고는 독자에게 어떤 감흥도 전달할 수 없겠죠.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본래의 목적을 무시한 채 글만 써 나가다 보면, 그것이 ‘일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독자가 필요 없는 ‘일기’는 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창의적 발상의 시작이고, 그러한 관점이야 말로 당신의 삶 곳곳에서 ‘기획의 기회’를 찾아 냅니다. 이곳에서 저는 기획이란 막연함을 가능한 쉽게 풀어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방향을 잃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면 저의 얘기가 생각의 중심을 잡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리라고 믿습니다.
기획의 관점에서 ‘책쓰기’를 바라볼 때 지금까지 보지 못한 ‘기획의 기회’들이 거짓말처럼 당신의 펜 끝을 찾아갈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죠. 이 글이 당신에게 내재된 놀라운 잠재력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콘텐츠기획자,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