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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Mar 24. 2022

늘 짐작과는 다른 일들

with. 허수경_<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모든 나날들이 그러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더 이상 허물도 없으며 허물이 있다 한들 서로에게 그렇게 한적할 것이라는 생각, 이만큼의 나날들을 같이했으니 저만큼의 나날도 같이할 거라는 생각. 


허수경 산문집_<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p.195)





떠오르면 슬픈 문장이 있다. 내겐 이 문장이 그렇다.


그 해 봄, 엄마와 내가 보았던 벚꽃은 짧았지만 아름다웠다. 그때 생각했다. 내년 봄에도 엄마와 같이 날리는 꽃을 볼 거라고. 모든 일에 언젠가 끝이 있을 걸 알아도,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내년에도 그럴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했다. 그날, 떨어진 벚꽃을 밟으며 엄마는 천천히 걸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이 문장을 읽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아도, 알고 있어도 늘 잊고 다음이 있을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나도 늘 그랬다. 엄마와의 시간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어쩌면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쓰러졌다. 병원에서 꼬박 일 년. 그리고 내가 엄마와 함께 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2020년 봄, 벚꽃이 바람에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날에 내 곁을 떠났다. 너무나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운 날이어서 더 슬펐다. 그즈음 내가 흘린 눈물이 내가 태어나 평생 흘린 눈물보다 많았다. 그날의 기억이 어제 같아서 나는 아직 벚꽃이 슬프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든 것들 앞에서 자꾸 눈물이 먼저 흐른다.


엄마를 보내던 그날 친구는 그랬다. 엄마가 기일마다 아름다운 풍경 보면서 나들이하듯 엄마 보러 오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가신 것 같다고. 그 말이 문득 다시 생각났다. 우리 엄마라면 정말 그랬을 거다. 끝까지 내 걱정만 하다 갔을 엄마니까. 


어김없이 날이 따뜻해지고 여기저기 꽃 소식이 들리고 덩달아 나도 어딘가 자꾸 훌쩍 떠나고 싶은 봄이 왔다. 그건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다. 며칠 사이 벚꽃이 피고, 잠깐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선물해주고, 빠르게 바람에 날리며 소멸해가겠지. 그리고 나는 그 눈부신 날에 그 꽃비를 맞으며 엄마를 보러 가겠지. 일 년 전의 그날처럼. 또 울면서 쓴 편지를 가슴에 품고. 


아직은 나들이하듯 갈 수는 없지만, 올해도 결국엔 울고 돌아올 테지만. 엄마를 보러 갈 4월 2일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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