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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Mar 29. 2022

"지금 당신 외롭다면..."

with. 설인아_<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내가 외로운 이유는 누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꽤 오래전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외로울 때마다 더더욱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에 집착하며 드라마를 쓴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누구의 삶도 녹록지 않으며, 얕잡아 볼 수 없으며, 나만큼 이번 삶을 버텨내기 위해 사투 중임을. 그러다 걷게 되는 동질감과 공감은 내 안에 갇힌 외로움을 걷어내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지금 당신 외롭다면, 10만 명의 사람들이 듣는 이 받는 이 없는 전화기에 제 속내를 털어놓은 이 책을 읽어라.     _ 노희경 작가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제목을 가진 책의 뒷면에는 노희경 작가님의 추천사가 이렇게 길게 쓰여 있다. 노희경 작가님이 어떤 책에 추천사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추천사로 책을 선택하지 않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홀린 듯 집어 들고 계산을 한 이유였다.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관객 참여형 전시였다. 전시 공간에는 여러 대의 아날로그 전화기가 벨을 울리고 있고, 한쪽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놓여 있다. 벨은 계속 울리고 있고,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매번 수화기를 들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람들은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그 목소리들이 옆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누군가가 한 이야기라는 걸 이해한다. 전시가 끝나면, 남겨진 이야기들을 작가는 세상의 끝에 놓아주는 의식을 진행한다. 2018년 처음으로 모여진 부재중 통화들을 2019년 지리적 세상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의 바람 속에 자유롭게 놓아졌다고 한다. 이후 2021년까지 모인 통화들은 사하라 사막의 고요 속으로 흩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책은 그렇게 남겨진 목소리들의 문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떨리고, 망설이는 목소리들. 작가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지 못한 말 하나쯤은 묻고 살아간다고, 그렇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부재중 통화'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너한테 해주지 못했던 걸 다른 사람에게 해주고 싶지 않아. _54,058번째 통화


엄마는 이 세상을 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했을까, 묻고 싶어요. 엄마는 이 모든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버텨왔어요?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엄마랑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 가보고. 엄마랑 찍은 사진도 없어.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쉼 없이 달려왔을까. _24,827번째 통화


잘 지내길 엄청 바랐는데. 잘 못 지내서 전화 한 통 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사람 마음이더라. _27,769번째 통화


사람은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 못 할 그런 고민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있는데 항상 그게 마음의 짐이 되었고,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 물어봤을 때 거짓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상처받은 경험도 있고, 어느 순간부터 그 사실을 숨기에 되더라고요. 어디다 이야기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전화기 들고 말을 하니까 좀 마음이 편해요. 인간은 누구나 말하지 못할 사정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요. 

_53,633번째 통화


설은아_<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중에서




어떤 이야기는 용기가 나지 않고, 어떤 이야기는 말하고 난 이후의 시간이 두렵고, 또 다른 이야기는 행여 내 말이 상대에게 상처나 짐이 될까 두려운, 그런 차마 말하지 못하겠는 마음이 분명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삶의 많은 순간들이 참 외롭다. 그리고 그런 삶의 외로움은 혼자임을 자각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그런 순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은 즉각적인 위로가 된다. 


그러니 추천사에 쓰여 있는 것처럼


외롭다면, 이 책을 펼쳐 아무 페이지나 읽으면 된다. 10만 명의 바람들이 듣는 이 받는 이 없는 전화기에 제 속내를 털어놓은 이 책을. 




전시는 끝났지만 목소리를 남길 수 있는 전화번호는 아직 그대로 남겨 두었고, 아직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문득 언젠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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