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는 어떻게 하라고
남편은 설거지를 더럽게 못한다. 아니다, 정정한다.
그는 내 마음에 쏙 들게 설거지를 못할 뿐이다.
사실 세상 그 누구도 타인이 백 프로 흡족하게
뭘 해내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오늘도 침묵 속에 그가 설거지하고 개수대에 올려둔 그릇을, 엎어두지 않고 똑바로, 그것도 포개어 놓기까지 한 접시며 컵을 물이 빠지도록 걸쳐둔다.
다 내 욕심일 뿐... 불만이 있다면 내가 하면 될 일이다. 물 빼기는 설거지의 기초가 아니었단 말인가(울컥).
언젠가 그릇을 거꾸로 놓고 물기를 빼는 게 오히려 위생에 안 좋다는 기사를 스치듯 본 일이 있다. 남편이 이 기사를 보지 않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기사를 누군가의 남편이 쓴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내 남편이 썼나? 너냐?
양말이나 옷을 하루 더 신거나 입겠다며, 거실 구석에 그러나 뻔히 보이는 곳에 구겨진 옷과 양말을 둔다. 옷장에 개켜서 넣어두면 되잖... 말하기도 귀찮다. 이 역시 내 기준이 아닌가.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지 뭐. 눈에 띄는 즉시 악착같이 빨래통에 던져버리는 나와 그걸 뒤적이며 다시 꺼내오는 그와 나의 침묵 속 승부는 계속된다.
남편에게 품은 불만은 쓴 것 같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나와 다른 점을 몇 자 적어보았을 뿐.
이런 글을 쓰면 감싸기 위해서 꼭 남편의 장점을 덧붙이게 되는데
퇴근하고 올 나를 위해 갈치조림 살을 다 발라 밥상을 차려 놓았다던가, 내가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를 구워놓는다던가, 하는
차고 넘치는 큐티 프리티 포인트를 굳이 첨언하지 않더라도 그는 충분히 나의 귀염둥이니까, 진짜, 더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