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우리가 사랑해주니까 비싼거다

포토카드 한 장이 비싸지는 진짜 이유

by 닥터 F

자, 지갑을 열어보자. 아니면 탑로더(Top-loader)에 고이 모셔둔 너의 보물 1호를 꺼내보자. 가로 5.5cm, 세로 8.5cm. 손바닥 반만 한 이 종이 한 장을 얻기 위해 너는 얼마를 썼나?


앨범 수십 장을 깠으니 적게는 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썼을 수도 있다. 아니면 '포카마켓'이나 번개장터에서 시세를 주고 50만 원에 모셔왔을 수도 있다.


일반인(머글) 친구가 보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야, 그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그 돈을 써? 그거 원가 50원도 안 하겠다."


맞는 말이다. 재질로만 따지면 그건 그냥 코팅된 종이다. 불에 태우면 3초 만에 재가 되고, 물에 젖으면 쭈글쭈글해지는, 아무 기능도 없는 펄프 덩어리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종이 한 장에 월급을 태우고, 울고 웃고, 심지어 재테크까지 하는 걸까?


회사가 상술을 잘 부려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부터 '자본주의의 연금술'이라 불리는 기적, 즉 이미지가 황금이 되는 마법의 원리를 알려주겠다. 이 원리를 알면, 네 손에 쥔 그 포카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회사가 왜 너에게 꼼짝 못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1. 사용 가치 vs 기호 가치: 우리는 '기능'을 사지 않는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의 소비를 아주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는 물건의 가치를 두 가지로 나눴다.


사용 가치 (Use Value): 물건의 쓸모. (예: 밥은 배를 채워준다, 패딩은 추위를 막아준다.)

기호 가치 (Sign Value): 물건이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 (예: 샤넬 백은 내가 부자임을 증명한다.)


K팝 굿즈, 특히 포토카드는 '사용 가치'가 0에 수렴하는 물건이다. 이걸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추위를 막을 수도 없다. (탑꾸해서 가방에 달고 다니는 건 장식이지 기능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비싼가? 바로 '기호 가치'가 극대화된 물건이기 때문이다.


포토카드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팬덤 내에서의 '계급장'이자 '신분증'이다. 희귀한 '공방 포카(공개방송 참여자 한정 포카)'를 가지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나는 그 추운 날 새벽부터 줄을 서서 내 가수를 응원한 찐코어 팬이다"라는 증명서다. 비싼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를 드래곤볼(전 멤버 수집) 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나는 이만큼의 구매력(재력)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는 과시다.


우리가 맛집에 가서 음식 옆에 포카를 세워두고 '예절샷'을 찍어 올리는 심리를 보자. 음식이 맛있어서? 아니다. "나 지금 내 최애와 함께 있어"라는 '소속감'을 전시하고, 트위터 친구들에게 "나 이거 있다"라고 인증하는 '놀이'다.


회사는 종이를 팔았지만, 우리는 그 종이에 '서열'과 '소속감'이라는 기호를 입혔다. 포카가 비싼 이유는 종이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그 기호가 주는 만족감이 비싸기 때문이다.


2. 시뮬라시옹: 원본 없는 이미지가 더 진짜 같다


보드리야르의 이론 중 가장 소름 돋는 개념이 있다. 바로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시뮬라크르(Simulacre)'다. 쉽게 말해, "원본보다 더 리얼한 가짜(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포토카드를 자세히 보자. 그 안에 있는 아이돌의 얼굴은 '진짜'인가? 조명을 때리고, 화장을 하고, 컬러 렌즈를 끼고, 포토샵으로 잡티를 지우고 턱을 깎은 후, 필터까지 입힌 얼굴이다. 현실의 아이돌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얼굴(원본)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팬들은 원본(민낯)보다 이 가공된 이미지(시뮬라크르)를 더 사랑한다. 어떤 포카는 100만 원이 넘고, 어떤 포카는 1,000원에 거래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얼마나 더 '그 멤버답게(또는 내가 환상하는 그 모습대로)' 나왔는가"이다.


갈망 포카(가장 갖고 싶은 포카): 고양이 귀를 달고 있거나, 특정 레전드 착장을 입고 있거나, 셀카 각도가 완벽한 것.

망한 포카: 조명이 이상하거나, 구도가 애매하거나, 실물과 너무 똑같이(?) 나온 것.


우리는 '사람'을 소유할 수 없기에, 그 사람을 가장 완벽하게 박제한 '이미지'를 소유하려 든다. 회사는 끊임없이 이 시뮬라크르를 생산해 낸다. 앨범 컨셉 포토, 티저 영상, 자켓 사진... 이 모든 것은 현실의 인간(김철수, 이영희)을 지우고,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아이돌 OOO)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장치다.


우리가 포카 한 장에 목숨 거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환상'의 가장 작고 소중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가짜들의 천국이다.


3. 주식 시장보다 더 적나라한 '감정의 시장'


자, 이제 이 챕터의 핵심인 '가격 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 종이 쪼가리의 가격은 누가 정하는가? 회사가 정하는가? 아니다. 회사는 그저 랜덤으로 뿌릴 뿐이다.


가격(시세)을 정하는 건 철저히 '시장(팬덤)'이다. 트위터, 번개장터, 포카마켓에서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포카 시세를 봐라. 이건 나스닥 주식 시장보다 더 살벌하고 적나라하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

- 멤버 A의 포카가 적게 풀렸다? (공급 부족) -> 가격 폭등.

- 갑자기 그 멤버의 비주얼이 리즈를 찍었다? (수요 폭발) -> 가격 폭등.

리스크의 반영:

- 멤버 B가 학폭 논란이 터졌다? -> 매물 쏟아짐, 가격 떡락(폭락).

- 멤버 C가 연애설이 났다? -> "탈덕 처분합니다" 글 도배, 휴지 조각됨.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가치를 지탱하는 주인은 '회사'가 아니라 '우리'라는 뜻이다.


회사가 아무리 "이 포카는 특별해요"라고 마케팅해도, 팬들이 "안 예쁜데?", "얘 요즘 태도 별로라 정 떨어졌어"라고 판단하면 그 포카는 500원짜리가 된다. 반대로 회사가 대충 찍어낸 셀카라도, 팬들이 의미를 부여하고(예: "이거 데뷔 1주년 날 입었던 옷이잖아!") 서로 갖고 싶어 안달이 나면 50만 원이 된다.


즉, 가치의 '발권력(돈을 찍어내는 힘)'은 회사에 있지만, 그 돈의 '환율(실제 가치)'을 결정하는 건 팬덤이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욕망하지 않으면, 회사의 창고에 쌓인 앨범과 굿즈는 그저 '악성 재고(산업 폐기물)'일 뿐이다.


4. 회사는 '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가 '연금술사'다


많은 팬들이 착각한다. "회사가 비싸게 파니까 비싼 거지." "회사가 물량을 조절하니까 비싼 거지."

아니, 근본적으로 네가 사랑해주니까 비싼 거다. 돌멩이 하나를 주워 와서 "이건 우리 오빠가 밟았던 돌이야"라고 하면, 그 돌멩이조차 경매에 붙여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이것은 엄청난 권력이다. 우리의 사랑은 평범한 종이, 플라스틱, 천 조각을 '성물(Holy Item)'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이다.


회사가 배짱 장사를 하는 이유? 우리의 연금술이 멈추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퀄리티가 구려도, 아무리 비싸게 받아먹어도, "너희는 어차피 의미 부여해서 사줄 거잖아"라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그 오만을 꺾는 방법은 간단하다. 연금술을 멈추는 것이다.


퀄리티 낮은 굿즈? "안 예뻐, 안 사." (기호 가치 박탈)

멤버 관리 소홀? "너한테 쓸 돈 없어." (수요 차단)


우리가 "이건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물건은 다시 쓰레기로 돌아간다. 회사의 매출 그래프를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건 불매 운동 선언문이 아니다. "더 이상 갖고 싶지 않다"는 너의 차가운 눈빛이다.


5. 가치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포토카드를 모으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건 네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기호 가치를 즐길 줄 아는 세련된 소비자라는 증거다. 단, 주객전도(主客顚倒)는 되지 말자.


포토카드가 너보다 높은 상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부여한 가치 때문에 비싸진 물건 앞에서, 네가 쩔쩔매며 지갑을 여는 건 코미디다.


항상 기억해라. 그 종이에 마법을 건 사람은 다. 마법을 건 사람이 마법을 거두면, 그건 다시 10원짜리 종이가 된다.


회사는 인쇄소 주인일 뿐이다. 가치를 만드는 조폐공사 사장은 바로 너, 팬덤이다.


그러니 당당해져라. 네가 사랑을 주는 한 그들은 부자지만, 네가 사랑을 거두면 그들은 파산이다. 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언제나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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